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털어놓는 고민에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면 좋을까?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를 이끄는 대표이자 '그림책 한 권의 힘'의 저자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고민에 그림책으로 답해주고 있다. 그림책을 통해 감정, 관계, 자존감 등 삶의 문제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의 숨을 쉬도록 숨구멍을 틔워준다. <에듀인 뉴스>는 <이현아의 그림책 상담소>를 통해 이현아 교사로부터 아이들과 마음이 통(通)하는 그림책을 추천받고 그림책으로 진행 가능한 수업 팁을 전한다.

[에듀인뉴스] “만약 걱정이 눈에 보인다면, 어떤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걱정’이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보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그림으로 표현했더니 각양각색의 장면이 펼쳐졌다.

“제 머릿속에 걱정은 유리 어항 모양을 하고 있어요. 실수해서 떨어뜨리면 산산조각날 것 같아서요.”

“저는 걱정을 커다란 회색 그림자로 그렸어요. 걱정 때문에 저한테 그늘이 생기는 느낌이 들거든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다보면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감각으로 소통할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다양한 심상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와글와글 꺼내기 시작하면 펼쳐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그 녀석, 걱정>이다.

그림책 '그 녀석 걱정' 표지.(안단테 글, 소복이 그림, 우주나무, 2018)
그림책 '그 녀석, 걱정' 표지.(안단테 글, 소복이 그림, 우주나무, 2018)

이 그림책은 ‘걱정’이라는 감정을 좁쌀 여드름으로 형상화해서 목덜미와 뺨에 돋아나도록 표현했다.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 날, 사춘기 여드름처럼 성가신 ‘걱정’이란 녀석이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뾰루지 짜는 것처럼 이 녀석도 손톱으로 쪽 짜서 없애버리면 좋으련만, 사라지기는커녕 야구공만한 덩어리로 커져만 간다. 급기야 머리에 혹이 난 것처럼 불룩하게 솟아오르더니 온종일 나를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선생님, 오락실에서 두더지 머리가 튀어나오면 방망이로 때리는 게임해본 적 있는데요. 머리에 걱정이 솟아난 걸 보니까 꼭 방망이로 맞은 두더지 같아요.”

그림책 속 아이는 방망이에 한 방 맞은 두더지처럼 점점 울상이 되어 가는데, 머리에 불룩하게 솟아난 걱정은 날이 갈수록 자라나 거인처럼 거대해진다.

“제발 그냥 가주면 안 돼?”

급기야 아이는 울면서 사정하는데, 이 때 걱정이 들려주는 대답을 우리 모두 밑줄 긋고 경청해야 한다.

“네가 보내 줘야 가지. 나를 보낼 수 있는 것도 너야. 나를 똑바로 봐. 그리고 잘 생각해 봐. 너한테 왜 내가 왔는지.”

아이는 그제야 용기 내어 고개를 들고, 걱정이라는 녀석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랬더니 그 녀석의 얼굴에 전학생의 얼굴이 겹쳐져 보였다.

아이가 전학생을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걱정이 생겨났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친해지고 싶은데 거절당할까봐 불안한 마음, 가까워지고 싶은데 싫어할까봐 움츠러든 마음이 걱정을 점점 커다랗게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애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이가 던진 질문에 걱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우리 모두 두 번째 밑줄을 쫙 그어보자.

“넌 어떤 친구가 좋니?”

“나한테 친절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바로 그거야. 네가 먼저 그 애한테 친절하게 해 봐. 그럼 그 애도 널 좋아할걸?”

걱정이 알려준 것은 관계를 지혜롭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남이 나를 싫어할까봐 걱정하면서 웅크리는 대신, 내가 원하는 친구의 모습 그대로 내가 먼저 행동해보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건네줬으면 하는 다정한 말을 내가 먼저 꺼내어보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남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친절을 내가 먼저 베풀어보면, 마치 선순환하듯 따뜻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아이와 걱정이 나란히 침대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창밖의 달빛이 방 안을 따스하게 비춘다. 노란 달빛을 쬐고 있는 아이의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니 더없이 평온하고 견고한 모습이다.

어느새 걱정은 다시 한 손에 잡힐 만큼 작아지고 순해졌다. 아이는 이제 걱정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걱정아, 잘 가. 너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웠어”

그런데 걱정은 아이와 헤어질 생각이 없는지, 이별을 아쉬워하는 대신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땐 놀라거나 겁먹지 마. 안녕!”

이마에 돋아난 여드름을 다 짜내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내 얼굴에 피지 따위는 없을 거야!’ 외치면서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며칠 밤만 자고 일어나면, 이번엔 보란 듯이 코 옆에 더 커다란 여드름이 돋아날 수 있다.

‘걱정’이라는 성가신 녀석이 피지선이 발달한 사춘기시절 여드름처럼 자꾸 나에게 돋아난다고 해도, 이제는 놀라거나 겁먹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이하자.

걱정이 찾아오면 손톱으로 무리하게 짜내어서 흉터를 남기기보다는, 자연스레 무르익어 고름이 작아질 수 있도록 찬찬히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눠보자.

이 ‘걱정’이라는 녀석, 가만히 이야기해보면 생각보다 지혜롭고 포근한 구석이 있으니까.

▶현아샘의 그림책 수업 tip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걱정’이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보는 그림책 수업 활동입니다.

1. 만약 ‘걱정’이라는 감정이 눈에 보인다면, 어떤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해봅니다.

2. 내가 그린 걱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생각해봅시다. 나한테 왜 이 녀석이 찾아왔을까요? 이 녀석이 찾아 온 첫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걱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