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가을이 날로 깊어 가고 있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조석(朝夕)으로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새벽녘에는 창가의 살짝 열린 틈새마저 닫아야 할 정도로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느낌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니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불어 날로 하늘이 맑고 푸르러 가는 이 가을에 조금은 성숙한 모습으로 세월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심경에 학창 시절에 읽었던 명심보감의 마지막 구절인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이는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 치의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왜 갑자기 오늘 이 구절이 생각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오늘 아침 등굣길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 때문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요즘의 학교와 학생에 관한 정서적 감응을 공유하고자 한다. 

불행히도 2020학년도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장기간에 걸친 휴업을 마치고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 등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수도권 지역의 고등학교가 정원의 2/3 등교 원칙으로 코로나19 방역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학교는 아침마다 등굣길에 방역 도우미 학부모들과 지도 교사들이 나와 학생들의 방역 지도 및 등교 맞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 굳은 표정의 학생들이 손 세정제를 바르고 발열 체크를 하는 가운데서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 즐겁게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청춘의 피가 용솟음치는 나이에 제대로 활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서 제한적으로 학교 출석을 해야 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본다. 한 마디로 얼마나 답답하고 우울할까, 하는 상념에 빠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학생을 반갑게 맞이하고자 아침부터 현장 지도에 나서는 필자와 지도 교사, 방역 도우미들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먼저 인사를 나눈다. 특히나 학부모인 방역 도우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은 톤으로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를 반복한다. 자녀 사랑의 마음이 모든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는 까닭이리라. 

이렇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나름대로 슬기롭게 겪어내고 있는 학교 공동체에서 모든 구성원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시대의 아픔, 동병상련, 측은지심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뿐인가. 더욱더 소중한 상호 간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우선인 학교,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학교를 위해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요즘의 학교 현장이다. 

이러한 즈음에 오늘 아침, 등교하면서 책에 눈을 집중하고 생각에 감긴 듯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는 한 학생에게 시선이 머무르게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이런 모습은 그리 오랜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이런 모습의 학교와 학생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돋보이는 그 모습에 시선이 쏠리고 감응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또래들의 보편적인 행동과는 차별화된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나 시험 기간도 아닌 평상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순간, 마음의 울림이 작동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학생에게 “안녕~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역사책이에요.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불현듯 “그래. 그 심정 이해해~”라고 짧게 응대하고 그 학생을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안경을 쓰고 다소 호리호리한 학생으로 키는 평균적이었지만 안경 너머의 눈매는 다소 날카로운 모습이 언뜻 비치었다. 

순간 “똑똑하게 생겼네~”라고 말하며 외모를 평가하게 되었다. 알 듯 모를 듯한 연한 미소를 지으며 출입구를 통과하여 계단으로 올라가는 그 학생의 뒷모습이 한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필자는 마치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듯 교무실에서 즐겁게 외쳤다. “와~ 우리 학생 중에 등굣길에 책을 읽는 학생이 있네! 참으로 오랜만에 발견한 모습이라 감동이야”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교무부장이 “그래요? 어떤 학생인데요?”라며 관심을 가지고 되묻는 것이었다.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도 대부분 얼굴에 궁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침부터 교감이 별 호들갑을 떤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부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오늘은 아침을 시작하면서 온 종일 신천지를 다녀온 듯한 들뜬 감정으로 지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발견,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무언가 기대감을 높이는 것은 어쩌면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관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록 과거엔 자연스런 모습으로 각인이 되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자취를 감추어 가는 것에 대해 뇌가 놀라서 복원 작업이 오랜만에 작동하는 것이리라 믿기로 했다. 더불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여 뇌의 한 영역을 촉촉이 적시는 하루였다.

요즘 학교에선 ‘포노 사피엔스’라는 말처럼 학생들의 손마다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코를 박고 시선을 고정한 채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이는 학생들만의 모습이 아니다. 어디를 가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정보를 탐색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습득한 현시대의 정보와 지식이 과연 얼마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가슴에 울림을 유발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옛 성인 주자가 권했던 학문하는 자세의 시구를 암송했던 것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다시금 암송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화제의 주인공과 비슷한 연령대에 책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소중한 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생을 통해 꿈과 낭만으로 가득 찬 청소년 시기에 크게 공감하고 감동을 주는 배움을 촉발한 것은 역시 촌음을 아껴 공부하고 책을 가까이하던 학창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믿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는 청소년은 미래의 훌륭한 인류의 자산이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 일당백, 아니 훨씬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왜냐면 세계적으로 청소년 시절에 책을 벗 삼아 살았던 성공한 인물들이 현재에도 이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고독하고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학교 현장에서는 그런 학생들에게 격려와 힘찬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