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털어놓는 고민에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면 좋을까?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를 이끄는 대표이자 '그림책 한 권의 힘'의 저자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고민에 그림책으로 답해주고 있다. 그림책을 통해 감정, 관계, 자존감 등 삶의 문제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의 숨을 쉬도록 숨구멍을 틔워준다. <에듀인 뉴스>는 <이현아의 그림책 상담소>를 통해 이현아 교사로부터 아이들과 마음이 통(通)하는 그림책을 추천받고 그림책으로 진행 가능한 수업 팁을 전한다.

그림책 '노를 든 신부' 표지.(오소리 글·그림, 이야기꽃, 2019)
그림책 '노를 든 신부' 표지.(오소리 글·그림, 이야기꽃, 2019)

[에듀인뉴스] “선생님, 저는 뛰어나게 잘하는 게 없어요. 제가 가진 건 다 조금씩 부족하고 어설픈 것 같아요.”

이따금 아이들은 본인이 가진 재능을 구두 한 짝이나 노 한 짝처럼 애매하고 부족한 것으로 여긴다. 구두도 두 짝이 있어야 신을 수 있고 노도 두 짝은 되어야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가진 건 어딘지 조금 모자라게만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노를 여러 개 가진 사람들은 커다란 배를 만나서 빠르게 바다로 나아가는 것만 같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뗀 나, 겨우 노 한 짝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림책 <노를 든 신부>를 보면 주인공 소녀도 부모님께 노 한 짝을 선물 받는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가고 싶었던 소녀는 신부가 되어 섬을 떠나길 결심한다. 바닷가는 짝을 지어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신부에게 돌아오는 건 이런 대답뿐이다.

“미안하지만 노 하나로는 갈 수 없어요.”

신부는 차라리 숲속을 향해 걷기로 한다. 그때 늪에 빠진 사냥꾼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사람 살려!”

신부가 밧줄을 찾느라 꾸물대자 사냥꾼이 소리친다.

“당신에겐 기다란 노가 있잖소!”

사냥꾼의 말을 듣는 순간, 신부는 눈이 번뜩 뜨인다.

‘아하, 내가 가진 노 한 짝으로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구나!’

사냥꾼을 구해준 신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신념을 회복한다. 신부의 모습을 보니 노 한 짝을 두 팔로 번쩍 든 채 어깨를 펴고 우뚝 서 있는데, 당당한 자세에서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제 신부는 ‘내가 가진 게 노 한 짝뿐이라 영영 배에 타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숲속을 무대 삼아 노 한 짝을 힘차게 휘두르며 살기 시작한다. 내 손에 가진 것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내가 가진 노 한 짝을 나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어느 날, 신부는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다. 노 한 짝을 야구 방망이 삼아 휘두르며 경기를 즐기는데, 어깨에 힘을 실어 야구공을 제대로 맞췄더니 ‘타-악!’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오호라, 이거 제대로 한 방 맞았구나. 내가 잘하는 건 바로 이거였어!’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들어보니 신부가 날린 홈런공이 노란 햇살을 가르며 끝없이 날아간다. 그동안 뚝심 있게 길러온 노 한 짝의 힘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이다.

신부가 처음 노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갔을 때를 다시 떠올려보자. 그때 신부는 노 한 짝으로 할 수 있는 건 그저 배를 젓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짝을 찾아 배를 타려던 사람들도 어떻게든 적당한 배를 구해서 열심히 노를 젓는 것만이 섬을 떠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바닷가를 떠나 오히려 숲을 향했던 신부는 본인이 가진 노 한 짝을 얼마나 유연하게 쓸 수 있는지 경험했다. 노 한 짝을 나답게 휘둘렀더니 배를 젓는 것 말고도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구하거나 열매를 따먹는 데 쓸 수 있었고, 홈런을 치는데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신부가 품었던 처음의 소망, 섬을 떠나 모험을 하고 싶다던 바람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림책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홈런왕 신부는 유명한 야구팀의 감독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 중에서 추운 지방의 야구팀과 계약을 맺고 유유히 섬을 떠나는데, 신부 앞에는 배가 아닌 비행기 한 대가 준비되어 있다.

노 한 짝을 손에 들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신부의 뒷모습은 누구보다 여유롭고 위풍당당하다. 뒤 면지를 펼치자 신부를 태운 비행기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간다.

부족하고 서툰 탓에 남들이 다 타는 배에 올라타지 못했다고 움츠러든 아이가 있다면, 이 그림책 펼쳐 보여주자. 그리고 씩씩하고 다부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주자. 

“나는 네가 가진 노 한 짝의 힘을 믿어. 그러니까 네 손에 가진 것을 업신여기지 말고 너답게 휘둘러봐도 괜찮아. 그러다보면 너의 때에, 너만의 방식으로 ‘타-악!’ 제대로 한 방 날리는 날이 올 테니까.”

이현아 교사의 그림책 수업에 참여한 학생의 모습.(사진=이현아 교사)
이현아 교사의 그림책 수업에 참여한 학생의 모습.(사진=이현아 교사)

▶현아샘의 그림책 수업 tip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내가 가진 내면의 힘을 스스로 재발견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그림책 질문 활동입니다.

1. 내가 가진 나만의 노 한 짝은 무엇인가요? 부족하거나 서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그동안 갖고 있으면서도 활용 방법을 몰랐던 장점을 생각해보세요. 콤플렉스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새롭게 재발견한 나만의 특징을 떠올려 봐도 좋습니다.

2. 나만의 시그니처 포즈는 무엇인가요? 신부가 처음 노 한 짝의 힘을 실감했을 때 두 팔을 번쩍 들고 어깨를 쫙 펼친 것처럼, 나만의 시그니처 포즈를 힘껏 취해보세요.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