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흔히 우스갯소리로 20대는 20킬로, 30대는 30킬로, (…) 60대는 60킬로의 속도로 산다고 한다. 그만큼 삶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해서 빠르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경험이 축적되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한다 싶으니 인생시계가 감각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그중에는 필자처럼 시간의 흐름을 다소라도 늦추고 싶은 마음에 호기를 부리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말인가? 일부러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걷기도 하고 말을 느리게 하기도 하며 또 횡설수설 하면서 생각의 저수지에 빠져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몸과 마음은 이미 일상의 삶에서 습관화되어 의도적인 수행(修行)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벗어나기 어렵다. 늘 하던 익숙한 속도로 빠르게 심지어는 달리기를 재촉할 뿐이다. 

어쩌다 느림의 행보를 취하려 의식적으로 다가가면 이를 방해라도 하듯 뇌의 특정 영역은 경고 신호를 보내며 빨리빨리 자세를 재촉한다. 그러니 매번 평소 삶의 속도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착된 삶이 한국인의 DNA에서 자연스런 보편적인 모습일진데 여기서 조금의 예외도 벗어나지 못하니 단언컨대 필자는 천상 한국인임에 틀림없으리라. 

그렇다면 외국인들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에겐 한국에 처음 와서 직접 한국 문화를 접해보고 신기해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들이 많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산업화의 시기가 늦어 과거 우리가 부러워하던 선진국 사람들이 모 TV 방송국 프로그램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는 한국인의 삶을 보고 놀라워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그것은 때로는 뿌듯함을 넘어 어떨 때는 아슬아슬하게 가슴 조이는 마음으로 다가온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삶의 방식에서 말 그대로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홈그라운드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할까? 다소 불안해하고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외국인과는 달리 이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 중에 가장 한국적인 모습이 있다. 

(사진=MBC 캡처)

바로 빠르고 질 높은 서비스이다. 한강에서 음식을 시키면 15분 만에 배달이 온다거나 식당에서 테이블 위의 버튼을 누르면 종업원이 바로 달려오는 것은 외국에선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출연한 외국인들이 탄성을 지른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빨리빨리’라는 인터넷 글도 마찬가지다. 

상점에서 먹을 것을 살 때 계산을 마치기도 전에 먹어버린다거나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새로 고침을 누르고, 상점에서 결제할 때 가게의 주인이 카드 서명을 대신하고, 자판기 안의 컵을 잡고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우리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뿐이랴. 점심시간에 다 같이 식당으로 몰려가 15분 이내에 식사를 마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10분간 산책을 한 후 사무실에 돌아와 이를 닦는 행위를 1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진다. 그러니 어쩌다 주문한 음식이 오래 걸리기라도 하면 당연히 타박을 넘어 식당의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배경의 원인은 무엇일까? 과거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많이 하려면 ‘빨리빨리’가 중요했다. 그 정신은 세계에서 가장 단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정보화 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로 진입한 지금은 세계에서 5G 기술을 최초로 선보인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빨리빨리’는 우리에게 그만큼의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미처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버스 속 승객이 아슬아슬하고, 짧은 시간 내 배달하는 상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하루가 아찔하기만 하다. 

덜 챙긴 공사장의 건물이 위험천만하고 일상에서 너무나 바빠서 소홀해진 가족과의 관계가 우려를 넘어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선행학습이라는 과열경쟁은 학생들을 소진시켜 막상 대학에 가서는 지쳐서 더 이상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든다. 

학문 연구는 진중하게 깊이 오랫동안 고민하기보다는 기한에 맞춰 급히 서두르고 연구 실적을 산출한다. 이런 경우엔 대개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러한 수박 겉핥기식의 ‘빨리빨리’가 국민적인 깊은 성찰을 통해서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52시간 근무제에 업무를 끝내야 하는 새로운 법규에 발맞추어 ‘빨리빨리’가 더욱 우리를 옥죄어올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인공지능(AI) 로봇시대에도 사람들은 진짜 창의적이고 숙고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에 ‘빨리빨리’는 효력을 발휘하던 예전의 의미를 잃어 갈 것이다. 

과거 우리는 산전, 수전, 공중전 위의 속도전의 전사들로 생존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천천히, 그리고 넓고 깊게’ 가야 한다. 그동안 과거와 현재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망각하고 살았던 사회의 방향을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행복하고 품격 있는 사회로 향하는 전환점이다. 

체코 태생의 저명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는 그의 저작 『느림』에서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고 밝혔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쓴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상소(Pierre Sansot)는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사람들은 이렇게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면서 양보다 질, 형식보다는 내용의 만족과 의미를 모색하려는 경향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직진이 아닌 때로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에서 매력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관성적으로 모두가 전속력으로 달려서 내가 뒤쳐진 기분이 들 때가 있을지라도 느리게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안정되게 사는 것이 자기답게 사는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살아온 빨리빨리 방식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젠 삶의 여유와 품격을 유지할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말인가?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믿음을 우리의 의식에 품고 사는 것이다. 

특히나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의 거칠고 치열한 삶보다는 여유와 낭만을 찾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기성세대도 직진에만 몰입하여 놓치고 살았던 삶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시도해야만 한다. 

이는 필자 한 사람만의 바람이 아니다. 온 국민의 의식의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속담에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라 하지 않는가. 인생 100세 시대를 살면서 천천히 가지만 꾸준하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거 ‘빨리빨리’라는 일제식 군사문화와 산업화 시대의 기계적인 속도전에 기초한 삶을 이제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과감하게 혁신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평범한 삶조차 누리기 어려워진 현재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제 우리도 우아하고 격조 높은 삶의 모습을 꿈꾸며 아름다운 선율의 아다지오(Adagio)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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