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칼럼] 알고리즘이 되어 버린 학교를 구하는 길은?
[전재학 칼럼] 알고리즘이 되어 버린 학교를 구하는 길은?
  •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 승인 2020.09.15 2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듀인뉴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우리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 인공지능과 관련된 낯설은 용어들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알고리즘이었다. 

물론 전문적인 분야에선 매우 기초에 불과한 용어지만 일반 국민들은 생소함에 관심이 폭발하기도 했다. 알고리즘은 한 마디로 ‘선택이 만들어지는 기본 원리(시스템)’을 말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무엇이 좋은지 가장 효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은 ‘효율성’에 있다. 

세계 지성사에 혜성처럼 등장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선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감각과 감정이라는 것은 실은 알고리즘이다. …… 배우자, 직업, 거주지 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들을 포함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99퍼센트는 감각, 감정, 욕망이라 불리는 매우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부연하고 있다. 

결국 그는 알고리즘을 인간을 대표로 하는 유기적(의식이 있는) 알고리즘과 AI 같은 기계적 시스템이 대표인 비유기적(의식이 없는) 알고리즘으로 구분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다’는 생각의 시작이다. 인본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자유’를 본격적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자유는 사피엔스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인지혁명과 과학혁명은 인간이 서로 협력하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그런데 인간을 육성하는 학교가 기계적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학교에서 자신의 의미를 생성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학교는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교사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가 지나치게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는 한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들이 어떻게 유연한 협력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유연한 협력을 펼칠 수 있는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연대(連帶)라는 상호작용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간이 연대하여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서는 의미의 그물망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그물망은 연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직접 짜야 하는데 교사들은 스스로 그물망을 짜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교사들이 살아갈 세계, 즉 학교 현장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교사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사들은 그러한 가치형성 과정에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예컨대 교육정책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회의만 하더라도, 교사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에 개최된다. 안타깝게도 교사들은 참석할 수가 없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교육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에도 교사의 자리는 생색내기 용도에 불과하다. 이론가들과 관료들만 교육에 대한 의미의 그물망을 짜고 있는 꼴이다.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교사들은 상부 당국으로부터 그 목적을 받아들이고 상부 당국은 현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에서 받아들인다. … 이러한 상황이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지성이 자유롭게 발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 이것은 곧 교사의 경험에 대한 불신이며, 이 불신은 학생의 반응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게 된다.” ( 『교사의 독서』 재인용)

알고리즘은 정보 처리를 위해 개인의 이야기보다 데이터화된 문서를 절대시한다. 이런 현상은 학교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즉, 개인의 기억과 이야기보다 문서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엔 교사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관료 조직화 되어 있는 학교는 철저히 알고리즘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간단한 사례를 보충해 보자. 교사들은 평상시 무의식적으로 “일을 너무 빨리하지 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불행히도 이 말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숙고하라는 말이 아니다. 생각하지 말고 양식이 결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끝내라는 말이다. 이는 학교가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말이고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학교 조직이 차분한 사색보다 빠른 취합과 결정을 중시하는 관료 조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다 보니 교사도 교육활동의 탁월성보다 관리자의 취향에 더 신경을 쓰는 일이 반복된다. 이에 대해 현실에선 내용의 방향을 꼼꼼히 지도하는 관리자도 드물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교육이 본질보다 현상에 치우치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가치 혼동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이제 학교는 더 많이 해야 더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본주의의 교리(dogma)에서 벗어나 사회 평등, 어른 공경과 같은 인류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가치 전도에 의한 소외(疏外) 현상을 예방하는 것이고 조급한 결정과 조잡한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는 학교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자본주의 도그마를 덜어내지 못하는 학교에서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바로 학생이자 교사이다.

그래서 교사는 이러한 시스템에 저항하고 인간적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결론적으로 학교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알고리즘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숙고와 여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진정으로 학생과 교사가 사색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우정, 서로를 다독이는 교사들의 따뜻한 손길을 회복해야 한다. 교사보다 먼저 병든 학교! 교사를 치유해 줄 공간! 이것이 우리 학교의 현주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을 휴머니즘으로 전환해야 한다. 

자본이 공동체를 파괴하듯 손님이었던 알고리즘이 인간적 가치를 밀어내고 주인 자리를 꿰차버린 학교는 소위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차버리는 격이다. 미래의 학교는 기계적인 알고리즘으로부터 인간의 소중한 자유를 지키는 신성한 곳, 바로 휴머니즘이 꽃피는 공간이어야 한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eduin@eduinnews.co.kr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Eduin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