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각종 스마트기기가 보편화하면서 아이들은 텍스트보다 영상에 친화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생각의 깊이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교사들은 역량을 키우는 다양한 참여형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심층적 이해가 이루어지는지 고민이 많다. <에듀인뉴스>와 <비주얼리터러시연구소>는 단순 그림그리기를 넘어 생각을 표현하고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는 비주얼씽킹이 수업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아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박지혜 부천동여중학교 교사
박지혜 부천동여중학교 교사

학생들은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분절적으로 기억한다. 원소를 배우면 그것으로 끝이고, 원자를 배우면 그것으로 끝이다. 원소와 원자·이온·앙금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원자·마찰전기·전류·전압·저항이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관심이 없다.

따라서 공부를 마치고 나도 앞뒤 맥락적 이해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렵기만 한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맞이했다. 원격수업은 45분 수업이라도 45분을 채우는 수업으로 동영상을 만들기가 어려웠고, 매 차시 수업은 더욱 분절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비주얼씽킹을 수업에 접목해보았다.

비주얼씽킹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는 모습.(사진=박지혜 교사)
비주얼씽킹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는 모습.(사진=박지혜 교사)

1. 노트와 교과서를 활용하여 단원의 핵심 내용을 포스트잇에 정리한다. 이때 포스트잇 하나에 하나의 문장만 적게 한다. 전체 내용을 훑어보면서 15~20개 정도의 포스트잇을 적는다.

2. 전체 내용을 스토리텔링하기 위해 주인공을 정하고 스토리에 필요한 포스트잇 8~10개 정도만 남기게 한다.

3. 선택한 포스트잇을 B4 종이의 적절한 위치에 붙이고 포스트잇의 내용을 보면서 스토리보드를 자유롭게 만든다.

4. 작성한 스토리보드를 비주얼씽킹 작품으로 완성하고, 작품에 어울리는 제목을 만든다.

‘물질의 구성’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1.(사진=박지혜 교사)
‘물질의 구성’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1.(사진=박지혜 교사)

‘물질의 구성’ 단원은 물질에 대한 탐색 단원인 만큼 원소·원자·분자 등이 자신을 소개하는 작품이나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이 눈에 띄었다.

‘탐정의 대활약’ 작품에서는 탐정이 잡아온 범인들이 원자, 분자, 이온 등 다양해서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원소기호, 분자식, 이온식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물질을 구분하기 위해 이러한 간단한 표기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질의 구성’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2.(사진=박지혜 교사)
‘물질의 구성’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2.(사진=박지혜 교사)

‘원소 탐정의 하루’에서는 냉장고 속에 넣어둔 케이크를 훔쳐 먹은 범인을 찾기 위해 냉장고에 묻은 범인 원소의 흔적을 불꽃 반응으로 찾아내는 내용이다.

그와 더불어 공범이 하나 더 있었는데 범인과 공범이 이온 상태에서 만났을 때 앙금이 생긴다는 제보를 듣고, 공범도 찾아내었다는 깜찍한 발상의 작품이다.

단원 정리를 비주얼씽킹 스토리로 만드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작품을 만드는 동안 폭발적으로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러니까 원소랑 원자는 어떻게 다르다는 거예요?”, “이온이 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세요.”, “그러니까 모든 이온이 만나서 앙금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앙금을 만드는 특별한 이온 짝은 어떤 게 있어요?”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면 수업 3일 차에 첫 번째 단원정리 비주얼씽킹을 하면서 아직 얼굴도 낯설고 이름도 낯선 저 아이들이 저렇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미소가 절로 났다. 공부는 이렇게 스스로 궁금해져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전기와 자기’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1.(사진=박지혜 교사)
‘전기와 자기’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1.(사진=박지혜 교사)

‘전기마을 달리기 시합’에서는 달리기 시합에 참가한 비닐과 플라스틱 막대가 응원단이 흔든 털가죽에 마찰되면서 둘 다 (-)전기를 띠게 된다.

