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바라보는 건축의 시각

[에듀인뉴스] 우화(寓話)는 장르적으로 보면 서사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이 절충된 단순 형식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비교적 저차원적인 사리 분별을 위한 것이나 우리 삶에 알아두면 좋은 실용주의적인 것입니다. 같은 형식으로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도시와 환경, 그를 이루는 많은 건물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진솔한 물음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그림 같은 집

[에듀인뉴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진의 노래 ‘임과 함께’에 나오는 가사 첫 줄이다.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살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겠다는 소망이 담긴 노래에 잠시 딴지를 걸어보자면, 그림 같은 집을 지을 때 어떤 그림을 골라야 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진을 잘 찍으면 그림 같다 칭찬하고 그림을 잘 그리면 사진 같다고 칭찬하는 이 시대에 도대체 어떤 그림 같은 집이 좋은 집이라 칭찬받을 수 있을까?

피에트 몬드리안 -Composition with yellow patch (출처=https://www.wikiart.org/en/piet-mondrian/composition-with-yellow-patch-1930)
피에트 몬드리안 -Composition with yellow patch (출처=https://www.wikiart.org/en/piet-mondrian/composition-with-yellow-patch-1930)

먼저 그림부터 골라보자. 정확하게 집이 그려져 있는 구체적 그림보다는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추상화를 고르고 싶다. 추상화 몬드리안의 그림을 골라보자. 하얀 캔버스에 검정 선을 긋고 작은 면에 노랑색 하나 채워 넣은 단순한 그림이다.

개인적 시각으론 이 그림은 상당히 균형 잡혀있다. 전체적으로 비율과 비례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잘 짜여있다. 커다란 하얀 부분들이 검은 선에 의해 분배된 가운데 조그만 노란 부분은 그림의 중심을 잡는 무게 추 역할을 감당한다. 색을 가짐으로 자칫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무게감을 적절한 크기로 설정하여 안정적인 균형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해석한 내용이 있겠지만 지금은 이 그림을 건축적 입장에서 해석하여 건물이 되기 까지 과정을 내 나름대로 생각한 내용이 있어 나눠보고자 한다. 그림 같은 집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너그러이 읽어 주시길.

그림은 2차원 평면에 그려지는 예술이다. 점, 선, 면의 요소로 주어진 캠버스의 크기를 나눠 그림의 주제나 배경이 들어갈 위치를 잡고 표현한다. 2차원 평면에서는 한 면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얼굴을 그린다고 했을 때, 내가 보는 얼굴의 한쪽 면, 앞모습 혹은 옆모습, 비스듬히 본 모습 중에서 하나의 모습만 담을 수 있다. 모든 평면 위에 그려지는 그림은 한번에 한 면만 볼 수 있고 동시에 여러 면을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만약 2차원의 그림이 3차원의 공간을 만난다면 어떨까? 그림을 건축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우선 몬드리안의 그림을 2차원이 아닌 3차원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3차원에서 점과 선은 없다. 단지 면만 존재할 뿐이다. 건축의 평면도를 기억하는가? 선으로 그린 도면이지만 근본은 위에서 바라본 벽면을 똑바로 내려다본 그림이다.

따라서 건축 도면에 의해 해석된 3차원 몬드리안의 그림에는 선이 없다. 또 다른 해석으로 선은 어쩌면 누워있는 검정 사각기둥일지도 모른다. 기둥끼리 서로 만나 공간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교차점은 위에서 바라본 사각 기둥일지도 모른다. 

그림에서 하얗게 된 면도 나름의 해석이 있다. 캔버스의 색은 보통 하얀색이다. 하얀 부분은 색을 안 칠해도 하얀색, 하얀색을 칠해도 하얀색이다. 난 이 그림을 3차원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색을 칠하지 않은 하얀색은 무(無)색이며 따라서 관념적으로 흰 부분은 비어있다고 할 수 있다. 

투명의 육면체 안에 담긴 몬드리안의 그림 뒤에는 우리가 모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직접 만들어본다면 어떨까? 

