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의 우리 교육 더 낫게 만들기] 4. 교과서 개선①

[에듀인뉴스] 교육은 희망이고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교육 혁신안이 등장했음에도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학자, 기업인, 일반인, 실업자 등 각자 처지에 따라 교육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다. <에듀인뉴스>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탐구하고, 국가의 거시적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의 미시적 교실 수업을 아울러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홍후조 교수(교육과정학자)의 입을 빌어 ▲교육 기본제도 ▲교원 양성과 운용 ▲이공계 인력 양성 ▲교과서 문제 ▲진학계 고교 문제 ▲온라인 수업 ▲국민형성교육 등 분야 별로 문제의식(배경), 현황과 문제점, 원인과 이유, 개선 방향(가치 추구), 구체적 방안, 후속지원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계획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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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한 학년이 끝날 때쯤 학교의 학생 사물함이나 쓰레기장에 가보자. 학생들이 손도 대지 않아 새 책이나 다름없는 교과서를 갖다버린다.

이것이 돈이라면 갖다버릴까?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학년말에 버려지는 교과서는 어떤 교과일까? 왜 필요도 없는 교과서를 모든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지급할까? 그런 교과서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실을 들여다보면 수업에서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교과서는 미술, 체육 등이다.

초등학생은 미술(평균 4,300원), 체육(4,800원) 교과서를 4차례(3~6학년), 중학생은 미술(평균 6,000원), 체육(7,000원) 교과서를 2차례(상/하권), 고등학생은 미술(평균 8,000원), 체육(8,000원) 교과서를 재학 중 2~3회 무상으로 지급받는다.

고3 학생들의 경우 교과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EBS 수능교재를 주로 사용한다. 즉 미술, 체육, 고3 학생용 교과서 등은 수업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지필시험 문제는 교사가 프린트해준 곳에서 출제된다.

그러다보니 학년말이나 졸업하면서 거의 사용하지도 않은, 새것이나 다름없는 교과서를 내다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에서는 매년 전국의 모든 초·중등학생에게 이들 교과서를 1인당 1권, 새 책으로 지급한다. 전국 초·중등학생 600만 명을 고려하면 매년 수십, 수백억 원의 예산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셈이다.

명백한 교육 예산의 낭비다!

그러나 학생이나 학부모도 새 학년에서 지난 해 교과서를 물려받거나 재활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학교는 모두에게 새 책을 구입하여 지급할 수밖에 없다. 만약 교과서를 개인별로 구입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상당수는 교과서를 사지 않거나 중고 책으로 구입할 것이다.

국민 세금, 교육 예산이 수십 년간 허투로 쓰이고 있다. 필자가 이런 낭비를 지적해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행에 젖은 교육당국은 매년 모든 학생에게 모든 교과의 교과서를 배부하고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낭비를 가르치는 셈이다.

또, 교과서를 만드는 종이와 잉크를 고려하면 이런 방식은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교과서 집필자나 출판사는 여기서 계속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뭔가 견고한 카르텔이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종이로 된 서책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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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천 가능한 개선안을 찾아보자.

제일 필요한 조치는 교과의 특성에 맞는 질 높은 교과서를 개발 보급하는 것이다.

가령 미술 교과서를 보급하기보다 화첩이나 도록으로 바꾸어 보급하는 것이다. 시대별, 작가별 그림이나 사진 등을 원화에 가깝게 복사 인쇄한 화첩이나 도록을 미술실에 비치하면 더 나을 것이다.

드로잉, 다자인, 건축물, 풍경, 사진 등을 담은 화첩은 학생들이 미적 감수성,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화첩과 도록 등을 더 고품질로 만들면 그만큼 우리나라 인쇄문화도 발전할 것이다.

미술 교과서가 꼭 필요하다면 초저, 초고, 중, 고 등 4가지만 개발하여 학년군용으로 미술실에서 공동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학생 1인 1책 지급용이 아니라 학교(비치)용, 교사용, 학년(군)용, 학급용 등 학교 규모에 알맞게 개발 보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과서 구입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여 화첩과 도록은 물론 미술 용구나 재료 등을 구입해주는 것도 예산을 잘 쓰는 방법이다.

체육 교과서도 활용도가 매우 낮다. 차라리 필요한 운동 기술, 규칙, 반칙 등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체육의 일부인 보건, 건강 단원은 초저, 초고, 중, 고 네 가지만 다학년용으로 개발 보급하면 충분하다.

서책 교과서 비용을 절감하여 대신 동영상 교재, 체육 용구나 시설을 구비해주는 것이다.

특히 발달단계에 맞는 크기의 농구장, 축구장, 적정 높이와 크기의 운동 시설과 용구를 개발‧보급해주는 것이 학교 체육 수업에 더 도움을 줄 것이다.

음악 등도 필요한 악보 등은 복사해서 나눠주고, 교과서는 한 학급용 수량만 음악실에 비치하여 공동사용해도 충분하고 예산 또한 절감하는 길이다. 대신 절감한 비용으로 악기 등을 사주도록 한다.

기술 교과서도 3차원 기구들을 삽화나 사진으로만 보여주고 있어 학생들은 실물을 보기 전에는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 경우 해당 부분은 동영상 등으로 제작해서 보급하는 것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방법일 것이다.

