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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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어찌하여 교사가 되었지?” 이는 세상을 살면서 가끔씩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솔직히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느낀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갑갑한 울타리를 벗어나 저 멀리 야망에 따라 도전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눈길을 보내며 마음의 갈등에 빠지기도 했다.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이 조차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좌절하기도 했다. 때로는 직업의 가면을 쓰고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엄숙한 얼굴 뒤에 숨어 자신의 갈등을 숨기면서 살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교직에서 36년을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필자 주변의 사람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보는 새로운 시야가 넓어지면서 스스로 되새기는 말이 생겼다. 비록 한참이나 늦은 감이 있지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학교 관리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젊어서는 인재를 가르치는 재미를 찾아,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고자 했다. 그래서 인재들이 있다는 곳은 자원하여 찾아갔다.

1996년, 영종도라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에 수학⋅과학의 인재들의 집합소인 과학고가 있었다. 개교 3주년이 되던 학교를 당시 교육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교장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지원을 했다.

당시 일반고에서 고3 담임교사를 역임하면서 소위 SKY라 불리는 대학에 많은 학생들을 합격시키는 입시분야의 전문가로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의 소망을 전했을 때 교장선생님은 기꺼이 추천을 해주셨고 과학고는 필요한 교사라 생각하고 필자를 영입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출퇴근 4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도서지역에서 인재교육에 큰 보람과 만족을 얻으며 교직에서의 절정기를 보냈다.

당시 인연을 맺은 제자들은 필자를 ‘20세기 최후의 로맨티스트“라 칭하며 따뜻한 사제지간의 관계를 맺기도 했다. 어느 학생과 학부모는 필자의 열정적인 지도에 오늘날 말하는 찐팬이 되어 재학 기간은 물론 그 후에도 계속 인연의 끈을 이어가기도 했다.

치과대학을 지망한 한 학생은 '선생님의 치아 관리를 평생 해드리겠습니다'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기도 했다. 또 다른 학생은 '학문에 열중하여 청출어람을 실천하는 큰 과학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개인의 이야기를 잠시 피력하기로 한다. 한때 출신 대학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해 일반고에선 어느 정도 능력이 보이는 학생들은 학년 초부터 집중 관리하여 반드시 S대를 보내며 대리만족을 얻던 시절이 꽤나 길게 이어졌다.

남들이 기피하는 험한 길을 스스로 자원하여 고3 담임이나 3학년부장을 하면서 전체 교직 경력의 거의 3/4를 보냈다. 이는 결코 평범한 길을 걸어온 것이 분명 아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보람을 얻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작 필자가 지도하는 학생들과 같은 처지의 자녀의 학력과 대학 선택을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겪었다.

평소 부모에게 큰 걱정을 남기지 않은 채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던 자녀들이라 학교에서의 열성적인 학생 지도만큼 2년 터울의 그들을 챙기지 못하고 아이들의 엄마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순된 길을 걸었다.

왜 그랬을까? 깊은 성찰을 하면서 나중에야 ‘중이 제 머리 깍지 못한다’는 말에 비겁하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는 한참 늦었고 그렇게 필자의 아이들은 성실한 모습에 만족해야 했고 남의 집 아이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지도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런 식으로 필자의 경력도 관리를 하지 못했다. 비슷한 또래의 동료교사들이 전문직을 준비하며 그 길로 나서 마치 벼락출세처럼 승승장구하면서 저 만치 앞서 갈 때까지 필자는 늘 곁에 학생들을 두고 그들의 진로와 진학에 몰입해 있었다.

이제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CEO가 된 H, 미국 대학의 교수로 학자의 길을 걷는 L,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는 K, 국내 굴지 대기업의 이사가 된 N, 외제차를 몰며 크게 사업에 성공한 J, 중견 국어교사로 학생들 지도에서 명성을 날리는 Y, 방송가에서 전문 엔지니어로 고참이 된 H 등 그들은 필자 인생의 영혼이 담긴 걸작품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들에게 적어도 어느 한 순간은 분명히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의견이 일치를 보면서 진로나 진학 선택의 결정적 순간을 함께 한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선한 영향력이 작용하여 나름대로 성공하거나 미래가 기대되는 제자들을 살펴본다.

