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전공은 대학 진학 후에도 바뀔 수 있어
전공적합성이 학종 비틀고 학생 숨막히게 해

[에듀인뉴스] 나는 1980년, 그 해를 살았다. 그게 역사가 된 것은 훨씬 뒤에 알았다. 나는 2020년을 살고 있다. 올해가 새로운 역사가 되리라는 예감이 강렬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나는 학교를 혁신하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슬로건만 진보일 뿐, ‘교실’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깨우침을 준 것은 한 아이의 충격적인 발언 때문이다. 몇 년 전이다. 아이들과 신문 작업을 하느라 길거리 취재를 나갔는데, 구속된 교육감을 석방하라는 시민단체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의 은근한 질문에 한 아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관심 없어요. 저분이 교육감이 되고 나서 교실이 뭐가 달라졌는데요?”

2018년 기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하루 5.8명이 자살한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정부의 이런 통계마저 믿지 않는다.

교직에 있는 동안에 4명의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가까이서 보아야 했는데,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서 그랬을까, 그중 2명은 자살로 처리조차 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이 사회를 향해 던진 그들의 마지막 항변마저도 틀어 막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학교혁신이건 학교개혁이건 학교혁명이건, 이름이야 아무렇게나 붙여도 좋다. 무엇이 혁신이고 무엇이 개혁이고 무엇인 혁명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덜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혁신이고 개혁이고 혁명이라면, 그런 변화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학종으로 대학 가는 것을 돕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다. 이런저런 학생중심수업을 시도하면서, 나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을 품기도 했다.그런데 지난해에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5분 발표수업을 시작하는데 PPT를 담아온 어떤 학생이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개같은세특’이 파일 이름이었고, ‘박용성개새끼’가 문서 이름이었다.

실수를 알게 된 아이는 내게 와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몹시 괴로웠다.

결국,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신’에 ‘수능’에 ‘세특’까지, 그 아이는 죽을 것 같다는 말을 그렇게 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수능은 여러 가지로 가면을 쓰고 있지만, 본체는 괴물이다.

10년 전의 수능 문제와 지금의 수능 문제를 비교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너무 어려워졌고, 너무 복잡해졌고, 너무 기괴해졌다.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합격의 당락을 결정하려다 보니, 수능은 이런 괴물이 되었다.

대한민국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수능’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모른다.

상류층의 입시와 학생부종합전형 관련 내용을 다룬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이미지=https://blog.naver.com/gift_store/221458366712)
상류층의 입시와 학생부종합전형 관련 내용을 다룬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이미지=https://blog.naver.com/gift_store/221458366712)

 

그런데 다시 학종이 이런 괴물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능은 수능대로 그대로 둔 채, 학종이 학교에 똬리를 틀면서, 이제는 ‘성적’이라는 멍에에 ‘성장’이라는 멍에를 하나 더 씌웠기 때문이다.

물론 입시전형 자체로만 보면, 학종은 수능보다 백 배 교육적이다. 하지만 수능 준비하면서 학종까지 준비하라는 건, 천 배 반교육적이다.

아이는 모범생이었다. 학업성적도 좋고 품행도 방정하고,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울며 말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게 두려워요. 내가 질문을 하면 다른 아이도 그것을 알게 될까 봐, 그게 겁나요.”

학종을 준비하던 아이는, All 1등급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부모께 그 아이는 ‘나라의 딸’이 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지금 그 아이는 의젓하게 성장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몫은,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을 노래하는 일이 아니라,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도 못한 채 져버린 꽃들을 애도하는 일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제발 대학은 학생들에게 슈퍼맨이 될 것을 요구하지 말아 달라. 슈퍼맨은 만화 속의 주인공일 뿐, 그런 초인은 학교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아이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만들려면, 대학은 계속 슈퍼맨을 요구해도 좋다.

대학 다니다가 들르는 제자들이 가끔 있다. 선생님 얼굴도 볼 겸, 이런저런 추억도 곱씹을 겸, 놀러 온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느냐고 물으면, 그들을 힘들게 한 것이 많기도 하다.

(표=https://blog.naver.com/beone2000/221238530022)
(표=https://blog.naver.com/beone2000/221238530022)

그런데 범위를 좁혀 학종 이야기로 나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전공 적합성’이다. 숨이 막혔다는 아이도 있고, 부끄러웠다는 아이도 있다.

학종은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서류를 보고 학생을 평가하는 전형인데, 이때 나오는 게 평가요소다.

