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문해력과 수해력 등에서 기초학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는 가운데, 전라남도교육청은 올해 전국 처음으로 정규 교사로 편성된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를 시행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원격 수업이 초등 저학년에게 치명적인 학습 격차를 불러오고 있다는 경험적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남교육청은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로 인해 기초학력 상승의 효과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에듀인뉴스에서는 기초학력 전담교사들의 수업기를 공유해, 전남교육청의 기초학력 전담교사제의 실제 운영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집중이 산만한 큰별이가 유일하게 알고 있고 빠져드는 책이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옮겨 놓은 그림책이다.(사진=이은성 교사) 

[에듀인뉴스] 읽기 따라 잡기 연수에서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 ‘아이가 좋아하는 것’, ‘아이에게 의미가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큰별이(가명)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발음이 어눌해서 도무지 어떤 말을 하는 지 몇 번을 물어야 알 수 있었고 잠시도 집중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화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몸동작에 가만히 있으라고 타일렀던 그 때 차라리 몸으로 글자를 표현해보자며 운동장에 나갈 걸 하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눈높이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에서야 가능한 생각이다. 힘들었지만 그 10시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집중이 산만한 큰별이가 유일하게 알고 있고 빠져드는 책이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옮겨 놓은 그림책이다. 

아이는 축자적 읽기가 심하고 음운 변동을 적용하지 못하고 힘겹게 발음하기에 듣는 이가 알아듣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아나] 책만큼은 매우 집중하며 캐릭터의 이름을 읽을 수 있었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얼마나 반복해 읽었을까? ‘ㅔ’의 음가는 모르더라도 등장인물 ‘테피티’는 한 눈에 어절단위로 자연스럽게 읽어냈다. 

아이의 일견 단어가 가득 담긴 보물 상자를 기적처럼 만난 기분이었다. 다만 아이의 수준에 비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하루는 책을 숨겨두었다. 그리고 그 날 아이는 40분 동안 책상에 엎드려 일어나질 않았다. 

백기를 든 나는 눈높이 머무르기 시간부터 꾸준히 활용하기로 선언했다. 단 한 번도 어른과 책을 함께 읽어 본 경험이 없는 아이에게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목표를 정했다.

‘책을 온전히 읽는 경험을 많이 쌓자, 낱말과 낱자는 천천히’ 

지도 과정이 시작되고서 가장 애먹었던 부분은 활자지식을 모르고 있으며, 교수 언어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머무르는 동안 책을 넘기는 방법부터 읽는 방법, 책의 생김새, 독서 자세 등을 익히고 아이가 교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쓴 부정적 전략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령 책을 책상에 두고 머리를 숙여 책과 10cm도 안 되는 거리로 보는  자세, 읽지 못하는 글자가 등장하면 마구 책을 넘기며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장을 편 후 다 읽었다고 하는 등의 모습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의 시선에 끊임없이 쫓아가야만 했다. 기존에 배워온 한글 학습 방식이 아닌 한글이 담긴 주변 모든 사물을 활용하여 함께 놀며 이야기 하며 자연스럽게 배우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의 이유와 의의를 알았으면 했던 교사의 마음을 점차 받아들이고 레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8회차에 접어들 때 안정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읽는 경험이 쌓이면서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사가 읽어주는 때에도 큰별이는 손가락으로 어절 단위를 짚어주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수다를 떨 때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대화가 꽤 길어졌을 때 버릇처럼 두 종류의 말을 했다. 

“선생님?” 또는 “어디까지 읽었죠?”. 주로 “선생님?”은 나에게 읽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변화는 문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첫 만남에서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고개만 절레절레 하며 “써줄래?”라는 말에 그림만 그렸었다. 시간이 지나 온전히 자신에게 귀기울여주는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었는지 틀리든지 모르든지 그동안 가지고 놀았던 글자로 생각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패턴 수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이 눈높이 머무르기라는 이름의 10시간동안 아이에게 어떤 것이 의미가 있을지를 살펴보았다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패턴 수업이 시작되고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패턴수업은 익숙한 책 읽기, 읽기 과정 분석, 낱말 글자 말소리 탐색, 문장쓰기, 새로운 그림책 읽기 등 5가지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사진=이은성 교사) 

패턴수업은 ▲익숙한 책 읽기 ▲읽기 과정 분석 ▲낱말 글자 말소리 탐색 ▲문장쓰기 ▲새로운 그림책 읽기 등 5가지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모아나가 없이는 수업을 할 수 없는 큰별이를 위해 재구성해야만 했고 16회차에 접어들었을 쯤에는 그 틀이 선명해졌다. 

<1. 수업의 시작>에는 전 시간에 배운 낱말카드를 쭉 살펴보고 낱자의 이름과 음가, 음운 변동 규칙 등을 복습한다. 또는 일상의 소재로 가벼운 대화를 하는데 교사는 의식적으로 배웠던 글자나 어구를 사용하여 이야기하고 대답해주도록 유도하곤 한다. 

