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혼동하는 교사의 전문성① 

[에듀인뉴스] 제 관심 영역은 한국 사회에서 교사의 전문 직업성, 학력시장과 입시제도 등입니다. 이 요소들이 각기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앞으로 배민 칼럼을 통해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특히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교육학적으로 중요한 교직관 중 하나이면서도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가장 무심하게 지나쳐온 개념입니다. 아무래도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게 될 것 같네요.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 교사/ 치과 의사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 교사/ 치과 의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보면, 그 어떤 칼럼이나 기사도 감히 교사 집단을 스스로 비판하는 글은 좀체 찾기 힘들다. 대부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리고 현장을 모르는 교육정책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교사 자신을 격려하는 풍의 글들이 '오피니언' 란을 채운다. 

물론 교사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당연해서 나 역시 글로 적을 필요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과 별개로, 일의 방향성이나 의미에 대해 스스로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령 한국에서도 ‘12가지 인생의 법칙’으로 유명한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 교수, 조단 피터슨(Jordan Peterson)은 'Academia does more harm than good (to society)'라고 어느 미디어와의 대담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구 학계 전체에 대해 그렇게 ‘학자들은 사회에 득 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은 왜였을까?

학자들이 각자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는 일이 전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봤을 때 정말 잘하고 있는 일인지에  대한 자성(self-reflection)의 목소리였다. 

나 역시 한국사회 공교육의 틀 안에서 교사로 일하기는 하지만, 늘 흥미롭게 관찰하는 현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눈에는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비치는 교사들의 모습이다. 매우 시장 지향적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또 반대로 매우 반시장적으로 사고하는 모습. 

얼마전 교사가 아닌 일반인(?)들과 이런 내 생각을 함께 얘기한 적도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학원을 경영하는 분도 있어 더욱 흥미 있게 이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의 교사들이 학교에서 사교육 시장과 너무 경쟁하려고 드는 것 같다, 아니 학원 강사가 하고 있는 일과 뭐가 다르냐고 얘기했다. 단지 학교 교사들은 똑같은 일을 교육부나 교육청의 제도적 지원 속에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교사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일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도 아닌,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특권적 조건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학교 교사들에 대해 일종의 부러움과 반감이 묘하게 섞인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분명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듯 내게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많은 선물들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역사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설민석 이야기를 했다. 그는 설민석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내가 잘 모르는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설민석 이야기에는 웃고 넘어갔지만, 그가 한 다른 얘기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내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난 사실 그의 말에 공감하고 동의했다. 솔직히 내가 평소에 해왔던 생각이기도 했으니까.

단지 나는 공교육에 있는 학교 교사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섣불리 호응해줄 수 없었다. 물론 그도 내 호응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처=https://blog.naver.com/dungga333/221034123706)
(출처=https://blog.naver.com/dungga333/221034123706)

언제나 느끼지만 한국 사회는 너무나 관 주도, 국가 주도의 사회이다. 사교육 시장과 공교육 학교제도, 이 구분에 담겨있는 의미를 한국인이라면 모를리가 없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전자는 비공식적인, 후자는 공식적인 교육 공급 주체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 그러한 관 주도 한국 사회의 특징을 여실히 반영한다. 

가령 영국과 미국에서는 중고등학교 교육(secondary education)에 있어 사교육은 주로 사립학교(private schools)를 의미하고 공교육은 공립학교(state schools) 교육을 의미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 영국의 경우 사립학교는 대부분 기숙학교(boarding schools) 형태로 재정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는 사회적으로 그것이 비영리 기관이든 영리 기관이든, 기관(institution) 자체가 국가로부터의 독립되어 자체적으로 전통과 법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영미권 기관들의 역사(institutional history)에서도 확인된다.

기업에 대해서도 영미에서는 이를 법적 인격을 가지는 사회적 실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서처럼 주주가치론 혹은 사회적 기업 운운하며 주주들이 마음대로 주무르거나 사회가 기업운영에 노골적으로 영향을 미치려 하는 시도들은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영미권에서는 역사적으로 시장에서 자율적 인격체처럼 움직이는 법인 혹은 기관들이 사회의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다.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시장의 원리로 움직여지는 사교육이야말로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국가 교육 체계의 중요한 한 기둥이다. 

