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slidesplayer.org/slide/17636472)

[에듀인뉴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로 시작하는 한시가 있다. 勸學文, 학문을 권하는 글 중 아마 가장 유명할 테고 필자도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접한 시라 때에 따라 읊조리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음에는 (당연히) 짧은 시간도 허투루 여기지 말라, 라는 문장이 따른다. 그런데 어릴 때와 비교되는 지점이 내가 더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학창 시절, 혹은 학업에 전념하던 때에는 –비록 온전히 실천은 못했다지만- 앞 선 두 구절이 더 절실했다. 

그런데 문득 느낀 것이, 요즘은 그 뒤에 따라오는 두 연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는 점이다. 未覺池塘春草夢 연못의 봄풀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階前梧葉已秋聲 섬돌 앞 오동잎이 벌써 가을 소리를 낸다. 

여기만 본다면 권학문이라기보다는 흐르는 세월을 유려하게 읊은 서정시로 읽힌다. 

또 다른 사람은 일엽락(一葉落)이라는 말을 썼다. 모 가수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성급하게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고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나뭇잎이야 나무 종류에 따라서, 날씨 변화에 따라서 꼭 가을에만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 라고 시심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을 장난스럽게 던질 때가 있다. 

이과 티를 낸다는 지인의 말에 수긍하며, 이과인 내가 가을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빛에서 가을을 느낀다.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다는 춘분과 추분을 비교해보면 햇빛이 비치는 시간이 같다는 점 외에 공기 중 습도나, 땅에 도달하는 태양의 에너지, 일사량이 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 자외선 지수도 가을볕이 훨씬 낮다. 이 모든 조건이 가을빛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벼가 익어가는 빛이로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몸속에 호르몬이란 물질이 있다. 사전적인 간단한 뜻을 가져오자면 ‘신체의 내분비기관에서 생성되어, 아주 적은 양으로도 생체대사에 큰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아주 적은 양, 큰 영향’ 두 표현을 대비시켜 보면 그만큼 양의 조절이 건강의 관건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호르몬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진 물질은 아드레날린과 인슐린일 것이다. 전자는 ‘흥분’ 혹은 ‘활동’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무엇보다 액션 영화 등에서 많이 접했을 듯하고 후자는 혈당량을 낮추는 물질로 현대인의 고질병 당뇨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하나 더 소개하자면,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물질의 분비는 햇빛과 관련이 있다. 우울하거나 슬플 때 햇빛을 쐬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뇌신경세포 속에서 세로토닌 생산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낮아지는 가을부터 시작해 겨울철에 우울감이 심해지는 것, 햇빛이 귀한 북유럽에서 우울증 환자가 많은 사실이 같은 이유다. 

그리고 햇빛을 통해 체내에서 합성되는 또 다른 물질은 비타민D이다. 비타민D는 체내의 칼슘과 인을 흡수, 혈액 속에 보관해서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 골다공증이란 질병 이름이 생소하지 않은 시대에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일 것이다.

가을빛은 좋다. 단순히 느낌이 좋을 뿐만 아니라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 몸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성해 준다. ‘봄볕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을 내보낸다’라는 조금 심술궂은 옛말이 있다. 

가을 들판에 뭐라도 더 먹거리가 있을 법해서 생긴 말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편애의 관점은 다르지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스스로 볕을 쐬러 나가면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얼떨결에 지나쳐버린 봄날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태풍 탓에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지나간 여름, 훌쩍 코앞에 닥친 가을마저 그냥 놓쳐버린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일조량이 낮아지는 계절을 대비하면서, 장기화된 코로나와의 지루한 싸움을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세로토닌과 비타민D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가을빛을 잡아보자. 물론 과유불급은 유효하며 정석적인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