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몇 개의 사과를 언급한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손댔던 금단의 열매(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는 다른 명칭이 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 뉴턴이 본 만유인력의 사과, 세잔이 그렸던 인상파의 사과 등이 있다. 여기에 스위스의 독립과 연관된, 빌헬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놓고 화살로 맞혔던 사과가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눈에 익은 사과를 꼽는다면 한 쪽이 뚝 떼어진 먹다 만 사과로 대변되는 애플사의 로고가 아닐까 싶다. 사과폰을 원하고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그 로고의 연유를 알진 못할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난공불락이라며 개발한 ‘에니그마’를 통해서 생성된 암호를 해독하는 일은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암호해독 작전의 최전선에 섰던 젊은 천재의 이름은 앨런 튜링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너무 빨리 태어난 불운한 천재는 당시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한 입 베어물고, 그렇게 삶과 이별했던 것이다.

튜링이 절망을 대변한 한 사과를 탄생시켰다면 희망을 말하는 사과도 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그가 남긴 저 한 문장을 기억하는 이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어쩌면 한편으로는 매우 관념적으로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내일과 세상의 종말이라는 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성이 부족하다.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오늘을 열심히 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맥락은 같다. 

2020년은 그 언제보다도 가까이 온 종말을 곱씹어보게 되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그 어느 때보다 내 곁에 가까이 있었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무기력이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심어야할 사과나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사용할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올해의 시간을 내 나이에 더하지 않겠다는 말풍선을 단 캐리커처가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2020년의 가장 끝자락에서 기다려왔던 반가운 백신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설왕설래,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누군가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말들만 하는 것이 소음처럼 들린다. 충분한 악의를 품고 퍼져나가는 가짜 뉴스도 많은 듯하다.

여기에 나는 어떤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단지 내가 생각하는 한 가장 논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한 설명문을 링크한다. 강경충 님의 페이스북 글이다.(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222003002792625&id=100049487807058)

극에 달한 우울감의 끝에서 스피노자가 의미했던 나무 열매의 향을 맡은 듯한 느낌이 든다. 2021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새롭고 싱싱한 사과나무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


● 이정은의 크로스오버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