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화<가 단원 김홍도가 논갈이 장면을 옮긴 그림이다. 지금의 제기동에는 농사를 권장하는 왕조의 선농단이 있어 제사 터라는 뜻의 지금 지명을 얻었다고 보인다.>

제사(祭)를 지내는 터(基)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료를 찾아보니 지금의 제기역 인근에 선농단(先農壇)이 있었다. 선농단은 전형적인 농업 국가였던 조선이 농업의 신이라고 알려진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올려 백성들의 농사를 장려코자 했던 곳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가뭄에 비를 내려달라고 비는 기우(祈雨)의 제사, 가을에는 왕이 벼 베기를 참관하는 행사 등이 이곳 선농단에서 열렸다고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가 열리면 왕조는 이 지역의 나이 많은 노인들을 함께 참석시켰다고 하는데, 행사가 끝난 뒤 제사에 올린 고기를 잡아 끓여 노인들에게 대접한 국이 ‘선농탕’이었다가 다시 설렁탕으로 발전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국가적 행사인 선농제가 벌어졌던 곳이 선농단이고, 그 제사의 터가 있던 곳이라 해서 이곳은 ‘제기동’이라는 이름을 얻은 셈이다. 우리는 이 ‘제사(祭祀)’라는 행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민족이다. 유교의 토양이 워낙 깊었던 조선 500년 동안을 살아온 조상들의 전통 때문이다.

祭(제)라는 글자는 탁자에 무엇인가를 올려놓고 손으로 잡는 모습을 표현하는 상형문자로 본다. 무엇인가를 올린다고 했는데, 결국은 제사상에 올리는 육류(肉類)와 관련이 깊을 것으로 사람들은 설명한다. 제사에 올리는 고기?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희생(犧牲)이다. 소와 돼지, 양 등 기르던 가축을 잡아 신이나 조상에게 제례를 올릴 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희생’이다.

“누군가가 희생양이 됐다”라고 할 때 그 ‘희생양’은 제사를 위해 잡은 양(羊)의 의미다. 기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속죄양(贖罪羊)도 어떻게 보면 그 희생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결국 이 ‘희생’이라는 단어는 ‘남을 위해 대신 목숨 등을 바치는 존재’라는 의미를 얻기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祭祀(제사)라는 단어에서 祭(제)와 祀(사)는 어떻게 구별을 지을까. 사실 정확하게 가르기는 쉽지 않다. 앞의 祭(제)라는 글자의 뜻은 조상이나 신에게 올리는 예(禮)라는 점에서는 뜻이 명확하다. 특히 상에 희생을 올린다는 점도 분명하다. 뒤의 祀(사)라는 글자 역시 동양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조상이나 신 등에게 올리는 예라는 의미로 굳어졌다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일설에는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祭(제), 땅에 올리는 제사를 祀(사)라고도 했단다. 어느 경우에는 국가적 행사의 제사를 祀(사)라고 한다는 설명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이 둘을 나누지 말고 그냥 祭祀(제사)라고 하는 게 좋다. 그 안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야 여기서 더 이상의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겠다.

이 제사의 행위는 비단 동양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도 신 등에게 올리는 각종 제례(祭禮)가 많았다. 우리가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했던 카니발(Carnival)도 그런 제사에 가까운 행사다. 예수가 광야에 나가 수난을 당했던 사순절(四旬節)에는 사람들도 고기를 입에 댈 수 없었다고 한다. 고기를 금지하는 금육(禁肉), 역시 같은 의미의 사육(謝肉)의 기간을 앞두고 먼저 고기를 실컷 먹어두자는 취지에서 벌어진 행사가 카니발, 즉 사육제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사와 연관이 있는 단어는 매우 풍부하게 발전했다. 제사를 올리는 예가 祭禮(제례), 제사를 주관했던 관직이 祭司(제사) 또는 祭司長(제사장), 제사의 절차와 예법 등을 적은 책 또는 그런 형식이 祭典(제전), 제사에 쓰는 그릇 등이 祭器(제기)다. 젊은 남녀들이 좋아하는 祝祭(축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한자어다.

재미있는 단어 하나 소개하자. ‘달제(獺祭)’라는 말이다. 한자가 어렵다고 피하지 말자. 이 ‘獺(달)’은 동물을 가리킨다. 요즘 생태환경이 제법 살아나 우리나라 하천 등지에 조심스럽게 나타나는 ‘수달(水獺)’이 주인공이다. 이 녀석하고 제사가 무슨 연관이 있길래 獺祭(달제)라는 단어가 생겨났을까.

춘삼월에 차가운 바람은 북녘으로 몰려가고 따뜻한 봄이 올 기미가 나타나면 강에 있던 얼음이 깨지면서 수달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 현상을 유심히 살피던 사람들의 눈에 띈 장면이 있다. 수달이라는 녀석은 물고기 잡이의 명수다. 녀석들이 아직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들이는 장면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잡은 고기를 물가 바위에 가지고 나와 가지런히 늘어놓는다는 점이 이상했다.

수달이야 제 나름대로의 섭생(攝生)을 위한 방략을 선보인 것이겠으나, 사람들은 그 모양이 하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바위 위에 잡아들인 물고기를 죽 늘어놓는 수달의 행태가 마치 조상이나 신 등에게 제사를 올리려고 사람들이 음식을 상에 펼쳐놓는 모습과 닮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수달의 제사, 즉 獺祭(달제)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수달이 기특했겠지. 조상을 모시고, 신 앞에서 겸허하자고 올리는 게 제사인데 하찮은 동물이 그런 사람의 제사 모습을 흉내 내는 것으로 간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 獺祭(달제)는 반드시 좋은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한문(漢文) 문장을 썼던 옛사람들에게 흔히 드러나는 단점이 하나 있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비롯한 동양 옛 성현(聖賢)들의 말귀를 자주 인용한다는 점이다. 그런 좋은 글귀만 인용하면 문제가 적겠으나, 유식한 척 하느라 일반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각종 성어(成語)와 전고(典故: 일정한 준거가 있는 옛이야기) 등을 잔뜩 늘어놓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제 지식을 자랑하려 영양가 없는 옛이야기나 구절 등을 줄줄 펼치는 사람을 동양에서는 ‘수달 녀석이 또 제사를 지내는군’이라며 마땅치 않은 시선으로 봤고, 그런 사람 또는 행위를 獺祭(달제)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제기동의 옛 제터는 그런 수달이 미치지 못했던 영역이었겠지. 국가의 안녕과 백성의 풍요함을 기원하는 선농의 제단이 들어섰던 곳이니 엉뚱한 상상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사는 제사다. 제사가 제사 이상의 허례(虛禮)로만 흐른다면 낭비에 그친다. 늘 경계해야 하는데, 그런 제사 줄줄 늘여놓는 사람 조심하자. 수달이 귀엽기는 하지만, 그저 생선만 하릴없이 늘어놓는다면 그 귀여움도 역시 반감하지 않겠는가.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