가까이 달리던 둘은 척력(밀어내는 힘)이 작용하여 레인 밖으로 떨어져 탈락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은 원격수업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막대를 이용한 실험 영상을 떠올리며 스토리에 활용한 것이다.

또한 전류가 전압의 힘으로 저항의 방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전류와 전압 캐릭터에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A(전류의 단위), V(전압의 단위)가 숨겨진 것을 찾는다면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전기와 자기’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2.(사진=박지혜 교사)
‘전기와 자기’ 단원의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한 비주얼씽킹 작품 2.(사진=박지혜 교사)

‘전기, 자기소개’라는 무심한 제목의 오른쪽 작품에는 나의 동생인 ‘전류’가 등장한다.

전류는 힘이 떨어지면 전지(집)로 돌아와 엄마가 제공하는 체력보충제(전압)를 먹고 힘을 얻는다.

동생(전류)와 엄마(전압) 사이를 방해하는 아빠(저항)은 동생(전류)와 사이가 안 좋다.

저항이 병렬로 연결되면 전류가 쉽게 흐를 수가 있어 과전류가 흐르게 되고 쉽게 화가 나서 화재가 흐르게 된단다.

저항이 직렬로 연결되면 전류가 잘 흘러갈 수가 없게 되고 각 저항(전기기구)는 일심동체가 되어 같이 켜지고, 같이 꺼지게 된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이다.

개인별 비주얼씽킹 활동 후에는 학생들의 작품을 모두 칠판에 붙여놓고, 서로 공유하였다.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잘된 점을 포스트잇으로 붙여주도록 안내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피드백을 진행하였다.

‘전기와 자기’의 단원 활동은 비주얼씽킹 작품을 완성하고 비주얼씽킹 작품을 공유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러한 덕분인지 글의 비중이 많았던 처음과는 달리 그림과 글이 적절히 배치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또한 개념 간의 관계를 깊이 생각한 작품의 수가 더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는 과정에서 오개념이 드러난 비주얼씽킹 작품이 보이기도 한다.

오개념이 나타나는 비주얼씽킹 작품 (가).(사진=박지혜 교사)
오개념이 나타나는 비주얼씽킹 작품 (가).(사진=박지혜 교사)

(가)에서 중성원자인 나는 전자가 빠져나가면서 양이온이 되는 설정은 좋았으나 슬픔에 빠진 나(양이온)는 나와 같은 양이온이 아니라 그림처럼 서로 결합되려면 음이온을 만났어야 한다.

오개념이 나타나는 비주얼씽킹 작품 (나).(사진=박지혜 교사)
오개념이 나타나는 비주얼씽킹 작품 (나).(사진=박지혜 교사)

(나)에서 원소 마을에 사는 산소 가족이 쌍둥이를 서로 구별하려고 불꽃 반응을 이용하는데 모든 원소가 태울 때 불꽃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금속 원소에 해당되는 내용이므로 산소 설정은 오류가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오개념이 발견될 때 이것을 다시 아이들에게 되돌려서 퀴즈로 활용한다. 그리고 오개념은 우리를 올바른 학습으로 안내할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그런 작품을 만든 친구들에게도 감사를 함께 전한다.

이렇듯 공유 및 피드백 활동은 학생들이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과학 수업에 비주얼씽킹을 접목하는 데는 많은 이점과 동시에 한계가 있었다. 교과 내용 또는 실험 과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게 하거나 개념의 정의를 스스로 다시 해보게 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었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이번 원격수업 덕분에 새롭게 시도한 개념 간의 맥락을 찾는 비주얼씽킹 수업은 그동안 교과수업에 비주얼씽킹을 활용하면서 해왔던 내용 정리와는 다른 모색이었다.

교과 내용을 재해석해 내는 아이들의 모습과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실마리를 얻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