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JS 조준상 영어
사진제공=JS 조준상 영어

아이들을 지도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긴 세월 속에 학습 면에서도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생겼지만, 또 얻은 것이 있다면 학생의 인성과 학업의 성과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고찰력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교육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예의는 각자 개인의 품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즉, 공부와 예의는 서로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학교나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키기 보다는 문제를 하나라도 더 잘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는 느낌이 교육자들의 마음속에 적어도 무심결에 스며있는 것 같다.

갈수록 치열한 입시 경쟁의 상황에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도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예의와 인성도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서로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자라면 마땅히 제자의 인성 교육도 지도해야한다는 통념을 넘어서,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과의 경험 속에서 느낀 것은 인성과 예의의 태도가 바른 아이는 학습 성과도 뛰어나다는 체험이다.

왜 그럴까?

필자는 마음 자세의 개방성 때문 이라고 본다.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해 예의가 있다는 것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두뇌가 뛰어난 것과는 별개의 것 같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경험자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많은 갈등 끝에 학습적 실패를 겪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아온 필자로서는 마음 자세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

교육자의 지도에 있어서 자신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제자에게는 보다 더 양질의 지도가 가능하다. 이 아이에게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가라는 생산적인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성이 안 되어 있거나 예의가 없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부터 만들어야하기에 가르침의 노력은 배 이상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양질의 지도를 마음껏 쏟아부어줄 수 있겠는가.

예의는 중독성이 있다.

예의바른 주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그리고 예의가 기본적으로 모두가 지켜야하는 당연한 규칙이 될 때, 자신 혼자만 무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는 없다.

반면 무례와 비속어와 욕설이 만연한 분위기에서 혼자서만 바른 자세를 가질 수도 없다.

그러기에 적어도 혼돈의 이 사회에서 학교와 학원이라는 교육기관만이라도 공부 외에 인성 교육을 기본 커리큘럼 내지는 기본 철학으로 삼고 학생지도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

예의와 인성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대의 가정은 부모 모두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기에, 자녀에 대한 인성 교육은 예전 세대에 비하여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인성 교육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주체가 이제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하나의 사례를 들고 마무리 할까한다.

필자는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인사가 바르지 못한 경우나 수업을 듣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지적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요즘 제자들의 경우, 십중팔구 반짝반짝 빛나는 의욕의 모습으로 첫 만남을 하기 보다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인사와 인성과 자세의 중요성을 심어주고 매번 지적을 통해 가르침을 주면 수개월내에 다른 아이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얼굴 표정에 변화가 보이는 것을 느낀다. 알 수 없는 불만의 표정이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은 정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