지난해는 한국 M.S.사의 이사로 있는 제자 H가 필자를 직접 방문하여 자신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은사로 필자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필자가 미래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잠재력 있는 고교생으로 학창시절에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기회를 제공한 인재였다. 그는 필자의 생일을 기억하여 온라인 축하 메시지와 함께 정성껏 선물을 보내오는 지극정성의 제자다.

중견 국어교사로 일반고에서 열정적으로 제자를 키우는 Y는 ‘선생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제가 받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 밝게 성장한 인재로 성적도 최상위에 속하던 제자였다. 역시 담임교사로 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장학생 선발에 힘이 되어 준 기억을 잊지 많고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제자이다.

S대의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언론사에 다니는 K, 그는 학창시절 밤늦게까지 에세이 쓰기를 함께 하며 수시전형을 함께 대비한 인재였다. 대학 재학 시절 학과에서 1등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 방송사에서 근무하던 제자로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면서 늘 고3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저녁 무렵이면 학교의 공터를 이용하여 열심히 텃밭을 가꾸던 S, 그는 필자가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단다. 너의 성실함이 바로 네가 가꾸는 농작물(감자, 열무 등)에 전해질 것이다"라며 격려했을 때 무언가 가슴으로 느낀 바 '아, 참 좋은 말씀이네요. 팻말을 만들어 걸어 놓겠습니다. 저는 중국의 화훼산업에 도전장을 내려고 합니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주절주절 말하던 제자였다. 지금은 농과계열에 진학하여 열심히 자신의 꿈을 가꾸고 있다.

지금 고2에 재학 중인 G, 그는 얼마 전에 자신에게 삶의 모델로 간직하는 '큰 바위 얼굴'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작년에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면학실에서 공부할 때마다 슬며시 들어오시어 공부하는 학생들 어깨를 자주 주물려 주시며 격려해 주시던 교감선생님입니다. 늘 누군가를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며 필자가 자신의 '큰 바위 얼굴'임을 말할 때는 갑자기 세상을 얻은 것 같은 보람을 느꼈다.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어 누군가가 힘을 얻고 위로가 되며 자신의 성공의 주춧돌이 되기도 하며 이를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은 그저 교육하는 사람으로 고마울 뿐이다.

필자는 이제 고등학교 교감이 되어 학교 관리자의 길을 걷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의 과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본래의 기질대로 성실함을 기본 자산으로 언제나 ‘지성무식(至誠無息)’을 실천하고 있다. 곧 지극히 성실한 사람은 쉼이 없다는 의미대로 늘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필자의 상징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이 되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교사들의 고충과 애환도 학생들 못지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과 격려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교사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관리자의 커다란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늘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지향하며 “인간은 최고의 목적으로 대우해야지 결코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인간존중 사상과 맥을 같이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가치관과 철학은 학교 관리자가 된 지금이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조그만 실수나 잘못은 오히려 학생지도에 좋은 경험으로 작용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교육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절대로 목소리를 높여 업무의 효율성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관리자로서 좋은 자질은 아니라는 학교장의 질책도 있으나 필자는 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업무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업무는 크게 어렵지 않다.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 정신이 발휘하고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필자는 조금 늦게 가더라도 함께 멀리 가는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 학교 관리자로서 필자가 갖고 있는 기본 철학이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는 도전의 시기에 처해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혁신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변해야 산다는 진리는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누군가의 강요나 환경으로 인한 일시적인 강제는 한계가 있다.

‘뉴노멀’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정상적인 기준, 표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여기엔 많은 답변이 있겠지만 필자는 사람과의 관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소속 학교에서 모 부장교사가 필자에게 '진실한 인간의 모습,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 말에 힘을 얻기도 한다. 힘들고 외로운 투쟁 속에서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가 진정한 학생교육에 성공하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금 다짐해 본다. 사람의 마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진실한 관리자가 되어 이 나라 교육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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