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사고와 비주얼씽킹] ㉕"배운 내용 정리 넘어 아이들 생각을 살려라!"
[시각적사고와 비주얼씽킹] ㉕"배운 내용 정리 넘어 아이들 생각을 살려라!"
  • 이윤정 서울 봉화초 교사
  • 승인 2020.09.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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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살아있는 창의적 초등 역사 수업 만들기

[에듀인뉴스] 각종 스마트기기가 보편화하면서 아이들은 텍스트보다 영상에 친화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생각의 깊이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교사들은 역량을 키우는 다양한 참여형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심층적 이해가 이루어지는지 고민이 많다. <에듀인뉴스>와 <비주얼리터러시연구소>는 단순 그림그리기를 넘어 생각을 표현하고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는 비주얼씽킹이 수업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아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이윤정 서울 봉화초 교사
이윤정 서울 봉화초 교사

2016년, 수업 역량 강화 연수에서 처음 접한 비주얼씽킹. 처음에는 ‘비주얼씽킹 = 그림으로 표현하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 시간에 ‘배운 내용 정리하기’ 활동 위주로 비주얼씽킹을 적용했다.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모두 그림으로 정리했다. 그 시간 동안만큼은 집중하고 있었고 조용했다.

다들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온 산출물은 그림 때문인지 어딘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 성공이다!’라는 생각에 나는 내심 뿌듯했다.

이때는 학생들끼리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든지, 내가 돌아다니며 개인별로 피드백을 준다든지 하는 시간은 없었다.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내 피드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중 누구도 다른 친구가 정리한 내용에 관심이 없었다. 가끔가다 다른 학생의 작품을 보고 “우와, 그림 진짜 잘 그렸다”라는 말만 할 뿐.

당시에는 이러한 현상에 큰 문제를 못 느꼈다. 어쨌든 내 눈에는 학생들의 작품이 뭔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점점 이 수업이 재미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는데 점점 그 마음도 사라졌다. 학생들도 점점 기계적으로 정리를 했다.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학생들의 작품을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내가 있어 보였다고 느꼈던 건 그림 자체만 봤기 때문이었다. 정작 내용을 살펴보니 다수의 학생이 사회 교과서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흉내 내는 데 그치고 있었다. 그 안에 지식은 있었지만 ‘생각’은 없었다.

비주얼씽킹이 학습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도구였음에도 나는 그 훌륭한 도구를 오롯이 ‘배운 내용 정리하기’에만 쓰고 있었다.

고려와 주변 나라들의 관계를 비주얼씽킹으로 표현한 작품. 나중에 자세히 관찰해보니 교과서에 제시된 지도 속 각 나라를 인물로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 그린 작품이었다.(사진=이윤정 교사)
고려와 주변 나라들의 관계를 비주얼씽킹으로 표현한 작품. 나중에 자세히 관찰해보니 교과서에 제시된 지도 속 각 나라를 인물로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 그린 작품이었다.(사진=이윤정 교사)

내가 느꼈던 비주얼씽킹 수업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공감했을 때 느꼈던 재미가 떠올랐다.

그렇다. 학생들의 작품 속에 진짜 있어야 할 건 학생들의 ‘생각’이 담긴 그림이었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림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주어진 텍스트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주얼씽킹 수업에서 글과 그림은 내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새로운 해를 시작했다. 작년과 같은 5학년 담임을 맡았다.

이때부터는 비주얼씽킹을 수업에 적용하기 위해 학생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떠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바로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조선의 문화와 과학 기술의 우수성’ 이라는 수업이었다.

“우리말, 글이 낯선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하면 좋을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림, 몸짓, 동영상 등 이미지 위주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때 의사소통 도구로써 이미지가 갖는 역할과 필요성을 강조해서 설명했다. 그 후 세종 때의 우수한 문화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전 조사를 하고 그 우수성을 비주얼 에세이로 표현하도록 안내했다.

[수업 단계]

- 우리말, 글이 낯선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방법 생각해보기

- 세종 때의 우수한 문화재 중 한 가지 선택하여 자료 조사하기

-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비주얼에세이로 표현할 스토리 만들기

- 비주얼에세이로 표현하기

- 친구들과 돌아가며 발표하고 공유하기

이때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자료 조사하기다. 학생이 선택한 문화재의 우수성에 대해 조사한 자료가 많을수록 비주얼 에세이로 표현할 내용이 풍부해진다. 따라서 조사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좋다.

1년 전 수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야 에세이를 쓸 수 있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조금 더 힘들어했고 계속해서 고민했다. 각 문화재의 우수성을 표현하기 위해선 해당 문화재를 만든 배경, 까닭, 원리 등등의 지식을 알아야 했다. 또 그것을 적절한 이미지로 표현해야 했다.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나를 찾았다. 꾸준히 순회 지도를 하며 스토리를 짜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예를 들어 무슨 내용을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에게는 미리 준비한 사전 자료를 제시하며 표현할 내용을 함께 골라주었다.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르겠다는 학생에게는 표현하려는 내용을 전부 그림으로 그리려고 하지 말고 핵심적인 장면이나 물건을 뽑아서 그것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라고 피드백을 주었다.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학생들도 나도 처음 하는 시도였고, 때문에 예시 작품 하나 없이 아이들은 비주얼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자격루의 우수성을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자격루의 우수성을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학생들은 훈민정음,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등 조선 초 세종 때에 이룩했던 다양한 문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문화재의 의미나 원리, 우수한 점, 만들어진 까닭 등을 이미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학생들의 비주얼에세이를 잠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집현전 학자들과 만들고 반포하여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 모습을 우리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이란 견고한 성을 쌓고 한글이 한자들과 싸우는 이미지로 표현하였다.(중략)’

‘자격루는 조선시대의 최고의 과학기술 발명품이다. 해시계가 있었지만 날씨가 흐린 날은 시간을 알 수 없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물시계를 만들었다. 예전에는 관리가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는데 이 물시계는 자동이어서 관리들이 잠이 들거나 자리에 없을 때 시간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줄었다고 한다.(중략)’

해시계의 우수성을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해시계의 우수성을 표현한 학생 작품.(사진=이윤정 교사)

같은 문화재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결과물은 학생들마다 제각각이었다. 위의 예시 작품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의 강력한 영향력을 표현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집중한 학생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표현한 이미지가 다르다 보니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궁금해했다.

‘뭘 표현 한거야?’, ‘이건 무슨 내용이야?’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부족한 수업 시간을 모으고 모아 학생들끼리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유 활동이 끝나고 소감을 물어보니 재미있었다는 소감과 같은 문화재를 선택했어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는 소감이 많았다.

또한 이 수업을 계기로 본인이 훈민정음만큼은, 해시계만큼은, 물시계만큼은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는 소감도 전했다.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내가 원하던 비주얼씽킹 수업이 처음으로 완성된 순간이었다.

대게 초등 사회 수업에서 역사 단원은 방대한 양의 지식이 축약되어있기 때문에 좀처럼 강의식 수업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모든 지식을 전달해주려는 마음을 조금 덜고, 학생들의 생각을 깨우는 질문으로 비주얼씽킹 수업을 진행해보자.”

그 부분만큼은 학생들이 본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역사 지식과 결합해 충분히 자신만의 지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이 기분 좋은 변화를 나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과 함께 경험했으면 좋겠다.

이윤정 서울 봉화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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