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우화(寓話)는 장르적으로 보면 서사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이 절충된 단순 형식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비교적 저차원적인 사리 분별을 위한 것이나 우리 삶에 알아두면 좋은 실용주의적인 것입니다. 같은 형식으로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도시와 환경, 그를 이루는 많은 건물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진솔한 물음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에듀인뉴스] 유학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역시 이사를 하는 것이다. 푼돈만 겨우 쓰는 유학 생활 비용 중에서 역대급으로 큰돈이 들고 계약부터 이사까지 하는데 들이는 시간도 만만치 않아서다. 

이렇게 집을 구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물론 집값이지만 사실 그전에 고려하는 부분이 바로 생활권이다. 내가 어디서 회사, 학교를 다닐지 일을 마친 후 어떤 삶을 살기 위해 집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살핀다.

집주변을 살필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역시 교통편이다. 아무래도 자동차가 없다 보니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을 찾게 된다.

필자도 그르노블에서 이사와 파리에서 산지 이제 5년 차다. 파리는 서울의 1/6 크기다. 그러나 인구 밀도는 21,289/km²로 우리나라 16,364/km² 보다 높다. 뜬금없는 비교였지만 이렇게 작은 도시에 서울과 같은 대도시보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건 상당한 문제다. 높은 인구밀도는 지상 토지 이용율의 부족, 도시 인프라 부족, 교통혼잡,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사실 파리는 이 문제를 겪은 지 꽤 오래됐다. 높은 월세, 낡은 건물, 불편한 교통, 오염된 환경은 관광지라는 허울 속에 묻힌 진실들이다. 솔직히 직접 사는 사람 말고 누가 그렇게 자신이 사는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는가. 지나가는 관광객에겐 그저 고풍스러운 낭만과 와인, 라따뚜이 정도로 아름답게 기억될 뿐이지...

최근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시장 안느 이달고는 꽤 과감한 정책을 들고나왔다. 벨로 폴리탄 vélopolitain이라는 이름의 이 정책은 파리시 지하철 노선을 그래도 지상으로 가져와 자전거 길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름은 메트로 폴리탄(métroplitain : 지하철)에서 따왔다. 형용사로는 ‘수도의, 주요 도시의’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그 뜻만 나열해도 ‘수도의 지하철’ 이렇게 된다. 아직 사전에 정식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벨로폴리탄 vélopolitain 또한 단순히 자전거가 아니라 ‘수도의 자전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파리시에서 추진 중인 벨로 폴리탄 지도- 지하철 노선을 그대로 지상으로 올려 길을 내었다.(출처=https://votez-velo.paris/un-velopolitain-pour-paris)
파리시에서 추진 중인 벨로 폴리탄 지도- 지하철 노선을 그대로 지상으로 올려 길을 내었다.(출처=https://votez-velo.paris/un-velopolitain-pour-paris)

 이 정책은 환경오염을 줄이는 차원에서 시작한 단순한 정책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의 수를 줄일 수 없으니 사람이 사용하는 것 중 가장 환경오염에 영향을 주는 자동차를 줄이겠다는 정책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뜨겁거나 차갑거나이다. 

그럼 이 정책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반응이 양극일까? 수도의 자전거 놓기는 다른 도시와는 어떤 면에서 달라야 할까? 개인적 견해로 이 정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도로개혁이다. 아니 좀 더 앞서 나가면 도시의 다이어트다. 

파리는 이미 포화상태다. 아니, 마치 배가 불러 터지기 일보직전인 개구리와 같은 모습이다. 그 안에는 매연으로 가득 차 있다. 순환기관을 방해하는 요소를 정리해서 가스를 도시 밖으로 배출하고 더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어 도시의 순환을 원활하게 바꾸는 대수술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파리는 크기가 작다. 지하철 지도만 있어도 도시를 활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왜냐면 생각보다 지하철 노선이 꽤 정확하게 그려져 있고 각 역마다 볼 수 있는 관광명소를 이정표 삼으면 정말 쉽게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익히기 쉬운 이 노선을 그래도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에펠탑에서 개선문으로 가는데 놓치는 풍경이 하나도 없다. 내 자전거를 타니까 내가 원할 때 아무 때고 출발 할 수 있다. 서둘러 열차 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다. 자전거도 전기 자전거라 적은 힘으로 빨리 도달할 수 있다. 

