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력 전담교사제] 문해력③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
[기초학력 전담교사제] 문해력③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
  • 류가람 순천 창촌초 교사
  • 승인 2020.08.19 07: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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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문해력과 수해력 등에서 기초학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는 가운데, 전라남도교육청은 올해 전국 처음으로 정규 교사로 편성된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를 시행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원격 수업이 초등 저학년에게 치명적인 학습 격차를 불러오고 있다는 경험적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남교육청은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로 인해 기초학력 상승의 효과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에듀인뉴스에서는 기초학력 전담교사들의 수업기를 공유해, 전남교육청의 기초학력 전담교사제의 실제 운영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초기문해력지도는 선생님도 처음이라


[에듀인뉴스] 김고니(가명)를 비롯한 네 명의 문해력 부진 아이들을 처음 만나던 시점의 나는 교사면서도 아이들과 같은 수준이었던 것 같다. 잘 가르치고 싶은 의욕은 넘치는데, 어떻게 해야 이 교실 속 문맹자들의 눈과 입을 트이게 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 없어 늘 초조한 고민을 안고 교실에 들어갔다.

교직에 머문 10년 동안 많은 부진학생들을 만나고 지도해왔지만, 불행인지 행운인지 약간의 보충지도와 학부모 연계를 통해 한글을 해득할 수 있는 아이들만 만나왔기에 초기 문해력이 심각하게 부진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상당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글자를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 가정에서 부모님과 글을 읽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 혼자서 책을 읽어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 아이, 모음 ㅗ와 ㅜ를 다른 글자로 인식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아이. 

교사가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담과 장애물이 되어버리는 이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했다.


아이들의 시작점과 눈높이에서 머무르기


표준화 검사 결과 네 아이들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1,2등급의 낮은 발달수준이었고, 나는 원점수가 가장 적고 관심이 필요해 보이는 고니를 지도학생으로 택했다. 

고니는 받침이 있는 글자는 대부분 받침을 생략하여 읽거나 아예 ‘모르겠다’며 읽기를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자신감 없이 작은 소리로 띄엄띄엄 글을 읽어 유창성 점수도 낮았으며, 받아쓰기는 철자를 틀리는 것은 물론 음절 수 인식이 정확치 않아 ‘밤입니다’ 네 글자를 ‘달에다’ 세 글자로 적기도 했다.

본격적인 초기 문해력 지도 전 연수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음에도 아이의 눈높이에서 머무르기 활동을 하는 10차시동안 기대치를 더 낮추어야했다. 

저학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나 <달 샤베트>같이 짧은 그림책도 이 아이들에게는 글밥이 많아 버거웠다. 아이들이 읽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그림을 보며 듣기만 하는데도 지쳐했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듣거나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전래동화도 대부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뜻밖의 강점과 지도의 실마리가 잡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보물찾기하듯 좋아하는 책, 읽어보고 싶은 책 등을 찾아볼 때 교사가 읽어주었던 책을 제목 글자만 보고 찾아내거나, 자신이 선택한 책을 살펴보며 ‘그림이 너무 예뻐서 책 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어요’ 같은 구체적 감상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였던 것이다. 

평가를 통해 나온 점수와 등급은 비슷해도 학생마다 발달의 방향과 속도가 얼마나 상이한지도 절절히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기억하고 적을 수 있는 낱말이 제각각이었다. 고니는 ‘조롱조롱’의 ‘롱’은 바르게 읽으면서도 ‘대롱대롱’의 ‘롱’은 종성을 생략하여 ‘로’라고 읽는 등 일관성 없는 오류를 보여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학생 활동물

이중에 하나는 효과가 있겠지, 모든 걸 쏟아 부은 철자지도


학생들과 긍정적인 라포를 형성하고 어느 정도 수준파악을 마친 후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된 것은 자모음 철자와 소리의 대응을 익히는 활동이었다. 

통글자는 읽을 수 있으면서 각 음소의 이름이나 소리를 모른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라고 여겨졌다. 다행히 자음의 소리는 막연하게나마 구분을 하고 있으니 모음 열댓 자는 확실히 알아둬야 이후의 읽기 수업이 수월하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뿔싸, 여기서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줄이야. 학생들이 읽고 쓸 수 있는 낱말들을 바탕으로 소리를 분절해보고, 수준평정 책읽기와 병행하면 좋다는 것을 수업을 한창 진행하고 나서야 연수에서 알았다. 

