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동반휴직으로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커다란 쉼표 같은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쏟아지듯 부여되는 일들에 묻혀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애 쓰고 있는지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놓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가장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학교로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선명하게 보일까? 한국 공교육 현장을 벗어나 타지에 서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직접 삶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차이’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그 생각을 확장 시키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사진=이다정 교사)
(사진=이다정 교사)

[에듀인뉴스] 미국 일년살이를 기약하고 온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떠나올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바이러스로 인해 기대했던 것과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렇기에 조금 다른 삶을 경험하고 다른 생각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피하려다 보니 자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저 우리 곁에 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만 했지, 직접 찾아 다녀본 적이 거의 없던 나에게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수학여행이나 소풍도 잘 만들어진 테마파크나 체험관을 돌았던 것 같다. 자연 속으로 향했던 적이 까마득하다. 점 점 우리 삶은 다듬어지고 갖추어져 있는 것에 길들여져 인공적인 것들이 더 친숙하다. 자연이라 여겨지는 것들도 보존과 관광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어서 오늘날 야생은 경험할 기회가 매우 드물다.

이번에 다녀온 옐로스톤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야생에서의 경험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1872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청정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옐로스톤. 미국 중서부 아이다호, 몬태나, 와이오밍 3개 주에 걸쳐 위치한 옐로스톤은 일 년 중 여름, 단 몇 개월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충정남도보다 넓은 크기라 공원 안에서 차로 이동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공원이라기 보단 그냥 자연 그 자체인 곳이다.

포틀랜드에서 1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광활한 땅을 이동하는 과정부터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다채로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가는 길에 들린 그랜트 티톤 국립공원에선 덤으로 밥 로스 아저씨가 그린 듯한 그림 같은 풍경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옐로스톤에서 만난 풍경은 불에 타서 하얀 기둥만 남은 나무와 그 사이를 덮은 초록빛  식물들이었다. 산불이 난 흔적이었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자연의 섭리로 보고 따로 진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날 것 그대로 형성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었다.

이틀간의 캠핑을 위해 캠핑그라운드로 이동했다. 여기 저기 야생동물, 특히 곰이 출몰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음식물이나 쓰레기는 곰이 뒤질 수 있어서 따로 제작되어 있는 철제 FOOD STRAGE에 넣어 잠금장치를 해서 보관해야 했다.

날이 어두워져 오고 텐트 속에서 잠을 청하려 하는데 7월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추웠다. 거기다 여기저기에서 동물 소리가 들려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주변의 소란한 소리에 깼다.

크고 화려한 뿔을 가진 엘크(숫사슴)가 텐트 바로 앞을 걷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것 같은 긴 다리를 뽐내며 지나가는 엘크.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생각보다 큰 크기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녀석이 아니었다. 뒤에서도 몇 마리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숲 속 한줌의 햇빛 사이로 보이는 고고한 자태는 동물원에서 볼 때와 다른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아침 해가 뜨기가 무섭게 뜨거운 햇빛이 내리 쬐었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이곳은 야생동물 뿐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가장 보고 싶었던 핫 스프링. 곳곳에 형성된 핫 스프링은 푸른색부터 노란색, 녹색, 붉은색까지 다양한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물의 온도와 박테리아에 따라 다양한 색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수많은 간헐천, 협곡, 호수, 폭포 등을 만나며 지구에도 이런 곳이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질 무렵 이동하던 중엔 차로를 가로지르는 바이슨(들소) 떼를 만났다. 멀리서 뿌옇게 흙먼지가 일더니 시커먼 녀석들이 줄줄이 달려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모습에 압도되어 겁에 질린 나는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한 낱 인간일 뿐이었다. 동물들이 이렇게 마음껏 다닐 수 있는 것은 이곳의 주인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새끼사슴을 찾으려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나타난 어미사슴 한 마리 때문에 뜨거운 태양 볕 아래에도 사람들은 몇 십분 씩 기다렸다. 동물들이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려는 공원 측의 배려가 놀라웠다.

1908년 자동차 생산이 늘어나며 마차로 오던 이곳의 입장객이 많아졌다. 그 시절 사람들은 곰을 비롯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며 그들과 가까워지려 했지만 그로인해 야생성을 잃은 동물들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어 사람들을 의지하게 되었고, 그러한 현상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자연을 지키는 수칙들이 만들어졌다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동물들이나 우리 인간들이나 마찬가지 같다.

타인을 의식하고 정해져 있는 틀에 맞추려 아등바등 살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해져 있는 것들만 쫒다 정작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찾을 기회는 잃은 채 살아가지 않았던가. 인터넷이 되지 않는 이곳은 얽매인 것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밤이 되었다. 공원 내 인공조명이 없기에 깜깜해진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빛을 뿜어대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떨어지는 별똥별까지.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별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 내가 머무는 이곳이 저 수 많은 별들 중 하나의 별, 지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이렇게 많은 별이 있었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구나...’ 우리가 만든 인공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별빛을 바라보며 그동안 소중하지만 가려져 있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나친 조심성, 눈치, 걱정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본다.

광대한 자연은 앞면만 보고 살던 나에게 삶의 뒷면과 옆면도 있음을 깨닫게 했다.

야생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모기에 뜯기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녹을 듯 뜨거운 태양 볕을 견뎌야 한다. 걷다보면 다리가 아파오고 몸은 천근만근이 된다. 피로함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소중한 자연을 마주하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가는 길 내내 피어있던 다채로운 색상의 꽃과 크고 작은 나무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켜켜이 쌓은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한껏 들이마신 싱그러운 냄새를 몸에 새겨본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나무 같은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