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아시아적 가치(-的 價値 : Asian Value)’는 1970~198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 요인을 유교적 가치에서 찾으려는 이론 내지 개념을 지칭한다. 

특히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국가들,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일컫던 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의 경제성장 요인을 해명하기 위해 서구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언론들이 붙인 개념이다. 

이들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인치(人治)와 인정(仁政) 사상에 바탕을 둔 아시아의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에 기인한다고 보고, 이를 아시아적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아시아에서도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ad)와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Lee Kuan Yew) 등이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고 옹호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왜 다시금 아시아적 가치를 소환하는 것인가?

지금처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위협하며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팬데믹(Pandemic)상황에서 감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하여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방역에 성공한 몇몇 나라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과거 네 마리 아시아의 용인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가 주목을 받는 것은 왜 일까? 왜냐면 이들 국가의 국민의식, 즉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작은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배려의 정신이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코로나19가 절정에 이르는 엄중한 시국에 저항 없이 수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석학인 MIT 교수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한국의 세계적 석학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게 보낸 e메일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보공개(동선공개)를 강력히 비난을 한 적이 있다. 

두 학자는 몇 차례의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논쟁을 나눈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때 최 교수의 반박 논리는 투명한 정보공개는 공동체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배려라는 아시아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른바 개인의 자유가 우선인가, 공동체의 안전과 생명이 우선인가의 가치(價値) 대립이었던 것이다. 

개인주의 사상이 지배적인 그런 미국에서조차 현재 원격 브리핑, 화상 포럼이 대세다. 이는 대부분의 주(state)에서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 유재동 뉴욕 특파원의 보도를 사례로 들어보자. 경제 관련 한 유명 강연에서 사회자가 오프닝 질문을 던지고 서머스 전 장관이 답변하는 형태로 시작됐는데 사회자가 “팬데믹 이후 경제는 어떻게 될까. L자형, V자형 등 중에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서머스는 보기에 없는 ‘K자형’을 제시했다. 

이는 보유 자산이나 업종에 따라 희비가 갈리면서 사회 구성원 간 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의미였다. 

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 유 특파원의 질문인 “국가들도 앞으로 K자로 갈리지 않을까. 어떤 나라가 위기를 잘 극복하고, 어떤 나라가 더 힘들어질 것 같은가?”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공동체를 중시하고 위계질서가 잡힌 사회는 성공할 수 있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공동체 의식이 옅은 곳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답변의 논지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 것은 “이전에도 세계 경제의 중심이 점점 동쪽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사태는 이를 더 가속화하는 것 같다”고 한 대목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바로 동아시아를 지칭하며 공동체와 배려를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서머스 전 장관뿐이 아니다. 요즘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중에는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근 대만을 방문한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원격으로 진행된 브리핑에서 “대만의 방역 성공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회 문화 규범이 미국과 다른 점이 있고 이 가운데 우리가 배울 것도 많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는 조금 불편해도 마스크를 쓰는 데 동참하고, 정부의 방역 지침을 잘 따르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체 의식을 미국도 본받아야 한다는 뜻을 언급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코로나 방역에 실패한 혹독한 대가-확진자 및 사망자 1위-를 치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많은 미국인들은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동양인을 기피하거나 심지어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중시하는 이들 눈에는 당국의 철저한 추적 감시와 통제에 순응하는 아시아인들이 낯설게 보였다. 심지어는 대놓고 면박을 주거나 혐오감을 노출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가 평상시에는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미국인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적인 사례로 최근에 어느 카페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고객에게 서비스를 거부한 점원에게 비난의 댓글이 달리면서 그 고객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배려와 무언의 격려로 1억 원에 가까운 격려비를 모아준 곳이 언론에 화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경우에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이제 70%에 이르고, 손님 감소를 각오하고 ‘No mask, No entry(마스크 안 쓰면 입장 불가)’ 같은 안내문을 붙인 가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작은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의식 변화의 흐름이 아닌가?
 
또 다른 공개된 사례를 보자.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엘리자베스 브래들리 뉴욕주 바사대 총장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는 이번에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게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며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법,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법을 익힐 겁니다. 물론 이건 미국의 개인주의와는 상당히 다르죠. 하지만 훨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대학은 학생들에게 ‘공동체 배려 서약’을 받고 엄격한 방역 규정을 마련해 올가을 대면 수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이처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상호 배려를 의무화할 정도로 이제는 공동체와 배려는 새로운 가치의 중심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19세기 이래 아시아는 서구세계의 발달된 문명과 풍부한 경제력 및 막강한 군사력에 완전히 위압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서방세계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을 지녔다. 

결국 근대 초기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대부분 진보는 곧 서구화인양 인식하고 서구적 발전 방식을 무조건 수용했다. 그러나 이것이 국가 내부에서 비판받기 시작했고, 서구화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결국 아시아적 가치관에 대한 옹호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만 서구화이든 아시아적 가치관에 대한 옹호이든 목표는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서구적 합리성인가? 아시아적 가치인가? 양자 사이의 방법적인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현시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진보’의 상징이며 ‘진보’는 최고의 선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K-방역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공동체와 배려라는 아시아적 가치의 상징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K-방역이 세계를 주도하는 새로운 가치이자 정치적 리더십의 표상이 될 것인가? 

과거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활짝 피어난 장미’인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도약은 이를 조롱한 영국( The Times)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에게도 기적 같은 사실이었다. 

이제 한국에서의 방역 조치는 하나의 모델이 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강력한 혁신적 페러다임이 되고 이것은 뉴노멀(New Normal)의 가치관으로 널리 작용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결국 인간은 칸트(Immanuel Kant)의 인간존중 사상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단이 아닌 고귀한 목적, 그 자체로 대우를 받음으로써 공동체의 배려와 존중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람 사는 세상, 공동체의 핵심 가치가 되어 모두가 그 속에서 행복한 주인공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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