<2-1. 읽기>에는 모아나 그림책을 읽는다. 축자적 읽기가 두드러진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짚으며 어절을 자연스럽게 읽어 볼 수 있도록 요구하였다. 

교사는 속도를 조절하여 의도한대로 꾸준히 읽어 주었고 점차 들은 대로 읽고자 하는 아이의 욕심이 느껴졌다. 읽는 경험을 쌓고 활자지식이나 전략을 적용하는 것 외에도 아이가 학습해야 할 낱자가 등장하였을 때에는 체크해둔 후 읽기 후 활동으로 낱말카드를 만들기도 한다. 

<2-2. 읽기>에는 수준 평정 그림책을 활용한다. [모아나]에서 복잡한 모음 및 복잡한 받침과 여러 가지 음운 변동 현상으로 인해 읽기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편안한 마음과 비교적 듣기 좋게 읽었다. 

예상컨대 그림책 수준 7수준은 될 정도이지만 0수준부터 시작한 이유는 아직 모르는 낱자가 꽤 많았고 읽기 실력이 스스로 발달하고 있는 아이 스스로의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아이는 한 단계씩 올라갈 때 마다 매우 좋아했고 심지어 다음 단계의 그림책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그림책을 두 번째 읽을 때 읽기 과정 분석을 해야 하는데 [모아나]를 읽는 시간이 길어 처음 읽을 때 바로 과정 분석을 하였다. 다행히 아직 아이 수준에 교수적 또는 독립적인 단계였기에 문제 삼지 않았다.

<3. 쓰기>에서는 문장 쓰기와 낱말 글자 말소리 탐색을 함께 진행한다. 자신의 생각을 활발하게 말하는 아이이기에 그림책에 담긴 내용과 관련하여 간단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이가 모르는 글자가 포함된 문장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정해진 문장의 음절수를 파악하기 위해 엘코닌 박스에서 자석을 붙이도록 한다. 스스로 띄어쓰기를 하지 못하는 수준인데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때에 지도하고자 지금은 교사가 “띄고”라는 말로 자석의 칸을 비운다. 

다음으로 자석을 보며 스케치북의 연습 칸에 본인이 쓸 수 있을 만큼 문장을 쓰는데 의외로 보거나 들었던 내용을 재인해 통글자로 쓰는 것이 수월하다. 특이한 점은 발음이 안되는 아이들은 대개 문장을 썼을 때 애초에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학교를 가요’를 ‘학요를 가요’로 쓰고 /학요/로 발음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큰별이가 발음하지 못하는 ‘ㄹ’과 ‘ㅅ’은 문장에서 틀리지 않게 적혀있다. 아이가 써준 문장 속에서 학습 요소를 정한 후에 낱말 카드를 만들거나 구강 구조 그림을 가지고 발음을 연습할 수 있었다. 

나와 큰별이가 가장 상호작용이 좋은 순간은 낱말을 쓸 때 자석 글자로 전략을 활용할 때이다. 가령 ‘좋겠다’를 쓰기 위해 /ㅈ/ /ㅗ/ /ㅎ/를 들려주면 아이는 소리를 듣고 글자를 가져온다. 그리고 다시 글자를 소리로 쪼개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음운 인식 훈련이 서툰 나와 발달이 더딘 큰별이가 만나 시행착오가 컸으나 점차 수업 횟수가 쌓이며 안정감이 생겼음을 느끼는 활동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교사가 발음을 들려주나 점차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촉진해가고자 한다.

큰별이는 문해력 전담교사로서 개별 지도를 맡은 학생 중에 처음에는 가장 힘들게 했다. 표정은 밝은 데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들으려하지 않고 본인이 매우 말이 많았다.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으로 동문서답하던 그 때를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 거린다. 

여름방학 전에 초기 문해력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아이는 읽기 유창성이 1수준에서 3수준으로 향상되었으며 구절 읽기도 소폭 상승하였다. 예전과 달리 요즘 아이의 말풍선은 책을 언제 보는지, 어떤 책을 읽을 지로 가득하다. 

수업에 안정감이 생긴 후로는 호기심이 생기고 학습 정서가 아이 내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 같다. 

한편 애증의 그림책 [모아나]는 18장을 모두 읽고 막이 내렸다. 걱정과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이를 만났던 어제, 큰별이는 책상에 앉자 말한다. 

“우와! 벌써 5단계에요. 5단계에는 어떤 책이 있어요?”. 

너무 기특하고 다른 책을 찾지 않음에 다행이었다. 아이 수준에 맞는 수준 평정 그림책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익숙한 그림책 읽기가 주는 효과가 매우 많을 것이며 더욱 성장해나갈 큰별이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은성 해남동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