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대한민국의 속도는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빨리빨리’로 형용되는 대한민국은 그만큼 빠른 성장을 기록하면서 국민의 살림살이도 나아졌지만, 반대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 또한 점차 늘어나면서 외국에서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감에 떠나는 외국에서의 향수병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에듀인뉴스>는 성공적인 외국에서의 삶을 위해 최근 멕시코에서 귀국한 선우림 배우 가족으로부터 이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

선우림 배우 가족, 선우림은 배우이자 MC로 활동하며 한국구세군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한국국기원 홍보대사 미스아시아퍼시픽 수상 & 홍보대사였으며 중국드라마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영화, 광고 등 다수 출연했다. 또 MEXICO 누에보리온주립대 한글학교교사, 라오스 한류페스티벌 심사위원이다. 그의 남편 한준희는 MEXICO, LAOS, JAPAN 현지 기업에 근무하면서 많은 외국 생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선우림 배우 가족, 선우림은 배우이자 MC로 한국구세군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한국국기원 홍보대사 미스아시아퍼시픽 수상 & 홍보대사였으며 중국드라마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영화, 광고 등 다수 출연했다. (전)멕시코 누에보리온주립대 한글학당 교사이며 라오스 한류페스티벌 심사위원이다. 그의 남편 한준희는 MEXICO, LAOS, JAPAN 현지 기업에 근무하면서 많은 외국 생활 노하우를 갖고 있다.

“Hello, Nihao, Ohaio, Sabaidee, Hola, 안녕하세요! 외국 살며 배운 언어가 몇 가지인지, 적어도 치매는 안 걸리겠다! 그러나 막상 말하려하면, 전혀~ 기억나지 않다가 갑자기 아무 말이나 방언처럼 나올 때, 나 자신도 놀라 수습 안 되는 멋쩍은 외국어와 상황들~ 황당? 그래도 재밌어, 긴장돼, 새로워~ come on~^^”

얼마 전 외국 생활 마침표를 결정하고 가족들과 함께 몸만 귀국한지 한 달, 귀국 짐은 아직도 태평양 바다를 건너오느라 텅 빈 집에서 야영하듯 불편한 게 익숙하다.

자가격리 끝나자마자 일주일 만에 집을 구해 청소를 마치고, 최소의 도구만으로 여행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지내고 있다.

삶의 여건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오랜만에 일 관련 미팅을 했는데, 매너 없는 태도와 사생활에 대한 선을 넘는 언행에 종일 불쾌했다.

잘 때쯤 정리해보니 그들은 원래 빈번히 그랬는데 그동안 내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예전엔 공기처럼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 건 나라는 걸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목표 지향적이라 그런지 부지런하고 직선적이지만 보기와 달리 정(情)이 많다는 걸 깜박했다.

‘외국 감성과 달라~ 여긴 한국이라구!’

당연히 알던 내 고향이지만 적응이 필요했다.

한두 달 전까진 모르는 사람조차 미소 지으며 “올라(holla)~” 하고 서로 인사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하던 내가, 지금은 생존과 발전에 대한 욕구가 가득한 대한민국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말수가 적어지고 당황도 했다.

그렇게 각오하고 돌아왔건만 말이다.

안정이 되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마음의 소리에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됐다. 돌아오길 잘한 것인가? 외국 생활처럼 낯선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전혀 상반된 상황을 마주하며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노트북을 열었다. 그간 국제 이사며, 생존을 위한 일상을 사느라 훅 지나간 시간들을 돌려 본다.

(사진=선우림)
멕시코 Zacatecas(사카떼카스) 지역 공원의 야자나무, 사카따카스 지역은 은의 생산지로 유명하다.(사진=선우림)

나는 결혼 후 공식적으로는 두 번의 해외 이민 생활을 했고, 결혼 전에는 엔터테이너로서 수 없이 외국을 다니며 일을 했다.

엔지니어인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우리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적령기를 조금 넘겨 결혼했고, 또 함께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왜 이민 생활을 했는가? 결혼 전과 후,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동기가 다르고, 아마도 세 번째로 간다면 또 다를 것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한층 성숙한 동기를 갖게 되었다.

첫 동기는 단순했다. 익숙함, 싫은 것, 피하고 싶은 것을 떠나 새로운 시작, 더 나은 삶과 목적을 동경했다.

직관적 돌파형인 나는 닥친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은 좋았지만, 경쟁적으로 사는 현실의 피곤함에 슬쩍 도피하고픈 마음과 새로운 세계의 동경으로 오롯이 새 출발을 기대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전문 기술직이면서 준비하는 성향의 그는, 배우고 도전하여 해 내고픈 남자만의 도전본능으로 다시 해외 근무에 도전했다. 그 점은 나보다 현실적이라 좋았다.

또 우리는 평범함을 넘어, 마음과 삶의 폭을 넓히는 경험 부자가 되고 싶었다.

성향과 분야가 전혀 반대인 우리 부부의 한 가지 공통점이 바로 해외 취업 생활을 해본 것. 그 경험은 청춘의 밑바닥을 깔아준 특별한 자양분이 되었고, 활력과 경쟁력이 되었다.

난 세계 미인대회 출전을 계기로 홍보대사가 되었고, 전 세계 미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는 여러 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근간이 된 신통방통한 내 인생의 사건이다.

중국 등에서 드라마, 광고 등을 찍으며 나름의 외국 생활 개척에 뿌듯해하며 애정을 갖은 나, 일본에서 전문직으로 일하며 능통한 언어로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누릴 줄 아는 그이다.

하지만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 부부로서는 처음이라 아주 많이 난감한 상황이 많았다. 일 때문에 열혈단신 간 것과 이민으로 온 가족이 함께 간 것은 삶의 무게와 질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멕시코 Zacatecas(사카떼카스) 지역의 호텔 Quinta Real Zacatecas(퀸타 릴 사카테카스). 소 투우장을 개조한 유명한 고전호텔로 호텔방 앞에서 투우장을 바라보는 모습.(사진=선우림)
멕시코 Zacatecas(사카떼카스) 지역의 호텔 Quinta Real Zacatecas(퀸타 릴 사카테카스). 소 투우장을 개조한 유명한 고전호텔로 호텔방 앞에서 투우장을 바라보는 모습.(사진=선우림)

이민 생활의 고생과 보람을 추억하고 좋은 정보를 공유하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현재의 삶에 필요한 교훈을 적용해보고자 한다.

다음 편부터는 본격적인 해외 이민 실현 굳히기를 어떻게 했는지, 떠나기 위한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슬며시 공개하고자 한다.

한국을 떠나면 행복할까? 아시아? 아메리카? 기대하시라~

# 이 글은 선우림 배우의 남편, 한준희 씨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