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 현장] 전교생 39명 마산초에 온 할로윈 "신비하고 이질적인 손님들"
[에듀인 현장] 전교생 39명 마산초에 온 할로윈 "신비하고 이질적인 손님들"
  •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 승인 2020.10.29 1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할로윈 준비를 하는 마산초 학생들.(사진=박석희 교사)
학생들과 함께 준비한 할로윈.(사진=박석희 교사)

[에듀인뉴스] “선생님, 할로윈은 우리 명절이 아닌데 왜 기념해요?”

싱글벙글 선생님과 함께 할로윈 장식품을 만들며 즐거워하던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문득 궁금해진 듯 물어봤다.

“외국 사람인 부처님 오신 날이나 예수님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문화적으로 경험하고 배우는데 나라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아이들은 할로윈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할로윈이 한참 남았을 신종 코로나로 연기된 등교개학이 막 시작될 무렵부터 학생들은 어학실에 쪼르르 달려와서 이번 할로윈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곤 했다. 아이들은 기대가 컸고, 어학실에 보관한 인형 옷을 입거나 가면을 쓰고 이번 할로윈에는 어떻게 변장을 해야 재밌을까 고민했다.

우리 학교는 할로윈 주간이 되면 영어실을 잭 오 랜턴과 유령, 박쥐 모양으로 된 장식물로 꾸미고 할로윈 분위기를 연출한다. 할로윈 준비를 하고 이벤트를 하는 것은 학교 공식 업무가 아니지만, 정해진 공식 행사인 것처럼 매년 치르고 있다.

박석희 교사가 그린 할로윈을 기대하는 아이들의 마음.
박석희 교사가 그린 할로윈을 기대하는 아이들의 마음.

원어민 교사의 야반도주로 시작된 마산초의 할로윈 행사


마산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영어전담교사를 맡게 됐을 때 꾀병을 핑계로 무단결근을 반복하는 등 복무 태도가 불량했던 원어민 강사가 돌연 야반도주를 해버린 일이 있었다. 

신규교사였던데다 39명이 전부인 소규모 학교에서 전체 학년에 여러 과목을 가르치느라 교육과정 운영에 힘에 부친 와중에 비협조적이었던 원어민 강사가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사후처리까지 떠맡게 되어버려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 사교육과 문화생활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무책임한 원어민 강사의 무단이탈로 영어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오기가 들었다. 

그래서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영어를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학교에서 원어민 강사와 함께 하는 영어 행사 같은 것은 꼭 챙겨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우리 학교에서는 나의 어설픈 할로윈 분장과 함께 할로윈 이벤트가 이어져 왔다.

 ‘조커’ 캐릭터로 분장한 박석희 교사.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아이들의 눈을 끌 만한 육군 정복과 군복을 입은 적도 있고, ‘조커’ 같이 그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캐릭터들을 코스튬 플레이한 적도 있었다. 그냥 평소와 다른 복장으로 과장된 몸짓을 하며 간식을 나눠줄 뿐인데도 아이들은 격하게 좋아했다.

일상으로의 사소한 일탈이 큰 재미를 안겨주었던 걸까. 아니면 교과서 중심의 평소와 달리 뭔가 재밌고 새로운 것들을 하는 것에서 해방감을 느꼈던 걸까. 저학년들 중 몇몇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정말 행복했다고까지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느새 그 아이들이 3, 4학년이 되어 할로윈이 한 달도 더 남은 시간에 할로윈에 뭐로 분장할지 친구들과 고민하며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올해는 뭘 할 것이냐고 묻고 다닌다. 그 때의 할로윈은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생각나 이제는 그만둘 수도 없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그림=박석희 교사)

멋진 원어민 강사를 만나 더 깊어진 할로윈 "재미있게 놀며 우리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다"


마산초등학교는 화성시 시골의 작은 학교다. 학생 수 부족으로 몇 번의 폐교 위기를 겪은 적이 있지만 학교의 오랜 전통과 추억을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의 보호 속에 지켜질 수 있었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녀들을 마산초에 다니게 한 분도 계셨다. 대한민국의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마산초가 위치한 시골의 공동체에서도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종교적 거부감 때문에 할로윈이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 부모님들께 알려지면 혹시나 할로윈 행사를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한 적도 있지만 오히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자녀들의 분장을 도와주기도 했다.

꽤나 보수적인 분위기의 지역에서 자랐고 애국적 동기에서 파병 병력으로 자원해 전쟁터를 다녀온 후 런던과 고향의 주립대에서 동아시아학과 고고학을 전공했던 원어민 강사 셰인 드박(Shane Deback)은 "세계 다른 나라의 문화 행사를 경험하는 데 있어 종교적 편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교육적이지 못한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할로윈 전통을 만들어낸 자신들 역시 기독교인이었으며 가장 기독교적 전통을 오래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원어민 강사는 자신들의 조상 중 일부이던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할로윈 문화를 어떻게 미국에서 꽃피우게 됐는지를 이야기했고, 나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통역해줬다. 재미있게 노는 와중에도 학생들은 우리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의 시야를 넓히고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1년이 흘러, 캐나다에서 토론토 대학을 갓 졸업하고 머나먼 마산초까지 오게 된 원어민 선생님 엘리가 할로윈을 준비하고 있다.

낯선 나라의 시골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 신기할 때가 있다. 어려운 한국말도 곧잘 해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 여자아이들과 BTS 얘기를 하고 있을 때면 오히려 엘리가 아닌 내가 외국인이 된 기분이 든다.

엘리는 사비를 들여 근처 매장에서 할로윈 장식물을 사고 아이들에게 선물하며 아이들에게 줄 쪽지를 쓰고 있다. 매년 다른 개성의 할로윈이 펼쳐지는 39명의 마산초등학교. 이번 해에도 아이들은 할로윈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사진=박석희 교사)

엘리는 사비를 들여 근처 매장에서 할로윈 장식물을 사고 아이들에게 선물하며 아이들에게 줄 쪽지를 쓰고 있다. 매년 다른 개성의 할로윈이 펼쳐지는 39명의 마산초등학교. 이번 해에도 아이들은 할로윈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처음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시골의 학교에 발령받아 창고에서 자고 지내며, 원어민 강사가 도망가버려 많은 업무와 교육과정 운영 중에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그 뒤 훌륭한 원어민 강사들을 만나 성장하며 할로윈들을 보냈다. 할로윈은 해의 마지막을 맞으며 잠시 자신이 아닌 존재로 행세하며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날이기도 하다.

마산초의 아이들과 만나고, 셰인과 엘리를 만나면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내가 닮고 싶어하고, 내가 흉내내고 싶어한 어떤 대상으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듯한 시간들을 가졌다.

마산초가 위치한 마산 마을은 초콜릿 상자에 숨겨진 초콜릿처럼 깊이 숨겨져 있지만, 그 안에서 함께 숨 쉬고 배운 우리들은 더 넓은 세계를 만나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왔다. 마치, 할로윈의 유령들처럼 이 세상 존재가 아닌 듯 신비하고 이질적인 손님들과 함께. 

박석희 경기 마산초등교 교사
박석희 경기 마산초등교 교사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Eduin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