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10월 2일은 노인의 날! 노인의 날은 무엇이고, 노인이란 무엇인가?

[에듀인뉴스] 199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45차 유엔총회에서는 날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 문제에 대하여 세계적·국민적 관심을 고취하고 노인에 대한 공경과 감사한 마음을 새기기 위하여 10월 1일을 ‘세계노인의 날’로 제정하였으며, 다음 해 10월 1일 전 세계 유엔사무소에서 제1회 세계노인의 날 행사를 거행했다.

대한민국은 1997년 노인복지법 제6조(노인의 날 등)에 따라 노인의 날을 제정하되 세계노인의 날인 10월 1일이 국군의날과 겹침에 따라 다음날인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결정하고, 10월을 경로의 달로 지정하였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은 경로효친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및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미풍양식이 사라진 지 오래고 오히려 노인을 핍박하고 노인을 폄하하는 현실. 심지어 자신의 뿌리이고 정체성인 부모마저 외면하는 오늘날의 심각한 현실에서 노인의 날을 맞이해 도대체 노인이란 무엇이며 노인이란 누구이며 노인의 삶과 역할은 어떠한지 성찰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노인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100세 시대에 오늘의 노인이 국가와 국민과 이웃을 위하여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심도 있게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인(老人)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다. 하지만 또 다른 뜻을 찾아보면 ‘노련하다, 익숙하다’라는 의미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이처럼 사전에는 함께 나와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전자인 노인(老人)의 의미로 ‘나이가 많고 할 일 없이 가정과 사회에 부담만 주는 세대’라는 시대정신과 시대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는 아직도 노인(老人)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뛴다. 왜 이토록 노인(老人)이란 단어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원히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게 된다.

필자는 한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8살까지 친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인 노인의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노인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가정의 대소사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빨리 커서 노인이 되는 것이 필자의 꿈이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에 본 하얀 무명적삼을 입으신 아름다운 모습과 하염없이 베풀어주신 할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필자는 노인(老人)을 누구나 생각하는 ‘나이가 많은 늙은이’로만 보지 않고 ‘나이를 먹는 만큼 모든 일에 노련하고 익숙한 사람’으로 보았다. 즉 노인이 되면 풍부한 경험과 경륜, 지혜로서 이웃과 사회를 선도하는 선배, 스승, 연장자, 원로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노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지금까지 한평생을 노인을 가장 사랑하며 노인과 함께해오지 않았나 싶다.

요즈음 고령사회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사회에 만연해지면서 에이지즘(ageism)이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에이지즘(ageism)이란 연령을 근거로 한 고정관념 및 차별 즉 ‘노인차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1969년 미국의 노인의학 전문의인 로버트 버틀러(Robert Butrer) 박사가 만든 용어로서 노인편견과 무시로 특징되는 사회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노인(老人)을 식당이나 카페에서 ‘물 흐린다’라며 문전박대하고, ‘그 나이엔 원래 아파요’라며 자식도 마음의 상처를 주며, ‘틀딱충’(틀니를 끼는 노인을 비하하는 신조어), ‘꼰대’(세대를 비난할 때 쓰는 표현) 등 노인 비하의 말들 즉 에이지즘(ageism)이 우리의 일상에 만연해 있다.

언제부터인가 젊음은 칭송받고 늙음은 폄하되어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네요’가 덕담이 된 지가 오래다. 늙음이 현명함과 지혜를 뜻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황은 무척이나 달라졌다.

왜 이런 현상이 만연한지 짚어보니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한 시대가 되면서 나이 듦 즉 연륜의 가치를 잘 몰라서인 것 같다. 노인이야말로 우리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신 존재이며 우리 미래의 모습이고 삶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가족으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웃어른에 대한 공경(恭敬)과 효(孝)를 답습하고, 밥상머리에서 예절을 배웠다. 근엄함과 여유를 가지고 응원해 주시는 어른의 자세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의 뿌리이자 내가 나아가야 할 나의 미래라는 생각을 가졌다. 노인이 집안의 어른이고 주인공으로서 능력과 힘을 가진 원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는 웃어른을 보고 배울 기회도 없고,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으니 이로 인하여 노인(老人)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여 에이지즘(ageism)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진 것 같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의무적으로 노인교육과 인성교육 시간을 부여해야 하며 중·고·대학에서도 교육을 통한 세대 간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노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가르치고 의식개혁을 이끌어야 한다.

