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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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시를 읽다 보면 참으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어떻게 이런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어휘를 선택하여 문장 속에 압축할 수 있을까? 시인은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결국 의기소침하게 끝난다. 그리곤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회의감에 젖어 든다.

일찍이 유시민 작가도 자신은 시인이 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이유인즉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를 사례로 들며 하찮은 연탄재란 사물을 통해서 타인을 위한 희생의 가치를 찾아내어 독자에게 참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은 천부적인 자질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고백이었다.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그래도 솔직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스스로 근거 없는 아우성에 의존하여 생짜로 우겨 본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거야.”라고. 그리곤 용기를 내어 그런 사례가 없는지 열심히 찾아보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는 환희의 순간 같은 시간을 경험했다. 우연히 어느 시인이자 교수의 말에 번뜩 뇌를 때리는 벼락을 맞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사람도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 <페터슨>이 바로 그런 영화였다. 그 영화는 버스 기사인 페터슨이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어느 여성이 ‘시인’이 되고자 늦은 나이에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를 창작하는 활동을 다룬 영화가 있었다. 그때도 영화를 보며 잔잔한 울림이 일었다. 하지만 딱히 ‘그래, 이거야’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필자의 마음을 진하게 울리는 말을 바로 영화 <페터슨>에서 찾았다.

주인공 페터슨은 몽상하는 눈길로 일상과 사물을 관찰한다. 성냥갑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담배, 당신은 성냥’과 같은 문장을 빚어낸다. 바로 ‘일상 속에서 일상탈출’하기가 시를 창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말에 10년 묶은 체증이 풀리듯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생각 뒤집기’라는 비결이었다.

시인 네루다가 말한 시의 요체는 은유(메타포- metaphor)다. 서로 무관한 A와 B를 결합시켜 C, 즉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은유가 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낯익은 것에서 낯선 그 무엇을 찾아내는 일’이 시 쓰기라 한다. 즉, 은유는 관찰과 발견의 한 결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일상에서 무의식적인 반복의 연속이다. 실제로 도시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소시민들 가운데 과연 누가 일상의 틀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버스가 노선을 벗어날 수 없듯이 소시민 또한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지 않은가.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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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일상의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시인 중에는 남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다. 수녀도 있고, 마도로스도 있고 경찰관도 있다. 국회의원도 있고, 백혈병 전문의도 있고 꿀벌 치는 양봉업자도 있다. 공무원, 기자, 중소기업인, 사진가, 농부도 있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시인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동료 교사 중에도 시인이 존재한다. 아무리 소위 ‘전업 시인’이 불가능한 현실이라 해도 여기서 희망을 발견한다.

우리에게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부업’을 가져야 하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느껴진다. 부업이라는 생업이 없으면 시를 평생 천직으로 삼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인 역시 직업을 가져야 하는 엄연한 생활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시인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하다.

문제의 핵심은 소시민의 재탄생이다. 소시민이라면 누구나 생계 수단을 가져야 한다. 물론 누구나 다 시를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다른 눈’을 가질 수는 있다. 여기엔 일상적 삶의 안쪽에서 자신의 삶과 사회를 응시하는 능력만 있으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금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저마다 ‘시의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시인이 되고자 도전하는 마음과 희망을 저 허공 속에 묻히지 않고 가슴 속에 깊이, 소중히 간직하여 자주 열어 보고자 한다. 이제 인생 100세 시대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