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민주주의’라는 말은 일종의 가치진술이다.

‘민주적 사회’라고 하면, 그러한 사회는 특별한 가치가 실현되는 ‘좋은 사회’를 의미한다. 비록 민주적 사회라고 일컫는 곳에서도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들이 삶의 주변에서 관찰될 수가 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상이라기보다는 불완전한 상태의 사례이거나, 불가피한 필요악이거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이해되든지 간에, 우리는 적어도 그 본연의 의미인 민주주의를 ‘좋은 삶’, ‘이상적인 삶’을 약속해 주는 가치체제 혹은 독특한 사회제도라고 생각한다.

마치 ‘양심적인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왜 양심적이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는 것과 같이, 우리는 대개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민주적 사회’와 ‘좋은 사회’는 동의어로 이해된다. 현실적으로 불만스러워도, 다만 민주주의를 더욱 세련되게 실천하고 그러한 사회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민주주의’, ‘민주적’이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함의하고 있는 일종의 규범적 언어다.

그래서 우리의 국가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하고, 우리가 속해 있는 여러 조직들도 민주적 규범을 실천해야 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도 민주적 가치와 이상에 역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어떤 사회를 일컬어 ‘민주적 사회’라고 해야 하고, 어떤 가치체제를 일컬어 ‘민주주의’라고 하는가에는 명시적이고 권위적인 일정한 답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현실적으로 민주주의의 사상과 제도와 생활의 양식들은 그 본체를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일관성도 없고 서로 모순 혹은 대립의 관계에 있기도 한다.

오늘의 세계를 주의해서 보면, 사람들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추구하는 바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 심지어는 독재성을 띤 제국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도 모두 각기 민주주의의 한 유형이라거나, 심하게는 민주주의의 전형(典型)이라고까지 고집한다.

각기 좋은 삶의 본형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과 갈등적 양상은 어느 먼 나라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어쩌면 그러한 혼란스러운 주장들이 서로 공존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별로 우려스러운 것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대로 저들은 저들대로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보면,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법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주의의 유형들 간에 반드시 평화로운 선택의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가치체제의 성격에 따라서는 서로 대적하고 견제하고 전쟁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아마도 민주주의의 개념 그 자체는 적극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표상하는 것이고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이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집착하는 방식에는 다양성을 허용하는 개방적인 이념적 원리로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라고 여긴다. 그 의미의 규정에 있어서까지도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주장되는 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의 개념이면, 그 여럿들 간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치체제들이 동시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적 다양성’은, 특히 자유주의적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 혹은 조직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부담을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공교육 종사자, 법률적 심판자, 공공 행정의 수행자 등이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간에,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삶의 영역에서는 구성원들이 개별적 정체(正體) 유지와 가치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 경우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잠재적 갈등요인이 잠복해 있을 수는 있어도, 구성원들 간의 파당적 갈등과 대립과 반목의 복잡성은 쉽사리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치선택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치관의 선택과 집착으로 인한 크고 작은 갈등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또한 항시적으로 재발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때로는 사회적 삶 전체가 질서를 잃고 붕괴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마침내는, 민주주의에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를 물어야 할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이 질문을 해 보아야 할 정도로 민주주의는 위기에 놓여 있다.

사실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여러 유형 중에서 특히 자유주의적 노선의 체제는 그 본질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러한 부담을 가장 심각하게 안고 있다.

심지어 자유주의는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도 다양성의 미덕을 지키고자 하는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마치 가장 민주적이라고 여기는 듯이 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개념과 원리와 그 가치에 대하여 다른 어느 가치체제의 경우보다도 복잡한 개념적 구조와 분석적 틀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것은 사실상 대단한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부담을 주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따른 실천적 참여와 노력과 기획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분쟁은 때때로 필사적인 전쟁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바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자유, 평등, 개성, 공동체 등의 가치를 비롯한 화려한 덕목들을 구현하고 수호하는데 애착과 헌신과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의지, 바로 그 의지의 실현을 위하여 적지 않은, 때로는 엄청난 부담이고 때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원천적으로 반드시 적극적-긍정적 가치의 개념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특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당시의 고전적 민주주의를 두고 좋은 삶을 위한 이상적인 가치제제도 아니고 가장 좋은 사회제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문명된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개념과 이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진화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미래의 삶에서도 구현되어야 할 항구적 가치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

# 이 글은 이돈희 교수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교육사철정담론'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연재 예정 내용

민주주의의 개념적 진화과정/ 제도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달/ 플라톤은 왜 민주주의를 경멸하였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민주주의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나/ 민주주의와 그 적들/ 민주주의의 내홍: 다원주의와 완전주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절차론적 원리와 문제/ 협의론적 문제해결은 가능한가/ 생활양식으로서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의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