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교수와 전대원 교사의 대화를 지켜보고

[에듀인뉴스] ‘거침없이 교육’은 ‘나’의 입장에서 본 ‘교육’을 ‘거침없이’ 쓸 예정이다. 글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중에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글이 얼마나 될까? 객관적인 척 포장할 뿐이다. 차라리 나의 편파성을 공개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잘 될까 모르겠다.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거라면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쓴 교육제도, 교육정책, 교육담론, 교실 이야기 등에 나의 편파성을 실어 나르리라.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에듀인뉴스] 지난 글에서 나는 진보지식인 자녀의 특목고 입학 또는 졸업이 문제라는 글을 썼다.

꽤 잘 알려진 진보지식인 중 상당수가 자기 자녀를 외고에 보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제외하고 그에 대해 해명하거나 사과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속 편하게 특목고 비판을 하는 것은 모순이며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쓴 다음의 물음은 여전히 쉽게 답을 못하겠다.


“나는 내 아이가 특목고를 가지 않기를 바라는데, 본인이 간절히 가고 싶다고 하면 어쩔 텐가? 부모의 그 거룩한 신념과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해, 못 가게 할 텐가? 그게 과연 올바른 일인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굳이 따져 묻게 된 이유는, 몰래 즐겨보던 한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과, 그에 달린 어떤 인물의 답글 때문이었다.

‘몰래 즐겨보던 한 선생님’은 전대원 선생님(성남 위례한빛고 교사)이고, 답글을 단 ‘어떤 인물’은 참여정부 시절 대표적 친노 인물로 분류되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였다.

전대원 선생님은 위에서 내가 제기했던 물음과 비슷한 논조의 글을 쓰셨고(사실 선후 관계로 따진다면, 전대원 선생님이 먼저 글을 썼고, 그와 비슷한 논조의 글을 내가 이어 썼다), 그와 반대 논조의 글을 조기숙 교수가 댓글로 달았다.

조기숙 교수는 너무도 단호하게 “자식이 특목고를 갔거나 갈 생각이면 그런 정책 주장하면 위선”이라고 했다. “자기 자식도 설득 못 하면서 남에게 하라는 건 정책에 영향 미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처음 댓글 내용만 보고는 정말 단순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름을 보고 설마 그 조기숙 교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이전 글에서도 썼듯, 그런 위선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최소한의 해명 또는 사과도 없는 진보지식인은 특목고 비판 따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일견 조기숙 교수와 같은 생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최소한의 해명 또는 사과가 있다면 그게 용서받지 못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해명과 사과에는 어느 정도의 겸손과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하겠다.

조희연 교육감 정도의 해명과 사과 정도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보라, 그 정도도 안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내가 이렇게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식이 특목고를 가는 게 꼭 그 사람의 일관성 없음을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여전히 특목고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자식이 특목고를 가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으나, 자식의 결정과 의견을 존중해 보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부모로서 강하게 얘기한다면, 얼마든지 자식의 의견을 묵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그 숭고한 이념과 의지 때문에, 자식이 간절히 바라는 어떤 것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정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조기숙 교수는 너무도 단순하고 명쾌하게 이어 나간다.


“자식을 설득할 수 없으면 남의 자식이나 부모도 설득할 수 없다는 건데 그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임을 증명하므로 자신의 정책이 좋지 않은 거라는 증거입니다. 그럼 논객으로나 교육정책 입안자로서 자격이 부족한 겁니다.”


다소 논리 비약이 있다. ‘자식을 설득할 수 없으면 남의 자식이나 부모도 설득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자기 자식을 설득하는 일, 즉 자기 자식을 교육하는 일과 남의 자식이나 부모를 설득하는 일은 다소 다른 영역의 일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교사 자녀를 가르친 적이 몇 번 있는데, 아이의 부모는 교사로서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그 말은 곧 ‘남의 자식이나 부모를 설득하는 일’에도 흠잡을 데가 없다는 말이다) 아이는 상대적으로 흠잡을 데가 있었다.

교사의 성실함과 열정이 그 반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교사의 자식에게는 적게 작용했다. 그런 사례들을 나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봤다.

자기 자식을 설득할 수 있고 없고의 수준을 넘어 아주 내팽개쳐 버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교육서를 쓴 계몽주의 사상가도 있었다.

바로 <에밀>을 쓴 장 자크 루소가 바로 그이다. 한 때 ‘교육학의 바이블’로도 불리던 ‘에밀’을 쓴 그는, 자신의 자식 5명을 태어나자마자 모두 보육원에 보내버렸다.