2018년 연세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건국대, 서울여대 등 서울의 6개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이라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거기에는 ‘학업역량, 전공 적합성, 인성, 발전가능성’이라는 4개의 평가요소가 나온다. 그중의 하나가 문제의 ‘전공 적합성’이다.

전공 적합성이 무엇인지 아는가? 자료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공 적합성’은 ‘지원전공 관련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 노력과 준비 정도’를 의미한다. 이에는 ‘전공관련 교과목이수 및 성취도’, ‘전공에 대한 관심과 이해’, ‘전공관련 활동과 경험’ 등이 포함된다. 이를 인간의 심적 체계인 지·정·의 개념에 대입하여 보면, 지성(지식)은 ‘전공관련 교과목이수 및 성취도’로, 감정(느낌)은 ‘전공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의지(행동)는 ‘전공관련 활동과 경험’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정말 이상적이다. 하지만 학교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추상이 아니라 구체다.

어디 좋아한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전공인지 아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공 적합성은 특정과목 성적으로 대부분 결정된다. 수학점수 괜찮으면 이과, 그렇지 않으면 문과로 정리하는 게 잣대다. 그러다 보니 3학년이 되어서도 전공이 왔다 갔다 한다. 이게 현실이다.

1학년 때 ‘전공’을 결정한 뒤, 2학년 때부터는 ‘전공과 직접 관련이 있는 활동’을 다채롭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고문이다.

젊을 때 나는 고문당해 본 적이 있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진술하게 하는 목적으로 자행되는 게 고문이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번 맞아보라. 무섭다. 덜 맞으려다 보면, 아무 말이나 한다. 그런데 다음 날,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아 다시 맞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고문받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신음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 점에서 매우 선진적인 학교가 있다. 서울대다.

「서울대학교 학종안내서」(2019)에 따르면,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과학자! 자연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인문사회학자! 철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예술가!”를 ‘멋진 미래’라고 부르면서, “고등학교과정에서 지식이나 학문을 지나치게 편식하는 것은 지적 균형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는 전공 적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학생의 전공은 대학에 와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경제학과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동아리에서 활동해야 하고, 경제 책만 읽어야 하며, 경제관련 봉사활동만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부에 지원한다 할지라도 경제학이라는 용어가 갖는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인간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적 호기심과 함께 창의적 역량을 키워 나간다면 ‘진정한 의미의 전공 적합성’이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교가 학종의 평가요소로 ‘전공 적합성’을 요구한다. 학종은 해당대학 해당학과 해당교수가 뽑다 보니, 당연히 자기 전공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학종을 비틀거리게 하고, 학생들을 숨막히게 하고, 교실을 붕괴시키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할 일이다.

학생들을 자신의 삶을 ‘자성적 수필’로 적어나가야지 ‘허구적 소설’로 꾸미도록 조장해서는 안 된다. ‘학업역량’과 ‘인성’, 그리고 ‘발전가능성’이라는 평가요소만으로 학생들은 충분히 힘들다.

하지만 대학은 쉽사리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만들어 놓은 곳이 ‘교육부’다. 힘을 가진 교육부가 나서서 잘못된 것들을 다시 배치해야 한다.

들뢰즈(G.Deleuze)가 그랬다. 씨앗은 ‘흙’과 ‘비’, 그리고 ‘햇빛’의 배치(agencement)에 의해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그런데 흙은 ‘좋은 흙’이어야 하고 비는 ‘알맞은 비’여야 하며, 햇빛은 ‘적절한 햇빛’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씨앗은 썩지 않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교육부가 ‘배치의 미학’을 아는 정원사였으면 좋겠다.

… 그렇다면 어떤 성장이 시급히 요구되는 성장일까? 포스트코로나시대에는 어떠한 성장을 우리 사회가 기획해야 할까? 사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다음번 기사가 기다려진다.

박용성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대한민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대한민국 교사’다. 지금은 여수에서 고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로 발령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1·2)’,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는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영상강의로 올라가 있다. ‘시에서 꺼낸 토론수업주제 30’과 ‘대한민국 국어수업 시리즈’(가제)로 ‘대한민국 문법’, ‘대한민국 문학’, ‘대한민국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탑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박용성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대한민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대한민국 교사’다. 지금은 여수에서 고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로 발령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1·2)’,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는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영상강의로 올라가 있다. ‘시에서 꺼낸 토론수업주제 30’과 ‘대한민국 국어수업 시리즈’(가제)로 ‘대한민국 문법’, ‘대한민국 문학’, ‘대한민국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탑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