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우리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시험(중간, 기말고사)이 끝나면 즉시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시험이 끝나면 그동안 공부한 것은 모두 새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렵게 공부하여 습득한 지식을 왜 시험 직후에 바로 잊어버린다는 것일까? 이는 소위 ‘벼락치기 공부’라는 것의 특성으로 공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소 과장된 말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노력하여 힘들게 얻은 지식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만큼 지식이 자신의 것으로 체화(體化)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이는 마치 유효기간이 지난 운전면허증이나 신용카드의 무효와 같이 자신이 소유하는 지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 즉 주입식 암기공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계다. 

필자는 청소년 교육의 관리자로서 어떻게 해서 학생들에게 삶의 유용한 수단이자 문제해결의 역량을 키우는 실용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이를 오랫동안 소유하여 활용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키울 것인가 하는 방안을 고찰하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는 ‘[명사] 가지고 있는 일. 또는 그런 물건’을 소지(所持)라 하고 역시 ‘[명사] 가지고 있음. 또는 그 물건’을 소유(所有)라 하여 둘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만 영어 사전에서 소지와 소유는 ‘possession, ownership’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실생활에서 우리가 소지하는 카드나 자격증이 유효기간이 끝나 갱신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듯이 학생들이 지식을 소지하는 것도 시험이란 유효기간이 끝나면 폐기처분이 된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기간을 갱신하여 더 오랫동안 소지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유욕이다. 마찬가지로 꼭 필요한 지식은 잠시 소지가 아니라 장기간 소유해야 하므로 여기엔 갱신이란 특별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왜 독서를 하는가? 사람에 따라서 이유야 많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대개 책을 읽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 중에는 책을 한 번 읽으면 결코 그 내용을 잊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여기엔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경청(listen)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관심을 갖고 읽으면 그 내용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그 단적인 예로 남녀가 좋은 감정으로 연애하면서 상대방에 관심이 집중될 때 오고 간 말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어느 날 문뜩 그 기억을 소환해 누군가가 말을 하게 되면 상대는 경끼 하듯이 놀란다. 이는 결국 독서할 때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행 우리의 학교교육은 2015 개정교육과정을 통해서 ‘바람직한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학생중심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말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단지 눈으로 보고 머리에 주입한 지식은 유효기간이 짧다. 그래서 진정한 배움이 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학생에게 이해한 것을 발표하도록 활동을 시키는 것이다. 학생의 발표는 유효기간이 끝나는 면허증을 갱신하는 과정과 같다. 왜냐면 사람은 말을 하면서 자기가 알게 된 지식을 비로소 자기의 생각으로 정립하여 완전하게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해를 심화시키고 착오를 수정하기도 하고 새롭게 정리하기도 한다. 이는 보기 좋게 하는 ‘정돈’ 과정을 넘어 완전한 소유 과정인 ‘정리’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포괄하는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방식, 즉 책을 읽고 질문하고 토론함으로써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러한 교육을 받은 유대인은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은 전 세계 1,500만밖에는 안되지만 그들이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문화 등 다방면에서 맹활약하며 노벨상 수상자들을 많이 배출한 배경은 바로 그들의 교육방식에 힘입은 것이다. 이는 결국 위의 예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교육에서 출발한다. 

필자의 최근 개인적인 사례를 들어본다. 교감이 되어 처음 부임 인사 때에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정말 역대 초유의 위기를 겪었다.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침부터 부산하게 작은 행위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선 예기치 않은 돌발 사고가 발생하여 순간 당황을 했다. 

하지만 잠시 긴 숨을 내쉬고 학생들에게 주목하여 이내 마음의 평정을 찾고는 그들이 그 순간에 듣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집중하여 평소 글을 쓰기 전에 개요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순발력을 발휘하여 돌파를 했다. 이것은 평소에 학생교육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을 거치는 습관이 체화되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성인의 경우에서처럼 학생교육에서도 발표수업을 통해 평소 타자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도록 학생 스스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쓰고 정리하고 발표하는 학생중심활동이 중요하다. 

이제 학생교육은 학생들이 단지 지식의 소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체화된 지식의 소유과정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가 가져다 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유해 보자. 유명한 작가들은 늘 메모를 생활화 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소유과정의 출발이다. 

또 유명한 연설가들을 보자. 줄리어스 시저(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가, 장군이자 작가였다. 그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 너마저”와 같은 간단명료한 언어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낸 정치예술가였다. 

그를 암살한 부르투스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벗 시저를 죽인 이유는 시저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라고 연설하여 몹시 분노한 로마 시민들을 진정시키기도 하였다. 

필자는 로마의 역사를 읽으면서 이 사건에 통해서 부르투스가 당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평소에 기억의 소지에 의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에게 체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분노하는 로마 시민이란 상대를 이해하고 당시 분위기를 파악하여 순간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지식의 창출을 보여준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라고 해석한다. 

그뿐이랴. 역사상 다방면에서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늘 메모장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즉석에서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고 또 음성으로 입력할 수 있다. 

이러한 단순 행위 이전에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또 시행착오를 거쳐 반복되는 활동을 통해서 삶과 연계하고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체화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은 앞으로 인류에게 상상 이상의 문화대혁명을 보여 줄 것이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폴러(Buckminster Fuller)는 인류의 지식 총량이 늘어나는 속도는 100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던 것이 1990년대부터는 25년으로, 현재는 13개월로 그 주기가 단축되었다는 ‘지식 두 배 증가 곡선’을 주장한 바 있다. 놀라운 사실은 2030년이 되면 지식 총량이 3일에 두 배씩 증가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엔 적정한 지식을 어떻게 소유해야 할까?

이제 학교 교육은 실생활에 불필요한 지식은 과감하게 취사선택하고 유용한 지식은 단지 소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지식으로 전환하여 소유해야 한다. 이것을 실현하는 기법은 비대면(On line)교육의 쌍방향 수업이든 대면(Off line)수업의 학생중심활동이든 지금보다 학생중심교육을 활성화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학교 교육을 창의적으로 혁신시키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줄 자산은 바로 이것이라 주장한다. 이른바 한국판 하브루타 교육의 전면적인 확대 실시다. 불행 중 다행히도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이것은 우리 교육의 총체적인 실천의지에 의해서 조금만 준비 단계를 보완하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기존 대면 교육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의 온라인 교육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에서도 새롭게 적용하여 실시할 준비가 필요하다. 필자는 2020년 상반기 현장에서 보고 관찰한 바에 따라 현재 우리 교사의 역량은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 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적극적인 연구, 그리고 이를 선도하는 교육이 책임교육을 구현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과감한 용기와 실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