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털어놓는 고민에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면 좋을까?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를 이끄는 대표이자 '그림책 한 권의 힘'의 저자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고민에 그림책으로 답해주고 있다. 그림책을 통해 감정, 관계, 자존감 등 삶의 문제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의 숨을 쉬도록 숨구멍을 틔워준다. <에듀인 뉴스>는 <이현아의 그림책 상담소>를 통해 이현아 교사로부터 아이들과 마음이 통(通)하는 그림책을 추천받고 그림책으로 진행 가능한 수업 팁을 전한다.

[에듀인뉴스] “선생님, 사전에 나오는 단어 뜻이 꼭 정답인가요?”

이따금 모르는 단어가 있어서 사전을 찾다보면 오히려 머릿속에 알쏭달쏭 물음표가 그려질 때가 있다. 사물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싶어서 사전을 펼쳤는데, 사전 속 뜻풀이는 마치 카메라 앵글을 한 쪽에만 고정한 듯 단조로운 설명만 늘어놓기 때문이다.

‘사전과 대화라도 할 수 있다면 속 시원하게 물어보면 좋으련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전에 적힌 문장을 읽고 그대로 이해하는 것뿐이다.

그림책 '꼬마 안데르센의 사전' 표지.(공살루 M. 타바리스 글, 마달레나 마토주 그림, 로그프레스, 2019)
그림책 '꼬마 안데르센의 사전' 표지.(공살루 M. 타바리스 글, 마달레나 마토주 그림, 로그프레스, 2019)

이런 사전의 뜻풀이에 만족하지 못한 아이가 있다. 바로 그림책 <꼬마 안데르센의 사전>의 주인공 안데르센이다.

안데르센은 사전을 펼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급기야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단어장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꼬마 안데르센이 만든 기발한 단어사전에는 어떤 뜻풀이가 담겨있을까?

어느 날 꼬마 안데르센은 ‘지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전을 펼쳐보면 이렇게 써져있다.

‘지도란, 지구 표현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안데르센이 지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여행을 할 때 지도를 펼쳐놓고 걷는 것은 나의 여행을 다채롭게 만들까, 아니면 오히려 단조롭게 만들까? 안데르센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썼다.


‘지도는 눈앞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종이에요. 크게 펼쳐 든 지도는 지도로부터 나를 숨기죠. 지도를 눈앞에 펼치고 여행하는 건 마치 눈가리개를 하고 여행하는 것과 같아요.’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는 뜻풀이다. 지도에 코를 박은 채 정해진 경로로만 걸어 다니는 것은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것처럼 여행을 심심하게 만들 수 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과 사람들로 인해 입체적인 여행을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엔 ‘손전등’에 대해서 알아볼까? 사전을 펼쳐보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전등’이라는 뜻풀이가 적혀있지만, 안데르센은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을 사전에 등재해놓았다.


‘손전등은, 호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아주 작은 태양이에요. 빛이 필요할 땐 언제든 한 손으로 켤 수 있어요.’


호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작은 태양이라니! 안데르센은 작은 손바닥 안에 온 우주를 품고 있는 아이다. 이 아이의 특별한 시선을 사전 속 ‘정답’같은 뜻풀이로 납작하게 구겨버리지 싶지 않다. 아이가 지닌 입체적인 사고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넓게 펼쳐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서 화면을 가깝게 만들었다가, 또 멀게 만들었다가 반복하는 당신. 카메라의 ‘줌’을 나만의 사전에 등재한다면 어떤 뜻풀이를 쓸 수 있을까?

손가락 두 개로 줌인과 줌아웃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도 단어의 뜻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여기 안데르센의 뜻풀이를 한 번 들어보시라.


‘카메라의 줌 버튼을 누른다는 건 ’게으름‘의 다른 말이에요. 직접 다가가는 대신 카메라 렌즈를 움직여 사물을 당겨오죠.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확대를 한다는 건 두 발로 걸어가는 걸 의미했어요.’


카메라의 ‘줌’과 ‘게으름’이 이토록 절묘하게 만나다니! 안데르센은 부지런한 발로 걸어서 거리를 조절하는 대신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을 당기는 사용자의 내적 동기에 주목한 것이다! 아이의 시선이 너무나 유연하고 유쾌해서 입가에 배시시 웃음을 머금게 된다.

눈을 반짝이면서 이 그림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면, 이제 여러분만의 단어장을 마련해볼 차례다. 아이들과 함께 단어장을 하나씩 마련하여 아이는 아이만의 시선으로, 어른은 어른만의 시선으로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여 나만의 단어장에 뜻풀이를 써보길 권한다.

내가 쓴 단어의 뜻을 가만히 읽다보면 내가 정의한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쓴 단어의 뜻풀이를 통해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구체적인 윤곽을 가진 언어로 만날 수 있다.

서로의 단어장을 나누면서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만나 공명하는 일, 꽤 근사하고 짜릿하다.

▶현아샘의 그림책 수업 tip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다양한 사물과 현상에 대해 나만의 시선으로 뜻풀이를 써보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각자가 정의한 세계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그림책 질문입니다.

1. 사전을 찾아보았지만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았던 단어가 있나요? 내가 궁금했던 측면을 충분히 탐구하면서 나만의 뜻풀이를 써봅니다.

2. 다른 사람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정의한 단어의 뜻풀이를 읽어보세요. 나와 다른 시선이 놀랍다면 감탄의 말을, 나와 비슷한 시선을 느꼈다면 공감의 말을 전해주세요.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