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bs 캡처)

[에듀인뉴스] 이 땅에서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70만년, 혹은 80만년이라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후하게 줘서 100만년전이라고 해보자. 당시에는 구석기인들이 살았다. 한반도 곳곳에 그 시대의 유물들이 남아있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이라 하면 그 이름이 말해주듯 대부분 돌이다. 

하나의 돌이 유물이냐 아니냐를 판명하는 포인트는 아마도 인간의 손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남아있느냐의 유무와 도구로서의 기능이 있느냐 하는 것일 테다. 마제석기로 대변되는 신석기 시대가 도래하기 전 구석기 시대 최고의 물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돌을 깨뜨려서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들 중 가장 최상급 ‘잇템’ 말이다. 

‘주먹도끼’라고 들어보았는가? 완벽하게 두 발로 설 수 있던 호모 에렉투스들이 자유로워지고 정교하게 진화된 양 손으로 만들어낸 도구. 한 손에 쥐고 쓸 수 있어서 짐승을 사냥하고 가죽을 벗기며, 땅을 파고, 풀이나 나무를 캐는 용도로 사용했던 그 시대의 ‘만능칼’이다. 

그 중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양면이 가공된 대형의 작업 날을 가진다. 형태상 좌우대칭성을 가지면서 양 측면에 날이 베풀어져 있고 그 끝은 뾰족하거나 둥근 형태를 띤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에서 확인되고 있으나, 최초로 발견되고 조사된 지역은 유럽이다. 20세기의 미국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아슐리안계 양날 주먹 도끼 문화권‘에서 아시아를 제외시킨 모비우스 학설을 주창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덜‘ 정교한 찍개 문화권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1977년 연천 전곡리에서의 발견으로 그 학설이 뒤집어지기 전까지.

(출처=http://www.apiacere.net/xe/moviemusic/21169)

형태가 다르고 의미도 다르지만 또 다른 만능칼은 20세기에 전파를 통해서 전해진다. 어렸을 때 자주 보던 미드에서 손재주 좋은 척척박사 해결사 ‘맥가이버’가 위급상황 때마다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유용하게 사용하던, 스위스 군용으로 만들어진 십자 마크 선명한 멀티툴은 당시 청소년들의 잇템이기도 했다. 

2020년의 만능 칼은 무엇일까? ‘칼’에서 ‘가위’로 형태가 변하긴 했지만 자르는 기능을 가진 후보 중 올해 가장 핫한 것은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유전자 가위일 것이다. 

최초로 유산균의 면역 시스템에서 발견된 이 기전은 박테리아가 개체 내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스페이서에 저장하고 기억해서 나중에 동일한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그것을 찾아내 절단해서 제거하는 원리이다. 우리 몸의 항원 항체 반응와 많이 다르지 않다. 

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사진=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 유튜브 생방송 화면 캡쳐)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캐스9 기술은 바로 이 박테리아의 후천면역인 크리스퍼 시스템의 하나를 유전자 편집 수단으로 응용한 것이다. 스페이서 내에 저장되는 DNA서열을 연구자가 원하는 대로 삽입한다면 세포내에서 정확히 그 서열을 구분해서 잘라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크리스퍼는 유전자 조작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멸종 동물을 복원한다든가 치명적인 유전 질환의 치료법 개발에 사용될 수도 있다.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유전자를 자르고 다시 재조합해서 붙이는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고 또 보편화되고 있는데, 급속한 기술의 발달과 인간 윤리의 정립이 속도가 맞지 않는 느낌이 있다. 

세기 초에 앞으로의 연구 결과는 많은 부분 과학자의 양심에 의존해야 한다고 예언(?)했던 지인이 있었다. 평범한 독일 연구원의 일상적인 말을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존재가 인류를 위협하는 스토리가 제법 많다. 만능 칼이나 만능 가위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미쳤다면, 혹은 미성숙하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아슐리언 주먹도끼도 구석기 당시에 본연의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맥가이버 칼이 비상상황 돌파용이며 누군가를 상해하는 데는 쓰이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만능 가위를 제대로 사용할 멋진 맥가이버들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맥가이버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 BTS의 영향이지 싶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