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저하' 지적하면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되받아 "갈등 본질은 왜곡 프레임"
10년차 혁신학교 "이제 양적 확대 보다 논쟁 잠재울 연구 토대로 내실 기해야"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서울 경원중학교 혁신학교 지정 논란으로 혁신학교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지난 7일 학교 앞에 모인 학부모와 주민들의 부적절한 행위 및 지나친 대응만 부각되면서 이렇게까지 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다른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내용, 특히 혁신학교 지정 신청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공감할 혁신학교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진=서울형혁신학교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사진=서울형혁신학교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서울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은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정책입안자와 학부모, 지역민의 엇갈린 시선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학부모들은 '학력 저하'를 우려했으나 정책을 추진하는 측은 '부동산 가치 저하' 우려가 본심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혁신학교 지정 반대 관련 글이 지역 부동산 카페에서 발견되고 기사화되면서 혁신학교 추진 과정은 후순위 관심사로 밀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0년 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된 혁신학교 지정 시 일부 지역에서는 주변 시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을 보면 최근 논란은 정반대로 흐른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혁신학교와 부동산 가치 하락, 왜 이런 프레임이 짜여 졌나


모 언론은 경원중 사태를 다루며 지역 부동산 카페에 등장한 글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에서의 반대 주장에 대한 글을 집중 소개하며 집값 하락 우려가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숨겨진 이유라는 논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일부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이다. 집값 하락과 교사 감금 규탄 등의 글귀를 앞세워 서울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결국 경원중 학부모와 주민들의 혁신학교 지정 반대 이유를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혁신학교와 부동산 가치 하락의 상관관계가 진짜 있을까. 에듀인뉴스는 그동안 나온 혁신학교 관련 연구보고서 등을 찾아보고 수소문해봤지만 이와 관련해 연구된 자료도 없고 그러한 자료를 본 사람도 없었다. 떠도는 입소문에 교육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보를 자처한 한 인사는 “혁신학교가 처음 대두하고 교육청에서 예산을 쏟아 붇던 시절에는 특히 신도시에 위치한 학교 주변의 아파트 값은 주변보다 높이 형성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서도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중고등학교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를 것이다. 특히 강남 등 지역 아이들은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중시되지 않나”라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경원중 주변 부동산 관계자는 “부동산이라는 게 학교 하나로 값이 떨어지고 오를 정도로 가변적이라면 서울에는 혁신학교가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부 주민들이 그런 문의(집값 하락)를 하지만 아직 경험한 바도 없고 입증된 바도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안내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부동산 가치 하락 우려가 실제로 있다는 말도 나왔지만 혁신학교 지정 반대에 있어 1순위 이유는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경원중 A 학부모는 “부동산 가치 하락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끼리도 선동꾼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짙다”며 “아이를 둔 부모가 어찌 공부하는 학교를 두고 부동산 가치를 논하겠나. 학교 하나로 부동산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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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는 학력이 떨어진다? ①“진도도 다 안 나간다 Vs 교육과정 재구성"


기자와 대화한 학부모와 주민들은 하나같이 지역사회와 소통 없는 교육청의 일방 정책(관련기사 참조)과 함께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우려했다.

경원중 B 학부모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도 좋지만 교과서 진도도 다 나가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경원중은 마을결합중점학교를 2년간 했는데 무엇을 했는지 학부모도 지역 주민도 아는 사람이 없다”며 “이를 듣는 학부모들과 예비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혁신학교에서는 교과서 진도를 다 안 나가 신뢰할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은 여러 맘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원의 한 맘카페에는 “혁신학교는 진도 자체를 다 못 뺀다고 들었다”며 “공부 습관도 안 잡혀 있어 중학교 진학하면 수포자 되는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는 내용이 달려 있다.

그러나 교육계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융합하거나 활동중심 수업을 하는 경우 교과서 진도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교육계 관계자는 “교과서를 순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진도를 다 빼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성취기준에 맞게 가르치고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혁신학교는 학력이 떨어진다? ②일관성 부족한 연구 결과들


그간 혁신학교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이 학력 저하 문제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상반된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지난 2016년 치러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는 혁신학교 중학생의 기초학력 미달비율은 5%(전국 평균인 3.6%)였으며, 혁신학교 고교생의 11.9%(전국평균 4.5%)로 집계됐다.

이에 반해 2018년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발표한 ‘혁신학교 성과분석’ 연구 자료(서민희)에서는 혁신학교는 일반학교에 비해 국어, 영어, 수학에서 2009년도 성취도 평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극은 줄어들고 혁신학교의 성장세가 컸다.

즉 국어, 수학, 영어 세 과목 가운데 국어, 수학에서 혁신학교의 성장률이 일반학교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는 내용이 실렸다.

조희연 교육감은 당시 이를 두고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도가 일반학교 학생들보다 높게 나온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전국 모든 학생의 자료를 분석한 것이어서 신뢰성이 높다”고 평했다.

그러나 2019년 서울교육종단연구에서 발표된 ‘서울형 혁신학교 시행이 학교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양희원, 강유림)은 다소 모호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이 3차년도(2012년) 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혁신학교의 수학‧영어 성취도는 일반학교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6차년도에서는 두 학교 간 성취도 차이가 작았으며, 9차년도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으나 일반학교 성취도가 혁신학교보다 높게 나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연구진은 혁신학교가 일반학교에 비해 낮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긴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부족해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처럼 혁신학교와 관련한 성적지표 및 연구 결과 등을 보면 아직 혁신학교의 학력이 떨어지거나 높다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이른 상황이다.

혁신학교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 본연의 학습 부담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혁신학교는 주체적인 학업을 추진하기 때문이라는 등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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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수용자 반발이 있다면?...“혁신학교 확산 보다 축적 데이터로 홍보할 때”


혁신학교 지정을 두고 최근에는 갈등이 더 심각해짐을 알 수 있다. 지난 2018년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 혁신학교 개교가 철회됐고, 2019년 서울 강서구 마곡2중도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하라는 집회가 열렸다.

올해는 강동고와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을 두고 반대 민원 및 집회가 열리는 등 갈수록 양상이 격해지는 모습이다.

반대 여론은 하나 같이 학력 저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치 하락을 씌워 지역 이기주의 프레임에 가둬 버렸다.

둘 다 입증되지 않은 원천 데이터를 일반화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는 “경원중 사태로 혁신학교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지만 갈등의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며 “증명되지 않은 사실로 서로를 할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유독 서울에서 이러한 일이 매년 일어나는 것은 학구열이 높은 것도 한 몫을 할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중점 가치로 내세운 혁신학교라면 학부모와 지역 주민의 우려를 불식하는 자료를 제시해 설득에 나서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혁신학교를 일반화하려는 교육 당국의 모습에도 질책을 남겼다.

그는 “성과가 입증되지 않은 혁신학교를 급격히 늘리면서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가 쌓여가는 게 아니겠는가”라며 “서울의 경우 이미 200여 곳이 넘는다. 이 학교의 성과를 축적해 우려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공부도 잘 하고 아이들도 행복한 학교가 혁신학교라고 증명된다면 어느 부모가 마다하겠나”라고 제언했다.

경원중 B 학부모 역시 “언론을 통해 5개의 긍정적 기사가 나와도 1개의 부정적 기사가 나오면 학부모는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인다”며 “경원중은 혁신학교에 대해 알려주는 자리 한 번 마련하지 않았다. 교장을 만나러 학교에 갔는데 교장은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놓고 감금하고 시위했다고 언론 플레이 하는 것을 보니 정말 혁신학교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견고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