기대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모음자는 단순하니 몇 번 공부하면 기억할 수 있겠거니 또 기대해버렸던 것이다. 

학생들은 자음 ㅇ이 붙어있지 않은 홀소리를 낯설어했고 나는 노래, 그림카드, 보드게임, 활동지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글자를 기억하게끔 했다. 처음에는 ㅏ와 ㅓ, ㅗ와 ㅜ도 혼동하던 아이들이 글자 자석 하나를 동서남북으로 돌려도 정확히 읽을 수 있게 된 점은 뿌듯하였지만 미끄러지는 모음자는 주기적으로 틀리고 잊어버렸다. 

분명 수업활동에서는 가르쳐준 글자와 소리를 잘 기억해서 게임도 이기고 돌아갔는데 다음 시간에 만났더니 다시 낯설어하는 학생들의 단기기억력에 좌절하기도 했다. 집에 가서 한 번쯤만 읽어보고 와도 더 빨리 익힐 수 있을 텐데 같은 기대는 욕심이었다. 

지금 와서 반성해보니 이 때 완벽한 습득을 기대하지 말고 일찌감치 수준평정책을 병행했더라면 좋았겠다.


읽기 능력의 성장과 읽는 즐거움의 시너지


길고 힘겨운 홀소리 지도가 끝나고 시작된 닿소리 지도는 욕심을 버리고 간단히 이름과 소리값을 낱말과 함께 훑어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눈머 활동 때 파악된 것처럼 학생들은 막연하게나마 자음의 소리를 구분하고 있었고 덕분에 수월히 진행되었다. 

학생들도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낱말과 철자들이 규칙적으로 정돈되는 경험을 즐거워하며 자신감을 쌓아갔다. 책보다는 동영상을 보며 자란 세대답게 찬찬한글, 한글방글 등의 영상을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받침소리 공부를 시작하던 첫 날 고니는 시작 전에 ‘전 못해요.’라며 두려움을 내비쳤지만 이미 공부한 자음의 이름만 알아도 다 읽을 수 있다고 알려주자 차근차근 소리를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물론 잘 이해한 것과 오래 기억하는 것은 별개라 아직도 소리를 헷갈려하고 중간 평가에서 큰 도약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그럼에도 진단 평가 때는 받침을 생략해버리거나 읽기를 포기했던 글자들을 이제는 머릿속에서 소리를 조합하여 어떻게든 읽어보려 시도한다. 

수업 장면
수업 장면

‘섶’이라는 글자를 읽기 위해 교사가 알려준 따로따로 읽기 전략을 쓰려고 하면서도, 받침소리가 아닌 초성에 매달려 ‘서피, 서프프프’‘하며 고민할 때는 어찌나 안타깝던지. 

비록 점수의 변화는 크지 않지만 처음에는 글자의 소리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찍은 소리를 뱉어내던 아이가 규칙에 따라 바른 소리를 찾아내게 되었다는 점, 받침이 있는 글자도 두려워하지 않고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한편 2명의 학생들은 일부 영역에서 5~6등급까지 성장하여 지난한 철자 소리 대응 지도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읽기만큼이나 쓰기도 싫어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이제 글자는 틀릴지언정 부담감을 덜 느끼게 되었다. 특히 고니는 차곡차곡 자신감이 쌓이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책 발자국 그림책을 읽으면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것을 잘 하여 그것을 곧바로 쓰기활동으로 연결짓기 수월하였다.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교사가 불러주는 것만 꾸역꾸역 쓰면 어쩌나 했던 고민이 무색했다. 진단평가 때와 달리 음절의 분리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어 엘코닌 박스 띄어쓰기 활동을 처음 하던 날 설명 한 번 만에 거의 정확히 자석을 배치하는 놀라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의심할 수 없는 개별화 교육의 효과


40회기, 약 두 달간의 초기 문해력 지도는 1대 1 개별화 수업이기에 비로소 파악 가능한 학생들의 강점과 약점, 다양한 특질들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사가 기대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수준과 가지고 있는 자질들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가장 필요한 것을 적절히 내어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25명 안팎의 아이들을 동시에 지도하는 교실환경에서는 허울 좋은 이상론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공교육을 위해서는 개별화 교육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며, 1대 1 문해력 지도는 이에 대한 희망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류가람 순천 창촌초 교사

류가람 순천 창촌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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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맘 2020-09-08 16:43:01
존경하는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선생님 언제나 아이들이 기억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