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의 우리 교육 더 낫게 만들기] 6. 개인과 나라의 공영②
직업생활과 국가가 개인의 성패와 행불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에듀인뉴스] 교육은 희망이고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교육 혁신안이 등장했음에도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학자, 기업인, 일반인, 실업자 등 각자 처지에 따라 교육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다. <에듀인뉴스>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탐구하고, 국가의 거시적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의 미시적 교실 수업을 아울러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홍후조 교수(교육과정학자)의 입을 빌어 ▲교육 기본제도 ▲교원 양성과 운용 ▲이공계 인력 양성 ▲교과서 문제 ▲진학계 고교 문제 ▲온라인 수업 ▲국민형성교육 등 분야 별로 문제의식(배경), 현황과 문제점, 원인과 이유, 개선 방향(가치 추구), 구체적 방안, 후속지원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계획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100세 시대에 청소년기 학교교육이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식으로 인생사 성패를 점치는 것은 너무 이른 판정이며, 백년대계의 교육은 개인의 평생을 두고 성패를 가늠해야 한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 행복에 이르기 때문에 개인과 국가의 성공은 중요하다. 어릴 때 중요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은 인생사의 성패와 행불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차츰 사회에서 직업생활과 모든 구성원에 영향을 주는 국가의 이념과 체제에 그 영향력을 넘겨주게 된다.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그 잠재력이 발현되는 상황도 다르고, 우여곡절과 새옹지마를 겪는 경로도 다 다르다.

우선 직업생활에 대해 생각해본다. 직업생활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직업생활은 경제생활과 다름없다. ‘돈으로 좋은 침대를 살 수 있으나 편안한 잠은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인생사 90%는 돈으로 해결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60세였을 때 대략 절반인 20~30년을 직장생활기간으로 보았다면, 100세 시대의 직장생활기간은 40~50년 정도 된다. ‘인생3모작’이라는 말처럼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생애주기별 자기관리능력’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따라서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인생이 단거리가 아니라 울트라 마라톤임을 누누이 알려주고 어떻게 준비하고 달리도록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필자의 전공인 ‘교육과정’의 하나의 정의는 ‘인생행로 혹은 삶의 궤적’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100세 시대 생애계획’ 짜보기를 시킨다. 수업소감을 들어보면 이 경험은 매우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직업생활이 우리에게 의미를 더하려면 학교교육은 직업을 둘러싸고 다음에 힘써야 한다.

첫째, 학교교육을 통해 ‘생애 첫 직업 찾아 정하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중등학생일 때 장차 종사할 첫 직업을 찾고, 이에 필요한 직무수행능력을 익히는 직업준비교육을 시작하는 것은 대체로 고교부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의 공식적 최종교육은 직업준비교육이다. 심지어 중학을 마치고 그만 두더라도 반드시 직업준비교육은 받고 거리로 나가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그간 학교교육에서는 진로교육을 강조해왔으나 많은 학생들이 전공을 바꾸려고 하고, 선택한 전공을 후회하는 비율이 높으며, 대학졸업 후 50%는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직업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진로교육이 거의 실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교육은 국영수 중심, 문이과 양분, 대학합격을 최우선으로 하고, 정부는 전공 불문하는 공무원을 증원하고 있으니, 이런 무방향성이 학습의 선택과 집중을 흐린 것이다.

고교생이 되었음에도 생애 첫 직업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공부하는 것은 무기력을 낳는다. 목표 달성에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질 때 공부는 효과적, 효율적이 된다.

그러므로 진로교육은 학생이 자기 생애 첫 직업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고, 만약 학생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고교부터는 진로별 학습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둘째, 지능정보화에 맞는 연구개발형 직업준비교육이 요구된다.

지능정보화로 인해 사람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파편화되었다. 많은 경우 AI를 장착한 로봇이 일의 대부분을 하고 사람들은 그 앞뒤의 일을 한다.

