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 "엄마, 전 절대 중국 안 가요!"...예상치 못한 첫 번째 고비
[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 "엄마, 전 절대 중국 안 가요!"...예상치 못한 첫 번째 고비
  •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 승인 2021.01.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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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숙 보건교사의 재외한국학교 이야기②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에듀인뉴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의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한민국 교사 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를 보건, 초등, 중등교사 순으로 소개한다. 첫 순서는 10년 간호장교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교직 생활 4년 차에 재외한국학교에 도전한 최미숙 보건교사의 이야기다.

북경 경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자금성.(사진=최미숙 보건교사)
북경 경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자금성.(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원서 마감 일주일 전, 우연히 재외 한국학교 초빙교사 선발 공고문과 마주한 순간, 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지원을 결심했다.

그 해, 재외 한국학교 보건교사 초빙 공고는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두 곳이었다. 선택의 두 갈래 길에 선 나는, 한국에서 비행시간이 한 시간 남짓한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로 지원을 결정했다.

가능하면 한국과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여러 상황에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정에는 한국에 남아 계실 연로한 친정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공고문을 본 후 지원 여부와 지원학교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근길 차 안, 나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중국에서 근무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하면 기뻐할 가족들이 떠올라 정체되는 도로에서도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여보~ 중국 대련이라고 들어봤어?


"여보~ 우리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 지난번에 말했던 재외 한국학교 보건교사 초빙 공고가 두 곳이 동시에 나왔어! 중국 대련이라고 들어봤어? 한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밖에 안돼. 너무 잘 됐지? 우리 가족 함께 넓은 중국 땅에서 살아보는 거야! 정말 기대되지 않아? 안녕이 중국어로 뭐였더라? 그래! 그래! 니하~오!!!"

난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기쁨과 이 소식을 반가워할 가족들의 반응을 예상하며 마치 빅뉴스를 전하듯 상기된 얼굴과 큰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식탁에서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나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남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 그래? 공고가 났어? 너무 갑작스럽다. 보건교사 채용 공고는 잘 안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여보~ 나 근무지 옮긴지 6개월 밖에 안됐잖아. 동반 휴직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싫어할 것 같아. 이제 업무 파악 끝나고 적응도 해서 일 좀 할 만한데. 만약에 당신 합격하면 국장님께는 어떻게 말하지?"

순간, 저녁 식사 시간 가족 식탁의 분위기는 물이 100도까지 끓어올랐다가 급속 동결되듯 숨 막히게 차가워졌다.

'그래 남편도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있고 나름의 입장이 있을 텐데. 성급하게 내 입장만 내세웠구나'라는 생각이 그제야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여보~ 내가 너무 성급했네. 아직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이 잔뜩 찌푸린 얼굴과 곧 울음이 터질 듯 한 표정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린다.


엄마! 전 절대 중국 안 가요!


"엄마! 전 절대 중국 안 가요!"

나의 재외 한국학교 지원 결정에 격렬히 반기를 든 건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었다.

"전 한국에 남을래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면 되니깐,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중국 가세요. 전 중국 절대 안 가요!"

또래보다 성장과 발달이 빨랐던 아들은 그 당시 전두엽이 리모델링을 시작한 사춘기 초기 징후가 엿보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아들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매사가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년 초등학교 1학기 상담 기간, 담임 선생님들이 아들에 대해 한목소리로 하셨던 말씀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학급에서 본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했고 무언가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기까지 구체적인 이유와 설명이 필요했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나의 보건교사 임용을 위한 수험 생활 기간과 친정아버지의 2년 가까이 되는 투병 생활을 함께 이겨내느라 해외여행은 신혼여행 외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고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전혀 없는 아들에게 해외 살이는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재외 한국학교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쏟아낸 말들이 아이에겐 두려움이라는 폭탄으로 변해 귓속에 닿는 순간 펑펑 터지며 아이를 힘들게 한 것이었다.

중국 칭하이성 소금호수 차카염호에서 남매.(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중국 칭하이성 소금호수 차카염호에서 남매.(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엄마, 중국은 어떤 나라예요?


그 모든 상황을 큰 눈을 깜박이며 보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딸이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춰주었다.

“엄마~ 중국은 어떤 나라예요? 난 중국 가고 싶어요. 다른 나라에서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비행기 타고 가는 거죠? 신난다~!!!”

유일하게 나의 지원에 찬성을 해준 건 당시 10살된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겁이 없었으며 그런 이유로 자주 다치고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그런 딸에게 엄마의 재외 한국학교 도전은 호기심을 끌어내기 충분한 10살 인생 최대 사건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이가 있으니 합격 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원에 대한 나의 결심은 더 굳건해졌다.

어쩌면 그때의 난, 무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불안감에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

연로하고 편찮으신 부모님, 남편의 직장에서의 위치와 입장, 아들의 절대적인 반대, 그 모든 걸 고려하고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 무모함은 늘 나의 인생에서 도전과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왼쪽 상단) 첫 중국 가족여행, 내몽고에서 쏟아지는 별과 함께, (왼쪽 하단) 실크로드 여행, 둔황 명사산에서, (우측) 백두산 북파, 천지에서.(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왼쪽 상단) 첫 중국 가족여행, 내몽고에서 쏟아지는 별과 함께, (왼쪽 하단) 실크로드 여행, 둔황 명사산에서, (우측) 백두산 북파, 천지에서.(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울리는 마지막 종소리에/ 무서워도 따뜻했던 선생님의 말씀도/ 무슨 일이든 함께했던 친구들의 장난도/ 눈물 젖은 마지막 인사도//

뒤돌아 보면 추억이 될 모든 것들/ 여기 두고 갑니다/ 지금의 슬픔은 희망이 되고/ 바람은 또 꿈이 되고/ 지금의 믿음이 지켜줄 테니까/ 오늘의 마지막보다/ 내일이 아름답도록//

2020년 1월 5일 대련한국국제학교 강당에 울려 퍼졌던 졸업식 축가 노래 ‘내일이 아름답도록’의 가사 일부이다.

감사하게도 교직원 합창단에 속한 나와 초등 어린이 합창단에 속한 6학년 딸은 졸업식 축가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같은 날 중학교 2학년 종업식을 한 아들은 그날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중국이라는 넓은 세상을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격렬히 중국 가기를 반대했던 아들은 오늘도 중국에 있는 친구들과 위챗(중국 모바일 메신저)으로 화상 통화로 안부를 묻고 중국어 선생님과 중국어로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

남편에겐 동반 휴직 동안 한국에서는 하지 않던 집안일을 하고 가족을 위한 아침,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들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귀국 후에도 나와 자녀 교육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3년 동안 자녀들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며 남매들의 성장과 학교생활을 오롯이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 뜻 깊은 경험이었다.

가족 해외여행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우리는 3년 동안 중국 곳곳을 함께 여행하며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특히 백두산과 광개토대왕릉비를 비롯한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떠났던 역사여행은 험난하고 스펙터클 했지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재외 한국학교 도전을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토록 값진 대륙의 추억을 안겨준 것의 시작은 어쩌면 무모했을지 모를 나의 거침없는 도전이었다는 것을...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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