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김설아 서울 탑산초등학교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김설아 서울 탑산초등학교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33년간 열정적으로 교직 생활을 하던 엄마는 명예로운 퇴직과 함께 젊은 시절의 곱고 곱던 목소리를 잃었다. 교사의 직업병. 하도 말을 많이 한 탓이다.

지금은 그나마 노래 음원 자료 도움도 받지만 엄마는 온전히 교사의 육성에 의존해서 수업하던 시대를 지냈다. 목 깊숙한 곳에서 가래가 끓었고, 조금만 크게 말을 해도 탁한 목소리가 갈라져 쉰 소리가 났다.

그런 엄마가 퇴직과 동시에 노래를 배우겠다고 선언했다.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란다.

‘음치에 박치인 엄마가 노래를 배운다고?’

엄마는 교직 생활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이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었다고 했을 정도로 음치에 박치였다. 가장 부러운 교사는 보란 듯이 노래 시범을 보일 수 있는 교사.

아직도 엄마의 기억 한 켠에는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 앞에서 ‘옹달샘’ 노래를 뽐냈던 친구가 부러워서 남몰래 흉내 내보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 표지.(유지연 글, 이야기꽃, 2014)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 표지.(유지연 글, 이야기꽃, 2014)

한평생 이루지 못한 꿈을, 퇴직 후에 펼쳐보려는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의 초상화』라는 책을 펼쳤다.

이 책은 평생 본인을 ‘엄마’인 줄만 알고 살던 미영 씨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꿈꿔왔던 모습 ‘미영 씨’를 발견해 나가는 내용이다.

그림책 왼쪽 면에 그려지는 엄마의 초상화는 가족을 위해 안식처가 되어 주다가 늙어버린 지루하고, 초라한, 지친 엄마의 모습. 오른쪽 면의 초상화는 빛나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는 ‘미영 씨’의 모습이다.

엄마는 평생을 엄마로, 며느리로, 부인으로, 딸로, 교사로 맞벌이하며 바쁘게 달려왔다. 자식 둘 뒷바라지에 평생 시부모님을 모셨으니 말 다 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있었기에 ‘엄마’로만 늙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엄마에게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토록 잘하고 싶었던 노래를 배울 시간이 없었을 뿐더러, 직업병으로 인해 추가로 목을 쓰는 취미 생활은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퇴직 직후, 엄마는 환갑의 나이에 ‘옹달샘’을 잘 부르려고 애쓰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 눈을 반짝, 입은 크게 벌리며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선택한 곡은 이은미의 <애인있어요>. 처음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V아직도 너어언 v혼잔-거니’. 해야 되는데, 엄마는 ‘아직도 너언 혼자아안.... v거니’ 했다.

집에서는 잘하다가도 꼭 선생님 앞에 가면 떨려서 틀렸다. 엄마도 평생 선생님이었는데 말이다. 그 노래를 꼬박 1년을 배웠다.

“에이, 나이 들어서 안 되나 봐.”

좌절도 했으나, 노래에 대한 열정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엄마는 주로 혼자 운전할 때 목청껏 노래를 불렀는데, 그 순간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가수가 된다고 했다.

놀랍게도 끈질긴 노력 끝에 엄마는 음감과 박자 감각을 갖기 시작했다. 정확한 발성과 호흡법을 배운 덕분인지 긴 교직 생활로 탁해졌던 목소리도 본래의 맑은 빛을 되찾아갔다.

2년여 간의 기초 훈련을 끝낸 엄마는 성악 선생님을 찾아갔다. 성악 선생님은 일 년에 두 차례 아마추어 성악가들에게 무대 경험을 선사해줬는데, 엄마는 합창 무대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꿈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웬걸! 엄마는 벌써 네 번째 솔로 무대를 마쳤다.

화려한 진분홍 드레스를 입고 이태리 가곡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를 손짓과 표정 연기까지 추가하여 애절하게 부르고 내려온 엄마는 하도 긴장하고 집중했던 나머지 머리가 다 아프다고 했다.

‘얼마나 간절하게 노래를 했으면 머리가 다 아플까.’

간절히 원하던 꿈을 이룬 엄마의 커다란 두 눈이 더욱 아름답게 반짝였다.

퇴직 후에도 꺼지지 않는 빨간 열정으로 진정으로 바라던 ‘영옥 씨’를 찾고, 상상치도 못할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엄마 ‘영옥 씨’. 엄마는 무대 위의 소프라노가 되어서 인생 제2막을 펼치고 있었다.

엄마가 직접 그려나간 초상화 속 ‘영옥 씨’의 두 눈이 나를 보며 더욱 반짝인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