자기 자식을 내팽개쳤으면서도 루소는 ‘에밀’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남의 자식이나 부모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게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루소는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며, 자기 자식과 자기 반 아이 모두를 긍정적으로 키워내지 못한 교사이자 부모는 뭔가 아쉽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식을 설득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다소 별개의 영역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자기 자식이나 아내는 설득하지 못할지언정, 다른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어 그는 “서양에서는 속과 겉이 다른 공직자를 가장 싫어합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은 최악이지요”라고 말하는데, 나도 겉과 속이 다르고 일관성 없는 공직자나 지식인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그리하여 진보지식인들이 자기 자녀는 특목고를 보냈으면서 대외적으로 특목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모순점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는 것에 대해선 그 위선적인 모습에 치가 떨린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런데 애초에 전대원 선생님이 얘기한 지점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특목고 (일부)폐지론자인데, 아이가 간다면 그 뜻은 존중해 허가하겠다’는 것. 이건 조기숙 교수가 얘기한 겉과 속이 다른 것과는 다른 종류의 얘기다.

조기숙 교수가 얘기한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은, 어떤 이가 공적으로 특목고 폐지론을 주장하면서도, 자기 자식만큼은 이 사회에서 좋은 교육 받고 기득권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특목고를 보내는 것이다.

‘내 의견과 다르지만, 자식인 너의 의견을 존중해 특목고 가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하는 것과 그것이 정말 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이게 겉과 속이 다른, 일관성 없는 모습으로 치부되는 게 온당한 걸까.

이어 조기숙 교수는 “자녀는 미성년자일 경우 부모가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 부인, 동생 등 성인과는 또 다르다 했다.

예컨대 얼마 전 논란이 됐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여행 자제 권고를 무시하고 해외여행을 간 것에 대해, (그것이 여행 금지 조치를 어긴 것이 아닌 바에야) 강경화 장관이 책임질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나 또한 이 건에 대해 강경화 장관이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 남편 또한 자유로운 한 인격이고, 그 인격에 대해 장관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배우자라고 할지라도 억지로 못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미성년자 자녀라고 다를까? 미성년자라고 해서, 즉 성인이 아니니까 ‘부모가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명목 하에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걸까?

미성년자의 행위에 대해 부모가 명백하게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전대원 선생님이 지적했듯, 법적인 부분이다. 부모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일정 부분 미성년자 자녀에 대한 강제적인 개입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녀가 다른 이를 때려서 상해를 입혔다면, 적어도 민사상 책임을 지게 되는데, 자녀는 그럴 능력이 없고 아직 미숙하다고 판단하여 부모가 대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자녀는 자기 잘못을 부모님이 대신 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하고, 부모는 그 반성을 강요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자녀가 외고를 가고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녀가 다른 이를 때리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을 때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폭력을 허용하는 것과, 자녀가 외고를 가고 싶은 의견을 내비쳤을 때 그 의견을 존중해 외고를 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 행위가 불법적이고 누구나 인정하는 비도덕적 행위가 아닌 바에야, 우리는 최대한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게 맞다.

단순하게 말해, 우리는 생각에 차이가 있다고 다른 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수 없듯, 자녀의 생각을 설득해 보려 노력할 순 있을지언정, 강요할 수 없다. 그건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인권의 문제다.

물론, 자녀가 외고를 가고자 했을 때, 그 비용을 부모가 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일정 정도 제약을 가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비용이 일반 고등학교보다 훨씬 많이 드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과 더불어 부모가 꽤 많은 금전적인 지원을 해야만 끝난다.

아이의 문제이면서 더불어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또 반대로 얘기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미성년자 자녀가 스스로 돈을 벌어 학비를 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가 고등학교 교육까지는(현실적으로는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것까지지만) 책임을 지는 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

자녀의 외고 진학 희망은, 자녀에 대한 의견 존중과, 현실적으로 부모가 져야 하는 금전적인 지원 사이 어딘가에서 접점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미성년자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아이는 다소 억울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과 의견이 존중받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나 같으면, 자녀에게 먼저 외고 진학을 권유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아이가 외고 진학을 희망할 때, 적어도 그 이유를 물어보고, 그 이유가 어떤 특권의식을 키우고자 하는 어떤 것과 닿아 있다면,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눠 볼 것 같다.

누구나 갈 수 없는 고등학교를 부모의 비싼 등록금 지원을 받아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설득 비슷한 걸 해볼 텐데, 만약 설득이 안 된다면, 마지막엔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아빠의 생각은 이렇고, 아빠는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네가 더 생각해 봤는데도 가고 싶다고 한다면, 너의 생각을 존중해 보내주겠다. 하지만 너는 다른 이들보다 더 특별한 혜택을 받으며 공부했다는 건 항상 생각했으면 한다.”


어떤 이가 보기엔 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곳을 보내면서 이런 말까지 덧붙이는 게 참 별로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에게 이 정도 말을 할 권리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실제로 자녀에게 이런 정도의 말까지 군더더기로 붙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공적으로 특목고가 폐지할 만큼 나빴다면 자녀를 설득했어야 하고, 설득 못했으면 적어도 교육 부총리는 하면 안 되는 거죠.”


조기숙 교수의 이런 말 속에 자녀의 독립적 인격(물론 어느 정도는 제한할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지켜주려 노력해야만 하는)을 무시하는 생각이 들어있다고 얘기한다면 과한 것일까?

자녀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또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공직에 나가는 것은 신중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관성을 그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더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진보지식인 자녀의 특목고 보내기, 무엇이 위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