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숲 캡처

[에듀인뉴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검찰 권력이 최고로 강력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 강력한 집단의 위치를 조금 따져 보자면 의외로 행정부 산하 법무부 소속 일개 부서(청)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검찰을 사법부 소속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일개 부서가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의 근간, 삼권분립의 다른 한 축인 사법부마저도 손아귀에 넣고 사찰을 했다는 보도가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권력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누가 그들에게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주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현대 사회의 시스템에 있어서 ‘재판’과 ‘판결’로 귀결되는 모든 과정의 필요성은 극도로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세상살이에 억울한 이들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보는데, 그 과정에 필요한 역할을 율사로 통칭될 수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진리는 그렇게 단순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듣고 보아왔을 것이다.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는데, 신마저도 일부러 눈을 가려야만 가능한 정의의 과정에서 그야말로 한낱 ‘인간’은 눈을 부릅뜨고 너무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해요소들을 포용하며 즐기면서 말로만 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 없이도 살고 싶은, (본인 생각으로) 그저 보통의 양심을 가진 보통 사람인 나는 율사를 직접 만난 적이 아직 없다. 그러므로 내가 접한 율사는 드라마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의 검사를 만났다. 

그 검사의 이름은 ‘황시목’이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도 올해 시즌2까지 방영된 ‘비밀의 숲’이라는 제목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들어는 봤을 것이다. 마니아층이 제법 두텁고 두 번에 걸친 스토리라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해석도 하고 주석도 붙인 모양이다. 

주인공인 검사 황시목은 어렸을 때 뇌수술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캐릭터다. 남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해하지 못하고 갸웃거리며, 때로는 인간적으로 차마 할 수 없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독설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황시목에게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열광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 독설의 상대가 ‘모두’이기 때문이다. 즉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상대가 약한 자이든, 혹은 권력을 가진 자이든 상관없이, 그는 법대로 원칙대로 소신을 말한다. 돌려 말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래서 명쾌하다. 게다가 그의 독설에는 ‘악의’가 빠져 있다. 호의든 악의든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시킬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사감을 배제시키고(혹은 사감을 가질 능력이 배제된 채)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하는 그에게 나는 ‘최고의 검사’라는 타이틀을 주고 싶다. 그의 뇌수술은 정의의 여신이 하고 있는 눈가리개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검사들.(사진=tvn캡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들 한다. 곳곳에서 들리는 신조어에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막상 4차 산업혁명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한순간 머뭇거린다. 1,2차 산업혁명 때는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3차 때는 인간의 정보 분석 능력이 컴퓨터에 의해 간단하게 추월당했다. 그리고 지금, 4차 산업혁명의 때는?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사실은 당시 크게 이슈가 되었지만, 지금은 인간과 AI의 대국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답정너’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AI의 ‘판단력’이 인간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근미래에 많은 직업들이 AI로 대체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체 직업 리스트 맨 위에는 율사라는 직업군이 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단시간에 찾고, 오로지 입력된 값에만 근거를 두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현대의 AI가 가진 최고 장점이다. 

수많은 판례를 뒤적거리며 법률 항목을 조목조목 따지는 일은 율사의 역할인데, 능률과 속도는 AI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AI에게 사적인 감정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이미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AI가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판결 과정의 속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놀랍게도 그 후 범죄발생률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AI에 가장 근접해있는 검사가 바로 황시목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검사다. AI가 검사 역할을 하는 시대를 나는 찬성한다. 철저한 ‘전문성’을 가진, 검사 본연의 역할을 ‘능률적’으로 수행하는 ‘합리적’인 검사를 기대한다.

현실에 황시목은 없다지만 AI는 실현가능하지 않은가.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