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학년 2학기, ‘아무나(?) 반장 되어보기’ 소동
고교 3학년 2학기, ‘아무나(?) 반장 되어보기’ 소동
  •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 승인 2020.09.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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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고교 3학년 2학기의 반장 선거는 대부분의 3학년 학생들에겐 별 관심이 없다.

2학기 반장 선거를 새로 하니 어쩌니 하는 와중에 수시지원을 위한 생기부도 마감이 되고, 그러다보니 2학기에 뽑히는 반장·부반장은 그다지 주목도 받지 못하는데다가, 기간도 짧으니 더욱 그렇다.

따라서 반장·부반장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조금밖에 안 되고, 생기부에 기재해줄 수 있는 내용도 별반 많지 않다.

그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은 학급 임원 선출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학기 초에 비에서 반의반도 되지 않고,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 되어버려서 대부분 학급은 반장·부반장 선거를 2학기에 새로 하지 않고 그저 1학기 임원을 재임명하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

올해 우리 3학년의 대부분 학급도 1학기 때의 반장·부반장을 2학기에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실에 갔다.

ㅡ 오늘 5교시 학급 자율활동 시간에 반장·부반장 선거를 하라는데.
어떻게 우리 반도 1학기 때를 유지할까요, 우리 반은 새로 뽑을까요?

ㅡ 어? 우리 반은 새로 뽑아요, 쌤~~~!!!

아이들은 새 임원을 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학급 아이들은 한술더떠 '제비뽑기'로 반장을 선거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그래서 왜 ‘제비뽑기’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누가 되든지 상관없고 재밌을 것 같다는 말과 표정으로 장난스런 눈빛을 반짝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부분 학급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예하는 눈치들인데, 아이들입에서 새로 뽑자는 이야기가 나오니 현 반장 부반장들은 자기들이 학급에서 아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잘못했었나 하는 낙담이 순간 얼굴에 스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ㅡ 아무나 뽑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제비뽑기를 할 거라면, 지금의 반장 부반장을 그대로 유지해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아이들은 재차 담임인 나에게 부탁을 했다. 제비뽑기로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대로 들어주어도 되나 순간 망설였지만 다시 웃으며 아이들에게 대답했다.

ㅡ 그래. 여러분들이 원하는 거라면 우리 그렇게 해봅시다. 단 나도 조건이 있어요. 누가 제비를 뽑고 반장이 되더라도 변명 따위 하지 않기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과 사정이 있어도, 또 누가 되더라도 여러분들이 원해서 뽑는 거니까 그렇게 해서 뽑힌 반장 부반장은 변명하기 없기입니다.

누구든 내가 반장 부반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고, 자신은 안 걸릴 거라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공부해야 하는데, 나는 학급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 반장 부반장을 할 수 없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빨리 원래대로 유지하자고 발언을 하세요. 

여러분! 제비뽑기는 성경에도 나오는데 본래 '신탁의 방법'이었습니다.
신이 결정하는 방법인 것이고, 거기에서 결정되면 무조건 따르는 거지, 예외가 없었어요.

(사진=SBS 캡처)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제비뽑기 반장선거'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반장'과 두 장의 '부반장'이 쓰여진 쪽지를 제외한 16개의 백지 쪽지를 잘 섞어서 뽑기를 시작했다.

앞에서부터 할지 뒤부터 나와 쪽지를 가져갈지도 정하고, 한 명씩 나와 한 장씩 가져가는데 각자 모두가 제비를 손에 다 잡을 때까지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

열 여덞 명의 아이들이 모두 자기의 쪽지를 손에 쥐었다.

ㅡ 자, 개봉 시작!

아이들은 쪽지를 펼쳤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탄성이 터졌다.
그리고 쪽지를 뽑은 반장과 부반장이 결정되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될 일이었다.

담임인 나는 1학기 동안 열심히 잘했던 반장과 부반장 아이들이 혹여 상처를 받을까 봐 그게 제일 먼저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그대로 유지하자고 했다면 어떻든 1학기 때의 반장과 부반장이 제 역할을 잘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고, 새로 교체하자는 아이들의 요구는 지금까지 수고한 임원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갈아치우자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ㅡ 다른 반과 달리 오늘 우리 반은 2학기 임원 선출을 새로 했습니다. 1학기 반장·부반장은 잠시 일어나 주세요. 이 이벤트가 행여나 1학기 때 수고했던 반장과 부반장인 여러분이 잘못했기 때문에 갈아치우자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길 바랍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2학기에 임원은 사실 수시가 마감된 이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기회를 한 번 좀 더 준다는 것의 의미도 있고, 학급에 봉사와 심부름을 해야 하는 역할이니만큼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교체를 승낙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정말 열심히 수고해 준 반장과 두 명의 부반장에게 힘찬 박수로 그동안 수고에 감사를 표해주세요.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비로소 1학기 동안 수고한 반장과 부반장은 얼굴이 다소 편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2학기에 새로 제비를 뽑히게 된 반장과 부반장 또한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2학기 동안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이야기를 건넸다.

역시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이렇게 해서 다른 반은 대부분 교체하지 않는 반장과 부반장을 3학년에서 유일하게 우리 반에서만 새로 선출했다.

2학기에 뽑힌 반장과 부반장은 평소 추천과 동의의 절차를 거치기로 하면 결코 반장·부반장으로 선출되기는 어려운 아이들이 뽑혔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나마 학급대표가 되었다는 긍지와 뿌듯함에 어깨가 3cm씩은 올라간 듯 보였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활 속에서 작은 활력이 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우리 반은 2학기의 선거를 마쳤고, 환한 얼굴로 귀가를 했다.

역시 아이들은 상상할 수없는 생각이 몽글몽글 넘치는 신비한 생명체들임이 틀림없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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