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 밖 일반 민가와 행인의 모습이다. 1892년 외국인의 카메라 앵글에 담긴 풍경이다. 신설동 또한 동대문 밖에 있던 곳으로서 그 이름은 '새로 만든 동네'라는 뜻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자면 ‘새로(新) 만든(設) 동네(洞)’라는 의미다. 실제 이 지역은 조선시대 서울을 가리켰던 한성부(漢城府)의 동쪽 지역에 있던 숭신방(崇信坊)에 새로 만든 마을인 까닭에 그 이름을 얻었다. 당시의 이름은 ‘신설계(新設契)’였다. 왜 마을 이름에 ‘계(契)’가 들어있을까 궁금해진다.

이 글자는 사람 사이의 계약(契約)을 의미하는 한자다. 더 나아가 일정한 규약을 만들어 공동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또는 그런 행위를 일컫기도 한다. 옛 마을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돕고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초기 사회조직이다.

조선시대 말엽에만 전국에 각종의 계가 480여 개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순한 지역공동체적인 조직도 있었고, 특정한 산업 분야에서의 공동체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는 배를 만드는 사람의 모임인 선계(船契), 그물 짜는 사람들의 조직인 어망계(漁網契), 책을 팔고 사는 사람들의 집단인 서책계(書冊契) 등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설동의 원래 이름인 신설계는 조선 말에 서울 지역을 5부(部)로 나눈 뒤 그 아래에 방(坊)과 계(契) 및 동(洞)을 뒀던 데서 비롯했다. 따라서 契(계)는 坊(방)보다는 작고, 洞(동)보다는 조금 큰 마을을 가리킨다. 동대문 밖 숭신방 안에 새로운 마을을 설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신설계였고,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신설계가 다시 신설동으로 바뀐 것이다.

新(신)이라는 글자는 어떻게 ‘새로움’이라는 뜻을 얻었을까. 초기 한자인 갑골문에서는 이 글자가 오른쪽은 도끼, 왼쪽은 나무를 가리키는 상형문자로 나온다. 손으로 도끼를 잡고 나무를 베거나 다듬는 모습이다.

나중에 중국인 학자가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옷을 처음 만들 때는 初(초)), 나무를 새로 벨 때는 新(신)으로 쓴다”고 말이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사용했던 한자의 흔적을 좇아 진행한 연구였으니 그럴듯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新(신)이라는 글자는 ‘새로움’, ‘처음’ 등의 뜻을 얻었다고 보인다.

이 글자의 반대는 ‘옛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舊(구)다. 둘을 병렬하면 신구(新舊)다. 우리 군대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바로 신참과 고참이다. 새로 자라나는 세대가 신세대(新世代),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 세대가 구세대(舊世代)다. 이 신구 세대의 갈등이 깊어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요즘이다.

新舊(신구)라는 단어 말고도 우리가 거의 같은 의미로 자주 쓰는 단어가 新陳(신진)이다. 조금 낯설다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뒤에 代謝(대사)라는 말을 붙이면 곧 新陳代謝(신진대사)다. 新陳(신진)은 新舊(신구)와 같은 의미다. 陳(진)이라는 글자가 옛것, 오래 시간이 지난 것 등의 의미를 지닌다. ‘진부(陳腐)하다’와 같은 단어에 쓰이는 데, 오래 지나(陳) 썩는(腐) 데 이르렀다는 의미다.

代謝라는 단어의 속도 궁금해진다.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의미의 글자가 代(대), ‘고마워하다’ ‘사례하다’ 등을 가리키는 글자가 謝(사)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의 代(대)가 ‘번갈아’ ‘차례대로 이어지다’ 등의 뜻이고, 뒤의 謝(사)는 꽃이 시들어 떨어지듯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러니 신진대사는 묵은 것과 새로 받아들인 것이 서로 번갈아 자리를 교대한다는 뜻이다. 먼저 먹은 것은 배출하고, 새로 입으로 들인 음식과 물 등이 몸을 채운다는 뜻. 따라서 몸의 소화기와 순환기가 제대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이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기면? 곧 병이 찾아온다.

새 것은 좋은 법이다. 낯설기도 하지만 뭔가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新(신)이라는 글자는 옛 선비들에게 제법 사랑을 받았다. 스스로 학문과 마음 등을 갈고 닦아 나날이 새로워지라는 주문이 있었다. ‘日日新, 又日新(일일신, 우일신)’이다.

나날이 새롭게, 그리고 또 새롭게 변하라는 뜻이다. 끊이지 않는 진지한 노력을 덧붙여 늘 새롭게 달라지는 혁신(革新)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 혁신이라는 말이 왜 중요한지는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부단히 새로워지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그는 아마 이 세상 최고의 승부사이리라.

設(설)은 ‘무엇인가를 어느 한 곳에 둔다’는 의미의 글자다. 그 무엇인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띤 물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구체적인 모습의 물건을 어느 한 장소에 두는 행위를 우리는 ‘시설(施設)’이라고 부른다. 건물 안 일반 물건의 배치를 일컬을 때 ‘~시설’이라고 적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을 빼는 데 필요한 ‘배수(排水) 시설’이 한 사례다. 그러나 동사적 의미도 있다. ‘계단을 시설하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다.

동사의 경우에는 설치(設置)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 역시 ‘시설’과 뜻이 같다. 그런 행위를 거쳐 만들어지는 장비 등이 설비(設備)다. 무엇인가를 설치해 뜻을 이루면? 그게 바로 설립(設立)이다. 제사상에 제수를 늘여놓는 행위를 우리는 진설(陳設)이라고 한다. 陳(진)은 옛것, 오래 지난 것 등의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늘어놓다’라는 뜻이다. 쇼 윈도우에 상품을 늘어놓는 행위가 진열(陳列)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다.

물건만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개념적으로 정해 놓는 행위가 ‘설정(設定)’이다. 당신의 꿈을 늘어놓으면 어떤가. 그 꿈은 일종의 계획(計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꿈과 계획을 늘어놓는 행위를 설계(設計)라고 적는다.

이 設(설)이라는 글자에 담긴 또 다른 뜻이 하나 있다. ‘만약’, 즉 if의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설령(設令)’, ‘설사(設使)’, ‘설혹(設或)’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뒤에 ‘~이(하)더라도’가 잘 따라붙는 말이다. 지하철 안의 안전설비를 잘 살펴두자. ‘설령’ 불길이 번지더라도 우리는 그런 ‘설비’와 ‘시설’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만 있다면 큰 재앙에서 내 몸을 지킬 수 있다. 새로 만들었다는 동네, 신설동을 지나면서 그런 ‘설정’도 해보자. 아울러 내 꿈을 더욱 알차게 영글도록 내 삶을 ‘설계’해보자.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이 기사는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