AI때문에 일은 ‘사람 몫의 온전한 일, 사람이 주 AI로봇이 부, 사람이 부 AI로봇이 주, 사람이 도저히 불가능한 부분을 AI로봇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 AI로봇 몫의 온전한 일’로 나뉜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은 AI를 설계, 생산, 관리, 유지, 개선하는 방식처럼 연구개발(R&D)형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복지와 사회적 기업의 증가로 ‘반(半)일 반취미, 반일 반봉사’의 일이 늘어나게 되고, 그래서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 안심소득 혹은 기본소득을 주자는 제안이 뒤따르고 있다.

셋째, 사람들 사이의 모든 차이는 차별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불평등은 없어지지 않으며 평등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교육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경험상 ‘사람은 불평등하게 태어나 불평등하게 살다가 불평등하게 죽는다.’ 다만 우리의 지식과 기술, 지혜와 협력으로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음을 학교교육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를 이룬 나라에서는 배고픔은 사라졌으나 배아픔은 남아 있다. 모든 이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상향 이동하여 절대 빈곤은 사라졌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유토피아가 아닌 한 상대적 불평등이 어느 정도 지속된다.

넷째, 학교교육을 통해 일하는 사람과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을 칭송해야 한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듯이 누구나 자기 일이 있어야 마음이 잡히고 덜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태어나 자기 혼자를 잘 건사하는 사람은 칭찬받을 만하고, 가정을 일구어 가족을 건사하면 그 부모는 훌륭한 사람이며, 가족을 넘어 남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람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고, 여러 회사를 거느리고 원청 기업을 경영해가는 이들은 정말 칭송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에 재벌과 대기업 같은 원청 기업이 있어야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상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다국적 원청 기업인 우리나라 대기업이 무너지면 그 자리를 외국계 다국적 기업이 차지하고, 우리 기업들은 하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점에서 고용을 유지·확대하는 것을 전제로 재벌가에 대한 징벌적 상속세는 대폭 낮추거나 없애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일자리가 보장된 학교교원들은 간과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되 일자리 보전을 최우선적으로 하게끔 가르쳐야 한다.

‘정규직, 정년보장, 1인당 GDP 이상을 버는 이’들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노조가입을 불허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 임시계약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권익이 신장된다. 더구나 일자리까지 파괴하는 노동쟁의는 처벌되어야 고용을 통한 경제적 삶은 지속된다.

며칠 전에도 신임 민노총 위원장이 당선 일성으로 내년 11월 총파업을 경고하였다. 코로나 불경기에서 벗어나려면 수년이 걸릴 테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관행이다.

다음세대의 일자리도 보호하는 관행, 더 나은 고용을 위한 노조원의 만족지연이 요구되며, 학교교육은 이를 가르쳐야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다음으로 학교교육과 국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개인의 일생이 사회의 직업생활에 크게 좌우되고, 그 기간에 직업생활은 국가의 정책과 제도 및 문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사람은 가족성원, 일상적 교양인, 경제적 직업인, 정치적 시민 등의 다중적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직업생활은 실업이 닥치기 전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듯이, 전체 국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국가의 정책과 제도의 변화도 임계점을 넘기 전까지는 알아채기 어렵다.

국가의 코로나 대응책(백신 확보 등)이나 산업정책, 부동산 정책이 개인의 삶의 계획과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본다.

국민들이 백신을 제때에 맞지 못하면 해외로 나가 사업, 공부, 여행하는 것 등이 어려워진다.

평생 일해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는 부동산정책이라면 개인은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좌절한다.

공무원, 공사와 공단, 사회적 기업 등에서 고용을 늘리면 그만큼 민간 기업은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은 안정 희구의 고시 낭인이 되거나 심지어 직장을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 있다.

그만큼 국가의 이념과 체제, 가까이는 정책과 제도가 우리 삶의 성패와 행불을 좌우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60세 초입에 들어선 세대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이 태어날 당시 나라는 세계 최빈국 농업국이었고, 중등학교 때에는 고속도로가 놓이고 포항제철소가 들어서는 산업화 시기였으며, 대학에서는 정보화가 막 시작되었고,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는 지식정보화와 마이카 시대를, 오늘날에는 지능정보화 사회를 지나는 중이다.

1인당 GDP도 100불에서 3만불로 늘어나 세계적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강의 기적’을 칭송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헬북조선’은 몰라도 ‘헬조선’은 또 무엇인가?

