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역에는 유명한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있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연산군의 생모 능역이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조선의 어두운 그림자와는 상관이 없다. 사진처럼 젊고 발랄한 대학생들의 기운이 넘쳐난다.사진=한국외국어대학교 홈페이지>

영화 ‘왕의 남자’로 일반인에게 다시 화제로 떠올랐던 연산군(燕山君)의 부침(浮沈)과 관련이 있는 동네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廢妃) 윤씨(尹氏)가 세상을 뜬 뒤 만들어진 묘가 회릉(懷陵)인데, 그 소재지가 바로 이곳 회기동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산군은 폭정으로 지탄받다 곧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다.

그 뒤 폐비 윤씨가 묻힌 묘소의 존칭인 릉(陵)을 깎아 내려 회묘(懷墓)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그 懷(회)라는 글자가 어려웠던지, 그에 비해 한결 쓰기 쉬운 회(回)를 붙여 회묘(回墓)로 적고 불렀단다. 그러나 동네 이름에 이미 죽은 사람이 묻히는 묘(墓)라는 글자를 쓰기가 거북해 그를 다시 고쳐 회기(回基)로 불렀다는 설명이다.

回基(회기)라는 두 글자 중에서 뒤의 基(기)는 제기(祭基)역을 지나오면서 한 번 정리했다. 그러니 여기서는 앞의 回(회)라는 글자를 살피도록 하자. 우리가 자주 쓰는 글자다. 우선의 새김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오)다’ ‘돌다’ ‘되돌리다’ 등이다. 때로는 ‘몇 차례’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일, 그중에서 가장 뿌듯한 게 회춘(回春)이다. 봄(春)의 자리 또는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回)는 뜻인데, 사람의 생물적 나이나 몸의 기능 등이 젊었을 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진짜 그렇게는 되기 힘들지만, 갑자기 몸과 기능이 좋아지면 우리는 그를 회춘(回春)이라고 적는다. 원래의 상태를 복원하면 회복(回復), 먼저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회귀(回歸)다. 죽을 뻔했다가 삶으로 돌아오는 일이 기사회생(起死回生)이다.

회전(回轉)은 그야말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다. 회진(回診)은 의사가 병실을 돌면서 진찰하는 일이며, 회고(回顧)는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는 작업이다. 회억(回憶)은 역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기억하는 일이다. 마음을 돌리면 회심(回心), 답을 정해 돌려주면 회답(回答), 먼저 받은 소식에 내 상황 등을 돌려 전하면 회신(回信), 차나 수레 등을 돌리면 회차(回車), 물건과 금전 등을 돌려받으면 회수(回收)다. 거두어 들여 사안이나 약속 등을 취소하는 일은 철회(撤回)다. 상황이 열악해졌으나 그를 바로잡아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리는 일이 만회(挽回)다.

回(회)는 또 이리저리 난 굽은 길, 혹은 구불구불 이어진 모양을 일컫기도 한다. 기기판의 회로(回路)가 그 경우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회랑(回廊)이라고 적는다. 둘레를 여러 번 이리저리 도는 경우를 선회(旋回), 앞의 대상을 비켜 멀리 도는 것을 우회(迂回), 직접 맞는 경우를 피하면 회피(回避)다. 덧붙여 횟수(回數)를 가리키기도 한다. 1회, 2회…에서의 ‘회’가 바로 이 글자 回다. 일회성(一回性)은 한 차례 사용한 뒤 버리는 플라스틱 제품 등에 붙는 단어다.

이 글자가 종교적 색채를 띠는 경우는 윤회(輪回)가 대표적이다. 생명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짓는 업(業)에 따라 하늘, 사람, 축생 등의 여섯 갈래 길인 육도(六道)의 삶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종교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새삼 옷깃을 여미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성어가 회광반조(回光返照)다.

回光(회광)은 석양(夕陽)을 가리키는 단어다. 返照(반조)는 돌이켜 사물을 비추는 것. 따라서 일몰의 석양이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는 경우다. 사라지기 전 잠시 빛을 발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만 보면 빛(光)을 돌이켜(回) 거꾸로(返) 비추는(照) 일이다. 바깥으로만 나도는 시선을 거꾸로 제게 돌려 내면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깊은 성찰(省察)을 가리키는 성어이기도 하다.

남에게 향하는 비판의 시각을 내면으로 돌려 스스로를 점검하고 비판해 보는 작업인데, 말처럼 쉽지는 않겠으나 그런 성찰의 시간을 자주 가질수록 남을 대하는 시선은 이해와 관용으로 펼쳐질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다가 종내는 더 큰 걸음 하나를 내딛을 수 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 봐도 내 눈 안의 대들보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깊이 스스로를 성찰하다 보면 내 마음속의 결정적인 잘못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그를 철저하게 뉘우치고 버린다면 깨달음의 경지로 내닫는 법. 그것을 불교 용어로 회두시안(回頭是岸)이라고 적는다.

머리(頭) 돌리니(回) 언덕(岸)이라(是)는 구성이다. 언덕을 뜻하는 岸(안)은 깨달음으로 인생의 고해(苦海)를 무사히 건너 오르는 피안(彼岸)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回光返照(회광반조)나 回頭是岸(회두시안) 모두 돌이켜보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돌이킴과 돌아봄이 왠지 멋져 보인다. 그 시선의 끝이 나의 내면을 향할 때 사람은 정신적으로 자랄 수 있는 법이다. 한자 回(회)의 속내가 제법 깊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