같은 원리로 고등학교나 직업고의 이공계와 예체능 교과서부터 디지털 교재(플랫폼)로 전환해가야 할 것이다.

책을 분책하여 여러 권으로 개발하는 것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초등 저학년 교과서의 경우 어린 아동들이 보는 책인데, 하나의 교과에서 2~3권의 교과서를 별도의 책으로 만들어 함께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학기당 ‘국어’ 두 권과 ‘국어활동’, ‘수학’ 교과서와 ‘수학 익힘책’을 따로 분책하여 사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분책은 사용하기도 번거롭거니와 효과적이지도 않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안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활동이나 연습 문제는 각 단원 뒤에 붙이고, 교과서가 두꺼워지면 분기별로 분책하면 될 일이다.

초등 교과서의 경우 돌가루가 섞인 고급 지질이라 매우 무거운데, 분책까지 되어 있어 학생들은 매번 여러 권의 교과서를 챙기느라 어려움을 겪는다.

한편, 초등학교 교과서 중에는 부록에 스티커를 활용한 자료들이 첨부된 경우가 있다.

이것은 교과서 가격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초등 고학년 학생들의 발달단계에는 매우 식상한 강화(reinforcement) 장치이므로, 공연한 낭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를 제거하고 더 나은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이미 수차례 실시한 교과서 활용 실태 조사에 근거해 이에 알맞은 형태로 교과서를 보급해야 한다. 굳이 학생 1인 1책이 필요 없는 교과서는 학교용, 학년군용, 학년용, 학급용 등으로 개발 보급하여 공동 사용하도록 하고, 매년 10% 정도를 새 책으로 바꾸어주도록 한다.

이런 형편을 고려하여 학교에 교과서 구입 대금을 교부하여 근검절약이 생활화되도록 한다. 대신 절감한 비용은 교육효과가 더 큰 화첩, 도록, 미술용품, 악기, 운동 시설과 기구 등의 구입·설치비로 돌리도록 한다.

재정 적자가 악화되는 현실에서 국가 예산은 절감하여 꼭 필요하고 더 긴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은 교과서의 공동 사용, 되물림 사용 등을 통해 근검절약을 배우고, 학교는 공공 기물을 아끼도록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또 서책의 교과서 발행에 드는 종이, 잉크 등을 절감하여 친환경 생태계 조성에도 협력해야할 것이다.

나아가 교육부는 교과서 개발 보급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적극 보급하고, 거의 사용되지 않는 교과서는 학교 공용으로 발행 보급하여 여기서 절감되는 비용을 다른 학습재료나 도구 구입에 사용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해당 교과 교사와 연구자, 출판사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더 나은 교육 매체를 고안하여 개발 보급하도록 한다. 학교장 등도 이런 취지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이해시켜야할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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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만원 빚에 사라진 대한제국을 기억하자


빚진 개인이나 나라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거 국고를 탕진하고 1250만원을 빚진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앙과 지방 정부, 공공기관, 가계 모두 빚을 늘려가고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아직은 감당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채권을 발행하여 살림을 하는 국가와 공공기관은 궁극적으로 나라 빚을 줄이고 건전한 재정을 꾸려가야 할 것이다.

교육계에도 온라인 수업, 온라인 학교, 디지털 교과서, 고품질 학습재료, 정교사의 충원 등에 점점 더 많은 예산이 요구된다.

이럴 때 잘 사용하지 않는 교과서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배부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구석구석에서 국가 예산을 절약하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홍후조(2020), 알기 쉬운 교육과정(2판), 학지사. 제11장 참조.


◆ 글 싣는 순서

Ⅰ. 교육의 기본제도 1. 어긋남으로써 빚어진 문제들/ 2. 학제(학생수용)/ 3. 학교급 나누기/ 4. 교육과정 /5. 출생률 제고와 주택 문제/ 6.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

Ⅱ. 교원 양성과 운용 1. 전공 교육과정, 자격과 2중 전공/ 2. 교단교사 직급다층화/ 3. 교감발탁제, 교장 발탁제/ 4. 교육감 직선제, 중단위 교육행정기관

Ⅲ. 이공계 인력 양성 1. 수학, 과학, 기술공학 분야의 특징/ 2. 교원의 문이과 배분, 교대, 사대(사/과)/ 3. 첨단과학기술을 제 때에 가르치는 미래 pilot 학교/ 4. 수포자 구제문제/ 5. 국민기초학력과 충실화/ 6. 절대평가와 IB DP교사들의 시험 출제와 채점 능력

Ⅳ. 교과서 문제 1. 교과서가 필요없는 교과에서 예산 낭비/ 2. 판수를 거듭하는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3. 성교육교재와 발달 추동/ 4. 한국판 탈무드 개발 보급

Ⅴ. 진학계 고교 문제 1. 자사고와 특목고(집값 폭등)/ 2. 평준화와 비평준화/ 3. 국영수 편중과 진로별 교육과정/ 4. 교육기회 제공에서 학교간 역할분담

Ⅵ. 온라인 수업 1. 온-오프간의 분리와 협력(교육과정 조정)/ 2. 온라인 교육전용기기 개발 보급/ 3. 온라인 수업에서 효과 제고(중위층 몰락 대책, 수업시간 조정)

Ⅶ. 국민형성교육 1. 헌법을 제대로 가르치기/ 2. 한국근현대사 재인식/ 3. 국제관계와 국제정세 알기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