이 사교육의 기둥이 무너지면 이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국과 반대로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대학 교육 체계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국가 교육, 아니 사회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 영미권 교육의 모습이다. 

오후 10시, 대치동 학원가는 학원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이 학생들이 학원을 가는 것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학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공교육에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사진=https://blog.naver.com/yjland1/220671809099)
오후 10시, 대치동 학원가는 학원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이 학생들이 학원을 가는 것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학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공교육에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사진=https://blog.naver.com/yjland1/220671809099)

반면 한국사회는 어떤가?

영미적 관점에서 보면 사교육은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제도권 안에는 존재할 공간이 없다. 한국의 사립고등학교는 영미적 관점에서는 공립고등학교의 한 형태일 뿐이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수준의 사교육은 사설 학원들이 담당한다. 그리고 이들은 3불 정책이라는 전통적인 교육 정책 기조가 상징하듯, 교육청으로부터는 단속의 대상이자 교육부로부터는 교육문제의 주범으로 몰려왔다. 

이해할 수 있다. 영미권 사회와 대조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한국의 교육정책은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어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여줄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들 사교육은 한국사회에서 그림자처럼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다. 신기하게도 현실에서는 입시 정책등을 매체에서 다룰 때 사교육은 가장 영향력 있는 전문가적인 견해의 제공처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논한다는 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입제도는 지난 이십여년간 지속적으로 영미권 대학 입시제도의 그것을 계속적으로 비중을 늘려오며 차용해오고 있었다.

단지 그러한 영미권 제도 도입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던 것은 학부모의 항의와 사회적 공정성을 명분으로 한 국가 시험의 존재, 단적으로 얘기하면 정치적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정부의 존재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영미권 대학 입시체제를 더 받아들여 자율권을 행사하려는 대학과 영미권 교육의 이상을 따르는 교육학자들이 있었다. 

이 서로 상반된 두 집단은 지금껏 입시제도에 있어서 수시와 정시 비중을 놓고 갈등 중이다.

시장의 자율성과 기관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영미 사회 역사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채로, 반시장적이고 관주도적인 한국사회에 영미사회의 교육제도를 지금껏 열심히 이식해온 결과로 빚어진 당연한 갈등 양상이다.   

즉,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많이들 거론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사회는 사교육에 대한 시각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내 앞에서 설민석을 자신의 멘토라고 얘기하던 그 학원 강사가 정확히 내게 드러내 보여준 그대로다. 

즉 학생과 학부모로부터는 응원과 물질적 보답을 받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회로부터는 없어져야 할 필요악 혹은 쓰고 내다버리는 화장실 휴지 같은 존재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입시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들의 전문가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즉, 한국사회가 사교육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분열증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이정도면 참 기괴한 사회적 부조리이자 사회학적 연구주제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렇듯 사교육이 한국 교육의 모순을 보여주는 거울로 치부되는 현실의 이면에는, 학교 밖의 일반 사람들은 잘 알려고 하지 않는 혹은 알면서도 눈감는 더 기괴한 단면이 숨어 있다.

바로 학교 안의 교사들이 하는 일은 정확히 사교육의 학원 강사들이 하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학원 강사들을 닮으려 애쓰면서 ‘사교육을 이기는 학교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집단 최면을 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쯤 되면 한국 사회는 도대체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뭐가 원칙이고 뭐가 타협인지, 뭐가 이성이고 뭐가 감성인지, 뭐가 인문학이고 뭐가 과학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총체적 혼란의 사회임이 서서히 드러난다.

자기 정체성이 혼미한 사회의 모습, 그 본질적인 문제점은 교육에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철학 없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만은 철학 있는 교육이 가능하길 바라는 것도 무리일 수도 있겠다. 

☞ 2편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