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餘命) 19세] "죽음염려증 아닌 죽음망각증을 조심하라"...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
[여명(餘命) 19세] "죽음염려증 아닌 죽음망각증을 조심하라"...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
  •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 승인 2021.01.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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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평균수명이라는 용어 대신 '기대수명' 혹은 '기대여명'이라는 용어 사용이 늘고 있다. 여명은 수명이 다하는 날을 기점으로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를 역산하는 용어로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철학에 더 닿아 있다. 남자의 평균수명 80세를 기준으로 하면 나의 여명은 올해 19세다. ‘여명(餘命) 19세’를 맞은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와 함께 소소한 일상사를 통해 회고형 수명 나이가 아닌, 미래 준비형 '여명' 나이를 염두에 두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 주위에 짐이 적게 되는 삶을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학급경영연구소 소장으로 광주교대 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대한교육법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실력의 배신, 최고의 교수법 외 10여권의 책과 100여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500여편의 칼럼과 500 여 회의 각종 강연에 나섰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학급경영연구소 소장으로 광주교대 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대한교육법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실력의 배신, 최고의 교수법 외 10여권의 책과 100여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500여 편의 칼럼과 500여 회의 각종 강연에 나섰다.

신년 초에 우연히 연대 신학대학원 종교철학과 정재현 교수의 강연을 통해 「죽음의 에티켓」이라는 책을 만났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많다.


.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게 하라.

. 몸은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은 반대로 가고 있다.

. 어쩌면 나는 모든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게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보다는 일찍 죽게 될 것이다.


어정쩡하게 살다가는 어느 순간 죽음을 ‘당하게’ 된다. 당하지 않으려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대비해야 한다.

책 '죽음의 에티켓' 표지.(롤란트 슐츠 저, 스노우폭스북스, 2019)
책 '죽음의 에티켓' 표지.(롤란트 슐츠 저, 스노우폭스북스, 2019)

“임종의 깨달음을 앞당겨 내 삶에 새긴다면 이후의 삶은 덤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슐츠가 한 말들을 정말 모르고 있어서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일까? 혹시 후회는 짧고 실행보다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죽기 전 후회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하여 후회하고 포기하는 것이 죽음을 대비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농담을 하나 하자면 어려서 교회 다니던 시절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과 싸우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마음껏 신나게 평생을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그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목사님께서 알면서도 그리 살면 회개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답을 해주었다.

그때, 차라리 모르고 살 걸 미리 알아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죽기 전의 후회와 관련하여 하나 걱정되는 것은 만일 그때의 후회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크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만일 후회가 그렇게 크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니라면 굳이 힘들게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살다가 후회 좀 하고 스러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앞당겨 죽음을 두려워하고 대비하며 고민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죽음을 당하기도 전에 두려워하며 고민하게 되었을까?


“인간은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걸 부인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체인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이성'이라는 기능이 출현하고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정재현 교수의 강연 “죽음의 에티켓”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슐츠에 따르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이성’이라는 기능이 출현하고 진화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와 반대이다. 이성이라는 사유 기능을 갖지 않았더라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찌 다른 동물과 달리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진화과정에서 전두엽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서 별 생각을 다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모습, 저항하다가 결국은 초라하게 지고 마는 모습을 보며 죽음의 의미 나아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삶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한 때는 건강을 잃었을 때,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거나 나이 들어 건강이 행복 ‘최소량의 법칙’의 최소량에 해당할 때 일 것이다.

평소에도 건강에 유의하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최소량’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늘 건강을 염려하면 자칫 ‘건강염려증’에 걸릴 수 있다.

나는 젊어서부터 늘 죽음을 염두에 두며 살아왔다. 아주 진지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렇게 살아온 나의 삶과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주위 사람들의 삶이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삶의 종점에 가까울수록 자연은 우리가 삶과 쉽게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친구의 죽음 입니다”(Benjamin, 2004: 331).

슐츠도 사랑을 시작하여 설렘이 가득한 시점에서부터 헤어질 때를 대비하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슐츠의 이야기를 오해하여 죽음염려증에 걸리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슐츠가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죽음염려증이 아니라 죽음망각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우리가 그 망각에서 깨어나면 좀더 아름다운, 후회가 적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Franklin, Benjamin. The art of virtue (3rd ed.). 정혜정 역(2004). 덕의 기술. 서울: 21세기 북스.

Schulz, Roland(2018). So sterben wir: Unser Ende und was wir darüber wissen sollten. 노선정 역(2019). 죽음의 에티켓. 서울: 스노우 폭스북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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