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혼동하는 교사의 전문성②

[에듀인뉴스] 제 관심 영역은 한국 사회에서 교사의 전문 직업성, 학력시장과 입시제도 등입니다. 이 요소들이 각기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앞으로 배민 칼럼을 통해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특히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교육학적으로 중요한 교직관 중 하나이면서도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가장 무심하게 지나쳐온 개념입니다. 아무래도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게 될 것 같네요.

(사진=sbs 캡처)

성적 향상, 학생부 관리, 대입 전략 등 많은 교사들이 골머리 싸메는, 혹은 기꺼이 몸바쳐 일하는 이 업무들이 결국 학생을 대학 보내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대입(college entrance)이라고 하는 목표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은 또한 교육시장(educational market)의 독특한 한 형태인 학력시장(students market for college entrance)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즉 입시경쟁을 과열시키는 주범으로 낙인찍혀온 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육 수준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은 둘 사이에, 적어도 그 실질에 있어서는 그다지 다를 것이 없을 지도 모른다.

가령 학생부 관리의 중요성을 학교에서 교사가 강조하면 교육정상화이고, 같은 얘기를 학원에서 강사들이 컨설팅하면서 강조하면 교육비정상화인가? 둘 모두 깊숙이 시장의 원리로 움직여지고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자신이 물을 마시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 속을 헤엄치며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이 의식 있는 깨시민이라고 자신하는 듯한 많은 반시장적 마인드의 교사들은 학력시장의 존재를 현실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이를 극복해야할 장애물, 혹은 ‘참교육’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 정도로 인식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 대한 인성교육을 강조하면 저절로 참교육이 되는 건가? 이는 학원 강사들은 인성교육에 무관심할 거라는 우월감 깃든 환상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학력시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학교 교사들 사이에 꽤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실 이는 학교 교사들 뿐이 아닌 한국 사회 전체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시장의 역사가 극히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극히 반시장적인 정서가 강한 사회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인들이 시장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시장 안의 기업(대기업이든 1인 기업이든)과 그 시장의 운영 원리인 경쟁과 자유로운 선택의 불가분적 속성에 대한 흔한 오해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보통은 자신이 조선의 지배층 양반이거나 서양 중세의 교부 신학자 혹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을 탐욕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사회주의 지식인, 그도 아니면 이들에 의해 뇌가 세탁된 무뇌 대중이 아닌 이상, 인간은 시장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깨닫는다. 

이는 폴 새뮤엘슨이나 멘큐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새로이 발표된 사실도 아니고, 수천년전 나일강에 배 뛰우고 무역하던 이집트 상인들 그리고 에게 해 섬사이를 동네 골목처럼 드나들던 그리스 상인들, 그리고 지긋지긋하고 폐쇄적인 영주의 장원을 뛰쳐나와 도시로 숨어든 중세 서양인이나 역시 지긋지긋한 농촌 공동체 속의 답답하고 구속적인 삶을 뛰쳐나와 이촌향도의 대열에 몸을 던진 근현대 한국인들이 몸소 깨우친 인간 사회의 진리이다.

반시장적 마인드의 깨시민 교사들도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그들의 행동은 일관되지 않는다.  매우 반시장적으로 사고하면서 또 반대로 매우 시장 지향적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 즉, 그들의 생각은 학력시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리고 학력시장의 경쟁에 대해 우려스럽고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하는 모습은 오히려 학력시장의 경쟁을 수긍하고 오히려 너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되려 그 시장과 그 경쟁에서 거리를 두고 일하고자 하는 교사가 그들에게서 압박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학력시장에 대한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는 교사들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자신은 물을 마시며 살고 있는 물고기이긴 하지만 공기 속을 헤엄쳐야만이 진정한 물고기가 될 수 있다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과 같다. 현실을 왜곡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한국 교육의 실제 현실은 그들과 비슷한 반시장적 마인드의 교육 정책 이론가들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그 결과 학력시장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마찬가지인데, 학교라고 담을 둘러친 공간 안에서 일어나면 정상적인 교육 현상으로 간주하고, 그 담 밖에서 일어나면 비정상적인 교육현상으로 보게 되었다. 

어찌보면 한국 교육의 진실은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이다. 그 명분은 거창하게 ‘교육이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명분이라면 공교육을 학력시장에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기 보다는 학력시장이 공정하게 펼쳐지도록 제도를 만들었어야 했다. 더군다나 정작 한국의 많은 교사들은 안타깝게도 그런 (학력시장을 공교육으로부터 몰아내려는) 제도에 역행하는 듯이 보인다.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인가, 교사인가? 즉 공교육을 (사악한) 학력시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체험학습, 협력학습을 강조하고 과정 중심 평가의 원칙을 강조하는 정부일까, 아니면 그런 학력시장에서 원하는 대학에 가고자 준비하는 자신의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사교육 강사들과 경쟁하고자 하는 그들의 교사들일까? 

나는 이 지점에서 교사가 일단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력시장을 부정하는 듯한 정부의 교육정책도 문제긴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란 원래 그렇듯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속성을 가진다. 하지만, 최소한 학교 교사는 학력시장이 전개되고 있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육 속에서 자신의 본분이 사교육 강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불필요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성적 향상을 독려한다든지, 학생부 기재에 과다한 ‘마사지’를 한다든지, 입시 전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등이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행위라는 것은 모든 교사가 다 알고 있다. 문제는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행위와 학력시장에서 자신들의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위 사이의 경계선이 때로는 매우 모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자신이 공정한 평가자, 중립적인 관찰자, 객관적인 학습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자성의 시각 없이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 궤도 이탈하는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사의 철저한 자성을 힘들게 만드는 중요한 배경 요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사실상 집단주의적 정서 그리고 반시장적 정치경제 시각에 매몰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학교 교사들 스스로 자신의 일이 왜 사교육의 학원 강사와 달라야 하는지를 망각하기 쉽게 만드는 중요한 배경요인이기도 하다. 

애당초 한국 교육 문제는 결코 한국 사회의 특성과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다. 가령 입시제도 문제는 한국 사회 고용시장의 경직성과 집단주의적 문화가 태생적으로 만들어낸 문제이지 교육개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역사교사로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이상 절대로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없다. 학생들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진정으로 교사가 걱정한다면,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서있는지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관성적으로 주어진 사회의 시각과 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그 현실에 필요한 태도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일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이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 교사/ 치과 의사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