5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라가 발전한 덕분에 우리세대는 더 이상 굶지도 않았고, 덕분에 우리세대는 거의 모두 ‘출세’했다.

Robert A. Dahl(1915~2014)이 말한 민주주의의 경제적 토대는 1인당 GDP가 4천~7천 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진 시기는 독재라는 비판도 있지만 자유민주정의 물적 토대를 갖추기 위한 권위주의적 통치시대였다.

1987년 무렵 드디어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임계점을 넘었고 헌법을 개정하여 새출발하였다.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명백히 틀렸다. 이미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이 예증해주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의 자본주의가 실현해보였다.

존경하는 김진홍 목사님의 말씀처럼 A. Smith의 책 <국부론>(1776)을 따른 나라는 흥했고, K. Marx의 책 <자본론>(1867)을 따른 나라들은 망했다.

나라가 어떤 이념과 체제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 국민들의 흥망성쇠가 정해진다. 흥하는 쪽의 이념과 체제를 선택하면 모든 국민들은 사회적 상향이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그런 나라로 이민가거나 심지어 그 나라에 불법체류도 서슴지 않는다. 유럽에 몰려든 난민,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를 말해주지 않는가?

자유민주정과 자유시장이라는 이념과 체제가 국민과 심지어 외국인들의 꿈(Dream)을 실현시켜주기 때문이다.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성패와 행불의 영향력을 되새기며 학교교육이 할 일을 되새겨보자.

첫째, 통치자들은 국민들에게 국가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인류가 희구하는 문명발전방향과 그 나라의 이념과 체제가 맞는다면 이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무찌르자 공산당’은 공산화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민주정의 이념 무장이었고, ‘잘 살아보세’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한 비전 제시였다.

우리에게 위협이지만 ‘중국몽(夢)과 일대일로’는 중국민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들이 자긍심과 희망을 갖고 일하고 해외에 나가서도 어깨를 펴도록 해주는 것이 국가 통치자들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정치적 과잉독재에서 과잉민주화로, 경제적 과잉성장에서 과잉분배로, 사회문화적 과잉획일화에서 과잉다원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균형 있게 성숙시키려는 비전 제시가 절실하다. 학교교육도 이런 방향으로 다음세대를 교육해야 한다.

둘째, 학교교육은 자유롭고 자주 독립적인 개인의 창의를 북돋우는데 애써야 한다.

국민에게 권리만 아니라 의무도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주길’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에 나타나 있다.

자유민주정은 자유롭고 자주독립적인 개인의 창의로 발전한다. ‘내 삶을 책임져 주는 국가’라는 달콤한 속삭임을 자유롭고 자주독립적인 국민은 ‘No thanks’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는 틀렸고, 자유민주공화국에서는 ‘대통령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셋째, 학교교육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정신을 되새기고 왜곡된 한국근현대사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

남 탓할 것이 아니라, 조선이 안으로 망하고 대한제국이 밖으로 망한 2중의 패망으로 일제 식민지가 된 뼈아픈 우리 역사를 다음세대에게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통곡의 벽’에서 되새김질 하듯이 망국의 이유와 원인을 다음세대가 가슴 깊이 새기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자유민주정, 자유시장경제, 유엔이 낳은 나라, 반공과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의 건국정신도 거듭 되새김질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언제 해방되었고 언제 광복(독립, 건국)되었는지도 분간 못하는 국민이 80%가 넘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번영과 성공을 가져온 이념과 체제를 지켜갈 힘을 잃고 국민들을 방황하게 만든다.

인류가 희구하는 문명발전에 합당한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다른 사상으로 흔들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매우 늦었지만 학교교육을 통해 헌법과 건국정신, 국제관계와 국제정세의 엄정함, 한국근현대사, 좌우 세계관의 분별, 남북 실상의 대조, 호국의 성지 순례체험, 지향하는 국가사회상 등을 가르쳐 국민국가의 국민형성을 해야 할 때이다.

이는 그 교육목표와 내용을 체계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기초 기본 생활 교양 교육에 이은 심화 특수 전문 직업 교육은 모두 ‘개인’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유익한 것이다.

개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국민국가에서 국민을 형성하는 교육에는 부족하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