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랑 경남 초등교사/ 좋은교사운동 회원
이거랑 경남 초등교사/ 좋은교사운동 회원

상황을 핑계 삼아

[에듀인뉴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갑작스러운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에 따라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도 등교 학생의 비율이 조정되었다.

우리 학교는 1학기에 학년군별로 ‘2주 등교+1주 원격수업’을 운영했지만 이제 ‘1주 등교+2주 원격’으로 학사 운영이 바뀌었다.

원격수업 비율이 늘어감에 따라 의구심도 함께 자라갔다.

자세하고 친절한 수업 설명과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정성 들여 만든 수업 영상을 제공하면서 이대로만 따라와 준다면 학습의 결손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등교 주간에 아이들의 교과서와 공책을 살펴보면 이 세상에 없는 그 깨끗한 순박함에 정신이 혼미하다.

초등학교 4~5학년 수학은 이전 학년에 비해 많이 어려워진다고들 한다. 4학년 담임을 맡은 나로서는 아이들이 벌써부터 수포자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도록 하고 싶다.

이런 마음에 9월 중 학교 오는 날에 수학 수업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왜냐하면 9월에는 단 7일만 학교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 시도는 아이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 오는 몇 안 되는 날에 수학이라니…. 이것이 도리어 수포자를 만드는 것일까?

수진이(가명)는 분수의 덧셈 앞에 눈물을 쏟았다. 분수를 어려워하는 5~6명을 남겨 같이 개념을 정리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아이들은 먼저 귀가하도록 했다.

수진이는 끝까지 남았다. 묵묵부답이다. 수진이는 조금이라도 위협을 느끼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가정 사정상 아빠와 엄마가 집에 없고 할머니와 지내는 아이인데 아주 어릴 적부터 어려움을 겪은 탓으로 보인다.

“수진아, 네가 어떤 점을 어려워하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선생님이 도와줄 수가 없어서 물어보는 거야. 너를 야단치려는 게 아니야.”

여러 모양으로 달래고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수진이가 자릿수와 자릿값 개념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이런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도대체 1학기 동안 무엇을 했지?”

팬데믹을 핑계 삼아 방치에 가까운 수업과 학급 운영을 당연시했던 것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상황을 기회 삼아

이 시기에 접하게 된 「학습결연 119」는 아이들에 대한 나의 부족했던 관심들을 돌아보게 했고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도록 이끌었다.

어떤 방식이 수진이에게 가장 좋을지 「학습결연 119」에 참여한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했더니 수 개념의 지도 원리와 방법,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앱 ‘똑똑 수학탐험대’ 등을 소개해 주면서 응원을 보내주었다.

꽤 많은 선생님들이 서로 다른 어려움에 처한 제자들을 돕기 위해 방법을 고민하며 서로 협력하고 있었다.

「학습결연 119」에 함께 하시는 선생님들의 사례를 보면서 학생의 상황과 수업의 유형에 따라 적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을 얻었다.

이제 수진이는 등교하는 날에는 할머니의 동의를 얻어 1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원격수업주간에는 오후 3시에 Zoom에서 만나 수의 개념을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다.

수진이의 수학은 더딘 걸음이다. 이전 담임선생님들의 지도에도 1~2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수진이와 공부하는 시간 끝에 “오늘 수업은 어땠니?”라고 묻는다. 같은 개념을 2~3차례 정도 반복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려워하는 수진이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고마운 말은 “재미있었어요”이다.

“내일도 공부할까?” 하고 물으면 그렇게 하잔다. 재미있으면 내일 또 할 수 있다.

교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면 마음속 상처도 털어놓을 기회가 생길 테다. 수진이는 친구가 없다. 누적된 학습 및 정서적 결손은 친구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고립되게 만들었다.

잘 몰라서 대답을 못하고 대답을 안 하니 왜 말을 안 하냐고 야단을 맞는다. 핀잔과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로부터 피할 동굴을 만들어 꼭꼭 숨었다.

코로나19는 수진이 같은 아이들을 가정에 방치하도록 내몰면서 더 깊은 동굴로 밀어 넣는 것 같다.

더 깊이 들어가도록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 손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학습으로 인한 것이든 정서적 결핍으로 인한 것이든 상관없이 더 불행해지는 일은 없도록 부족한 나의 손이라도 빌려주어야 한다.

애초부터 내 손은 위대한 손이 아니다. 손 뻗으면 닿는 지척의 범위 안에서 혹시 작은 손이라도 필요하다면 잠시 빌려주는 그저 그런 초등교사의 손이다.

지금은 이 같은 손이라도 필요한 아이들이 이전보다 분명히 드러나 보이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