옛 격언 중 ‘노인(老人)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집안에 노인(老人)이 안 계시면 다른 집 노인(老人)이라도 모셔라’라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어서 노인(老人)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의미하는 노인(老人)의 노련함과 익숙함이 축적된 삶의 지혜와 경륜이 쌓여 사회적으로 대접받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필자는 많은 고서를 접하고 성인들의 깨우침을 가슴에 담으면서 또 한 가지 깨우친 것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성인들도 60이 넘은 노인(老人)이 되어서야 지혜가 빛이 발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혜는 책 속의 지식과 달라 귀한 시간 속에서 수많은 것을 겪고 이겨내 얻는 결실이다. 갖은 풍파를 이겨낸 인생과 삶의 흔적만큼 능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필자는 1965년 만 18살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부모님의 친구이신 노인(老人)을 공경하고 노인(老人)의 가치를 찾아 드리기 위해 한얼경로교실을 설립하였다. 197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인대학인 한얼노인대학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설립할 당시 많은 이들이 노인(老人)에게 무슨 교육을 하냐고 반문했다. 그때마다 필자의 마음을 담은 ‘나와 노인’이라는 자작시(詩)로 답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 늙어 노인 되고 노인 젊어 나였으니 나와 노인은 둘이 아니고 하나로다 / 인생은 영원한 것 나 젊음 다 바쳐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을 위로하여 / 영원한 나의 삶 여기에 행복과 보람이 있으리」

노인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나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이다.

노인(老人)의 주름진 얼굴 모습에서 인생의 경륜을 배우고, 굽어진 등을 보면서 삶을 배우며, 흰 머리에서 지혜를 배워온 세우월, 필자는 이제 그때의 할머니보다도 더 많은 나이를 먹었다.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첫째도 ‘노인(老人)’, 둘째도 ‘노인(老人)’, 셋째도 ‘노인(老人)’이라고 답하겠다.

필자는 청소년이나 지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보면 청소년기는 이미 경험한 나의 과거이다. 그러나 노인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미래이고 나의 미지의 세계이며, 앞으로 가야 할 나의 방향이자 꿈이고 희망이다.

필자가 경험해 본 바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의 모습보다 경륜이 쌓인 성숙하고 아름다운 노년이 참된 가치를 지닌다. 빛나는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대 김동길 교수나 국민MC 송해의 모습이 더욱 값지고, 이미 100세를 넘긴 연세대 김형석 교수의 삶과 인생이 더욱 부럽고 그립다.

등이 굽고 이빨이 빠지고, 얼굴에 주름진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흔적을 느끼며 그동안 건강관리를 잘하시어 저 나이까지 살고 계시는 노인이 부럽다.

과연 필자는 저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 필자가 저 나이에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인간이 살아있는 존재의 이유 하나만으로도 노인을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노인의 모습에서 인생과 삶의 지혜를 배우며 늙어가는 아름다운 필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다리며 의미 있고 보람 있는 행복한 꿈을 꾸며 살았다. 필자에게 노인은 전부이며 내 인생이자 희망이고 행복이었다.

새벽을 알리는 동트는 햇살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감성을 울리는 것은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이다. 열정과 정열의 신록의 싱그러움도 희망차지만, 빨갛게 익은 결실의 열매야말로 희망으로 가득 찬 기쁨이다. 여름의 푸른 산 푸른 숲, 푸른 나무도 아름답지만, 붉게 물든 가을 단풍에 한 잎, 두 잎 떨어져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는 그 아름다움에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필자의 삶은 이러한 모습에서 인생의 가치와 존재를 느끼며 살아온 파란만장한 파도였다.

필자가 아직도 인생의 항해를 계속하는 이유는 익어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은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참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인생이 무엇인지, 노인이 무엇인지를 노인의 가치를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다.

필자도 18살 청소년시절에 시작한 노인교육 노인대학 노인공경 노인사랑이 어느덧 80살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노인은 대접받기 원하지 말고 공경받기 기다리지 말고 먼저 깨어난 노인으로서 살아있는 그 날까지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약자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기 바란다.

비로소 노인의 경륜과 지혜는 빛날 것이며 노인은 인류와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노인은 필자와 우리에게 결코 지나간 세월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과 횃불이고, 미래가 될 것이며,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역사가 될 것이다.

노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뿌리이자 근간이다. 정체성이고 삶과 인생의 흔적이며 성공한 완성된 인간이다. 역사의 산증인이고 인류의 보배이며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노인이 남긴 흔적과 발자취와 교훈은 역사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소중한 가치로 빛날 것이다.

노인은 나의 과거가 아니고 미래이며 노인의 흔적은 인류의 영원한 희망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 남게 될 것이다.

지금 여러분 앞을 보라. 미소 짓고 익어가는 성숙하고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서 경륜과 지혜로 무장된 아주 멋진 노인(老人)이 여러분을 손짓하고 있을 것이다. 노인(老人)은 나의 과거가 아니고 나의 미래다.

한얼고 부산 한얼고 이사장
한얼고 부산 한얼고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