유무종 -피에트 몬드리안의 Composition with yellow patch을 공간으로 재구성 (나무 젓가락, 우르락, 아크릴, 색지)
학생이라 당시 돈이 없어서 나무 젓가락에 검은 칠을 해서 만들었던 슬픈 기억이…(사진=유무종)

3차원으로 옮긴 몬드리안의 그림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그림과는 다른 모양의 그림도 볼 수 있고 대각선으로 바라볼 때 각 요소들이 만나 만드는 공간감도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기본으로 건물을 짓는다면 어떤 형태의 건물이 나올까? 이 때 건축가들은 컨셉을 잡았다고 얘기한다.

리트펠트의 슈뢰더 하우스 외부(좌), 내부(우) 출처=https://www.archdaily.com/99698/ad-classics-rietveld-schroder-house-gerrit-rietveld/5037f2cf28ba0d599b000608-ad-classics-rietveld-schroder-house-gerrit-rietveld-photo?next_project=no
리트펠트의 슈뢰더 하우스 외부(좌), 내부(우) 출처=https://www.archdaily.com/99698/ad-classics-rietveld-schroder-house-gerrit-rietveld/5037f2cf28ba0d599b000608-ad-classics-rietveld-schroder-house-gerrit-rietveld-photo?next_project=no

에엥? 몬드리안이 건축도 했어? 할 수 있겠지만 이 건물은 네덜란드의 리트펠트라는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가 설계한 슈뢰더 주택이다.

슈뢰더 주택은 몬드리안의 그림의 3차원 입체판과 같다. 몬드리안과 함께 데스틸 운동에 참여함으로 영감을 얻어 공간을 구성할 때 균형 잡힌 색 분배와 공간 분할로 데스틸의 정신을 잘 드러내었다.

슈뢰더 부인의 요구로 설계된 이 주택은 1924년에 완공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면 평범한 형태지만 당시 유럽의 1920년대 건물의 모습을 감안했을 때 이 건물이 던진 파격적 형태와 미적 기준은 완전히 저 세상에서 건너온 듯한 모습이 분명했을 것이다.

처음 이 건물을 의뢰할 당시 슈뢰더 부인은 아이를 셋 둔 과부였다. 그녀는 확고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던 건축주로 가족적인 고려사항을 또렷하게 관철시킨 결과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지은 주택들 중 보기 드물게 가사노동과 아이들의 생활이 편리한 주택이 되었다. 

후에 이 건물 또한 유네스코의 지정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었는데 저번시간에 언급한 빌라 사보아와 참 결과가 다르지 않은가? 건축주로서 슈뢰더 부인은 그녀만의 기준과 확고한 공간적 요구를 스스로 끝까지 관철하였고 건축가도 자신의 건축철학을 고수했지만 건축주의 요구 또한 놓치지 않고 잘 반영한 결과라 생각한다. 요즘 말로 건축주와 건축가의 케미가 잘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임과 함께’의 후렴구 가사는 다음과 같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라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우리 모두가 사는 삶이 다르듯 서로 다른 삶이 담길 공간의 형태 또한 다양해야 한다. 오늘날 공간의 미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집값이 아닐까? 물론 내가 사는 집의 집값이 높다면 그건 정말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 집값의 가치를 결정 짓는 요인이 단지 대기업에서 공급하는 몇 평짜리 아파트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누릴 안락한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주변의 학군과 학원가가 아니라 좋은 이웃과 다양한 삶을 나눌 수 있는 열려있는 동네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비록 초가집이어도 집값이 강남에 지어진 대기업 고층 아파트와 맞먹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억했으면 좋겠다. 슈뢰더 주택을 시대를 뛰어 넘는 명품으로 만든 건 대기업 브랜드가 아니라 당시 무명이었던 건축가의 인정받지 못했던 철학이었고, 주변 학군을 따지는 학부모의 시각이 아니라 세 아이를 위한 따듯하고 아늑한 집을 갖기 위한 한 과부의 요구였음을.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도시설계사,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건축학 전공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Université Grenoble Alpes에서 도시학 석사졸업, 파리고등건축학교 Ecole spéciale d’architecture (그랑제꼴)에서 만장일치 합격과 félicitation으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파리 건축설계회사 AREP Group에서 실무 후 현재 파리 건축사무소 Ateilier Patrick Coda에서 근무 중이며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건물과 도시, 사람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우리의 삶의 배경이 되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유용하게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