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공간 집이라는 고정된 형태가 결국 삶을 고립시켜

 

[에듀인뉴스] 우화(寓話)는 장르적으로 보면 서사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이 절충된 단순 형식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비교적 저차원적인 사리 분별을 위한 것이나 우리 삶에 알아두면 좋은 실용주의적인 것입니다. 같은 형식으로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도시와 환경, 그를 이루는 많은 건물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진솔한 물음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재택근무나 이동제한에 의해 집에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즉 그만큼 한 공간이 수용해야 하는 인원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간의 쾌적함을 갖기엔 우리가 사는 건물들은 너무 규격화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공간을 바꾸어야 한다. 


코로나 스트레스에 빠진 파리...잠 자기 위한 공간이던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라니  


해외 선진 사례로 파리가 소개되는 경우를 본적이 있다. 물론 하수 시설로 흑사병을 극복한 경우가 있었으나 이번 코로나와 같은 질병으로 인한 장기간 자가격리 앞에서 도시는 패닉에 빠졌다.

먼저 파리의 주택은 상당히 좁다. 1800년대 오스만 양식의 건물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고 이 건물들이 곧 도시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라 함부로 보수하거나 바꿀 수 없다. 따라서 기능에 따른 공간의 성격은 늘 고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주거 공간은 그저 주거 공간일 뿐이다. 방은 그저 방이고 거실은 그저 거실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평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이 얌전히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또 높은 월세 때문에 넓은 공간에서 살 수 없다. 아마 파리에서 유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파리는 애초에 집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집은 그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일 뿐 일을 하기에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쉬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프랑스인에게 자가격리가 주는 스트레스는 상상이상이었다.(출처=https://www.eyes-on-europe.eu/penser-le-confinement/)
프랑스인에게 자가격리가 주는 스트레스는 상상이상이었다.(출처=https://www.eyes-on-europe.eu/penser-le-confinement/)

평소 파리는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추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국에선 무용지물이 되었다. 도시 인프라를 이용하지 못하는 파리시민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실제로 학교에 자녀들을 등교하지 못하게 되자 학부모들은 시위를 통해 들고 일어났다. 이유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야 본인들이 돈을 벌 시간을 확보하며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또 아무리 컴퓨터로 교육을 한다 한들 음악이나 미술시간에 집에서 활동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 못하겠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처럼 파리는 고립된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의 융통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평소에 주거에 대한 개념이 복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이를 충족시키려면 넓은 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공부를 하려면 도서관에 가야하고, 식사를 제대로 하려면 식당에 가야하고, 수다를 떨려면 카페에 가야 한다. 

이 모든걸 집에서 하는 것을 이들의 삶에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러기에 자가격리는 그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고정된 공간의 형태가 결국 삶을 고립시키는 형태로 되돌아 온 것이다.

많은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넓은 집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백번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당장 집을 옮길 수도,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 

이 시점에서 주택의 양적 공급이 많아진다 한들 그 공간이 나의 삶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더구나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공간에 적용시키기 어렵다면 양적 지원은 오히려 낭비가 된다.

어디서든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집을 단순한 부동산 가격으로만 치부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그 공간에 거주할 가족들의 삶의 형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몇몇 정치인이나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은 그렇게 낮지 않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관찰하고 그 삶을 살기 위한 최적의 공간을 찾고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는 결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공간의 소유에 관한 욕구를 규제해서는 안된다. 스스로의 공간을 찾아 나서는 것. 코로나 시국 가운데서도 도시가 살아나려면 공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요구를 지지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작은 스케일부터


마우스는 손에 맞는 형태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매일 드나드는 문의 문고리에는 관심이 없다. 컴퓨터를 배치 하기 위한 데스크 배치는 유튜브로 매일 검색하면서 내 몸을 누일 침대의 배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것이 공간에 대한 관심을 두는 우리의 현 주소다.

지금 당장 집을 바꾸기 어렵다면 가구부터 바꾸어보자. 좀 더 가볍고 이동하기가 쉬우며 접이식으로 되어 공간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가구면 더 좋다. 싸게 살 수 있으면 좋지만 만약 나에게 맞는 가구가 없다면 디자이너와 함께 가구를 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작은 집이지만 가구 재배치나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변한다. 가능성은 비우는 것에서 시작한다.(출처=https://www.appartement-construction.com)
작은 집이지만 가구 재배치나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변한다. 가능성은 비우는 것에서 시작한다.(출처=https://www.appartement-construction.com)

나의 삶의 형태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건축은 공간 가변성을 고려한 설계가 많이 나올 것이다. 아직도 지역과 브랜드로 서열을 매기며 나의 삶과 상관없는 공간에 들어가기를 바랄 것인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관심이 없다면 앞으로 나의 힘으로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삶을 보낼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질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공간에 대한 규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공간을 바꾸어야 한다. 그 시작은 내가 주택을 소유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가구부터 재배치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구를 재배치 하기가 어렵다면 집안 정리부터 시작해보자.

언제나 큰 변화의 시작은 작은 것에서 이루어진다. 변화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도시설계사,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건축학 전공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Université Grenoble Alpes에서 도시학 석사졸업, 파리고등건축학교 Ecole spéciale d’architecture (그랑제꼴)에서 만장일치 합격과 félicitation으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파리 건축설계회사 AREP Group에서 실무 후 현재 파리 건축사무소 Ateilier Patrick Coda에서 근무 중이며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건물과 도시, 사람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우리의 삶의 배경이 되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유용하게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