벨로폴리탄은 이런 자전거 이용의 장점을 살려 자동차의 수를 줄이고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기 위한 파리시의 정책 중 하나다. 친환경 정책으로 시작한 이 정책은 최근 코로나 시대를 맞아 출퇴근 시 집단 이동을 꺼리고 개인 이동을 선호하게 된 시민들에겐 꽤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시에서는 적극적으로 전기자전거의 수를 늘려나갔다. 완만한 언덕 정도의 경사를 가진 파리는 전기자전거면 충분히 이동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못 느낀다. 필자 또한 개인 전기자전거로 출퇴근 중인데 집에서 회사까지 자전거 도로로 11km의 거리, 왕복 22km를 이동하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

전에 지하철을 이용했을 땐 가는 데만 50분이 넘게 걸린 출근길이 30분으로 단축되어 오전에 조금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시간과 금전적 절약이 꽤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전거 도로 또한 기존과 다르게 많이 바뀌게 되었다. 기존 차로 옆에 페인트 하나로 영역표시만 해놓은 것을 떠나 인도, 차도처럼 자전거 전용 공간을 제공했다. 

도로는 더 이상 한가지 속도만 품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인도의 폭이 넓어지고 그 안에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과 충분한 녹지를 넣어주면 도심 속에 있는 새로운 유형의 공원이 된다. 실제로 갓길에 있는 지상 주차장을 줄이면 룩셈부르그 공원의 3배에 가까운 면적을 얻게 되고 이 면적을 친환경 공간으로 재탄생 시킬 계획까지 구상 중이다.

지상 갓길 주차장을 없앤 후 얻게 되는 면적의 크기. 룩셈부르그 공원의 3배 ! 엄청난 크기다.출처 : https://votez-velo.paris/un-velopolitain-pour-paris/
지상 갓길 주차장을 없앤 후 얻게 되는 면적의 크기. 룩셈부르그 공원의 3배 ! 엄청난 크기다.(출처=https://votez-velo.paris/un-velopolitain-pour-paris)

물론 이에 따른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자동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발이다. 안 그래도 좁고 답답한 파리의 차도를 더 줄이고 주차장까지 줄인다고 하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차도가 넓어질수록 인도의 폭은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도시의 주인은 사람에게서 자동차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주는 이점은 빠르고 시간의 제한(출발시간)을 받지 않는다 특히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듯하게 이동이 가능한 점이 가장 훌륭한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내(집)에서 실내(자동차)로 이동하여 실내(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외에 대한 개념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만드는 외부의 환경으로부터의 차단은 곧 우리가 사는 도시와 차단하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을 느끼며 도시에 머무는 것이 진정한 도시공간과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안 좋은 외부적 요인(소음, 공해, 자연재해)들은 물론 막는 것이 좋지만 이런 안 좋은 요인이 늘어난 원인은 역설적으로 도시와 사람 사이에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이 정책을 우리나라에 도입했을 때 잘 적용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날이 더워도 바람은 찬 고온 건조의 프랑스 여름과 달리 덥고 습한 고온다습의 우리나라의 여름은 다른 차원의 문제며, 최근 드러난, 전에 없던 심각한 장마의 피해 도시의 크기도 파리는 서울의 1/6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라 생활 범위, 출퇴근 거리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도 이 정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간단하다. 바로 도시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도시 거리의 형태나 디자인이 누구를 먼저 생각하고 고려하는지,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이해하지만, 조금의 불편도 감당하지 않으려 하는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먼저 이 도시정책은 묻는다. 

‘건강한 도시를 갖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쩌면 환경의 회복 전에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 할 인간성은 자연과 사람을 향한 배려와 존중이라는 걸 알리려는 정책이 아니었을까?

유무종 프랑스 유학생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도시설계사,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건축학 전공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Université Grenoble Alpes에서 도시학 석사졸업, 파리고등건축학교 Ecole spéciale d’architecture (그랑제꼴)에서 만장일치 합격과 félicitation으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파리 건축설계회사 AREP Group에서 실무 후 현재 파리 건축사무소 Ateilier Patrick Coda에서 근무 중이며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건물과 도시, 사람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우리의 삶의 배경이 되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유용하게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