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좋은교사운동 공동 캠페인 '학습결연119'를 만나고

김경은 서울 숭덕초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 2년을 기다려 올 해 발령을 받은 갓 태어난 삐약이 교사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서로가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것 저것 실험해보고 있다.
김경은 서울 숭덕초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 2년을 기다려 올 해 발령을 받은 갓 태어난 삐약이 교사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서로가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것 저것 실험해보고 있다.

[에듀인뉴스] 2020년 2월. 교육청에서 임명장을 받고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선 날.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 앞에 섰다.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하지만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으로 아이들은커녕 매일 컴퓨터 앞에 매달려 출석과 과제를 점검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우리 반 학생들은 빠지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도 잘 해온다. 딱 한 명, 현영(가명)이만 빼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퇴근하고 오면 너무 늦어서 제대로 챙기지 못했네요. 주말에라도 꼭 시키겠습니다.”

“주말에 시키려고 했는데, 주말에는 또 하지 않으려고 해요. 죄송해요.”

“아이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려고 올해부터 일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아이에게 신경을 못 쓰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현영이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밤늦게 들어오시기 때문에 현영이는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는다고 한다.

돌봄에 보내라는 권유에 어머니께서는 집 앞에 큰 공사가 진행 중이라 혼자 등교시키는 게 어렵다면서 본인이 꼭 학습을 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은 ‘죄송하다’는 말 뿐.

사태는 여름 방학 이후로 더 심각해졌다. 그래도 일 학기에는 일주일에 한 두 시간은 듣곤 했는데, 방학이 지나고 갑자기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는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동학년 회의에서 다른 선생님들께 아이의 상황을 나누었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곧 등교 하게 될 거니 조금 기다려보라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수업도 수업이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을 현영이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지난 여름, 기독교사 대회에서 들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배움과 연결되지 못하고,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현영이의 몸과 마음, 영혼은 어떨까. 외로움과 무료함 속에서 점점 메말라 갈 것이다.

아이 주변에 이렇게 어른들이 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마냥 지켜만 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그동안 나가고 있던 IVF 기독 직장인 모임에 현영이에 대한 기도 제목을 나누었다.

한병선 간사님께서 가만히 있지 말고 아이 집으로 찾아가 아이의 학습 환경을 확인하고 직접 가르치라고 조언해주셨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정말 그렇게 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생의 집에 찾아가려면 부모님을 설득해야하고, 또 방역 문제로 학교에서 허락을 해줄지도 모르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학습 결연 119’를 본 것이 생각이 났다. ‘뭐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참 절박한 마음으로 신청서를 적어 내었다.


신규 선생님의 특권?


신청서를 적어낸 후 오픈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여기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현영이의 상황을 적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었지만 옆 반 선생님보다 더 관심을 갖고 문제를 들어주셨다.

참 감사하게도 채팅방에 같은 지역 구의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다음 날 문자로 먼저 연락을 주셨고, 통화를 하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지역의 돌봄 서비스와 각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등하교 지원 제도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 주셨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안전 부장님과 복지사님 등 학교의 여러 담당 선생님께 문제를 알리고,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사안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실마리가 보였다. 다음날 희망을 안고 바로 복지사님께 찾아가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하였는데 마음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3학년은 등하교 지원을 하고 있지 않고, 지역에서 하는 것은 이미 신청 기간이 끝나 돌봄에 보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아이의 부모님을 설득하여 학교나 지역의 돌봄에 보내도록 하거나, 가정 방문 또는 비 등교일에 교실로 불러 수업을 하도록 부장님과 교감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규 교사로서 이 모든 걸 감당하기에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채팅방에 이런 어려운 마음을 나누었는데, 한 선생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선생님! 힘내세요. 무모하리만치 용감할 수 있는게 신규샘의 특권인데요. 응원합니다^^’

‘맞아. 지레 겁먹지 말고, 일단 부딪혀보자. 나는 신규니까 무얼 해도 귀엽게 이해해주실거야!’


이 한 줌의 용기는 다음 날 학년 부장님과 교감 선생님께 찾아가 아이의 상황을 말하게 했고, 학부모님을 설득하도록 하였다.

다행히 아이 아버지의 등하교 협조로 현영이는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 길 위에서 첫 걸음


현영이와 단 둘이 수업을 한 첫날. 현영이는 그동안 학습이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학년인데 구구단도 3단까지 겨우 외운 상태였고, 받아올림, 받아내림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왜 아이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당장 진도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의 구멍부터 메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수학부터 가르치기 시작했고, 올 때마다 구구단을 함께 외우기 시작했다. 현영이가 내 앞에서 구구단을 외울 때 나 역시 마음을 졸이며 함께 외웠다.

“와아!! 백점이에요? 백점? 와아아!”

현영이가 처음으로 9단까지 다 외웠던 날,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아이와 함께 맛본 그 기쁨이 그간의 나의 노력에 위로해주는 듯했다.

이렇게 가장 멀리 있었던 현영이는 내 품에 안겨 가장 가까운 학생이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어쩔 줄 몰라 했던 병아리 교사에게 내밀어준 따뜻한 손길들은 한 아이에게 다가가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앞으로도 그 길 위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한 생명, 한 생명과 연결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