(이미지=https://blog.naver.com/hohong10/221443657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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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너무 길어서 안 읽었습니다. 세 줄 요약 좀’

인터넷에서 장문의 글에 달리는 댓글들이다. 글이 길어지면 읽지 않고 누군가 요약해주기만을 기다린다. 소셜 네트워크들이 힘을 받고, 활자 매체들의 영향은 점점 줄어들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

사진 기반 소셜 네트워크인 인스타그램은 물론 한 트윗당 140자 내로 구성해야 하는 트위터도 그렇다. 같은 글이라도, 사진으로 꾸민 카드뉴스들의 조회수는 높지만 줄 글은 애초에 읽지도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차분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시대는 이미 예언되었다. 헝가리 예술가 모호이 나지는 ‘과거에는 문자를 읽을 줄 모르면 문맹이었지만 미래에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면 문맹이 된다’고 했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영상 문맹, 디지털 문맹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문자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옮겨가는 중에 점점 문자는 홀대받았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 속 문자는 의사전달 수단이라기보다 사진이나 영상의 보조자료로써 기능한다. 보조자료란 존재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다.

말이나 문자를 대체하는 또 다른 수단도 있다. 바로 이모티콘이다.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누구나 얘기를 하면 마땅히 답하기 어렵지만 답은 해줘야할 때 이모티콘을 이용한다. 마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과 같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흔히 언어의 기능을 정보적 기능, 정서적 기능, 친교적 기능 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모티콘과 사진이 정서적 기능과 친교적 기능은 물론, 정보적 기능까지 대체하려고 하면서 말이나 문자가 자리를 잃었다.

물론 사진이나 이모티콘 역시 좋은 도구다. 이들의 유용성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말과 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얘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 세대는 더욱 그렇다.

이들에게 의사소통이란 이모티콘이나 사진, 영상자료면 된다. 어른 세대가 사용하는 이모티콘과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이모티콘을 비교해보라. 어른 세대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구입하고, 이를 활용해 의사소통을 한다.

이렇게 간단하고 짧은 의사소통법을 배우다보니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에 서투르다. 대면보단 전화, 전화보다 메시지, 글보단 이모티콘이나 사진으로 자신을 짧게 표현하는 이 세대들은 상대의 감정을 읽는 것도 서투르다.

청소년 시기에 욕을 많이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국어원은 청소년 시기의 욕설에 관해 정서적 측면에서 청소년 스스로 분노 및 충동성, 감정표현 능력 등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국어 관련 지식, 표현력, 언어 능력 등을 기르는 청소년 언어문화 개선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정작 청소년들은 이러한 욕을 일상 소통 언어라고 말한다. 이들은 욕을 할 때도 두음만 따서 ‘ㅅㅂ’, ‘ㅈㄹ’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은 메시지로 표현하기도 간단하다. 마치 이모티콘처럼 쓰이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욕을 하는 것이 비단 요즘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금의 청소년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청소년 시기는 감정표현 능력이 부족하고 그 결과 욕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른들도 점점 인터넷 세상에서 자기 감정표현을 단순화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서 사회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좋아요’나 ‘하트’와 같이 단순하게 표현되는 인터넷 속 세상들은 사람들의 복합적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기를 강요한다.

인터넷 사이트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기능이 다양해졌지만 기본적으로 ‘좋아요’로 시작되는 페이스북, ‘하트’의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 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댓글에 대한 반응 등에 모두 좋음과 싫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지 어떤 것이 싫은지 전혀 모른 채 자신의 1차적 감정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언어의 뉘앙스를 고민해가며 풍자나 해학을 한 글은 반응을 받지 못한다. 애써 비꼬거나 풍자를 해도 자신의 입장을 명시해야 한다. 풍자나 해학같은 한국 전통의 표현기술들 역시 제대로 읽지 않고 반응하는 사람들 탓에 사라졌다.

건전한 대화의 반응이 아닌 단순한 반응으로 구성되는 이러한 현상은 고급언어 사용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세줄 요약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글이나 말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얼마 전 ‘사흘’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은 그것을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우리 사회의 표현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걱정이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