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 두 번째 고비 "학교장 허락을 잊었다"
[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 두 번째 고비 "학교장 허락을 잊었다"
  •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 승인 2021.01.23 1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미숙 보건교사의 재외한국학교 이야기⑤

[에듀인뉴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의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한민국 교사 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를 보건, 초등, 중등교사 순으로 소개한다. 첫 순서는 10년 간호장교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교직 생활 4년 차에 재외한국학교에 도전한 최미숙 보건교사의 이야기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서류전형 지원서를 마지막 날 마감 1시간을 남기고 접수를 완료했다. 채용 공고를 지원 기한이 임박해 확인했다. 가족의 동의를 구하고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하느라 일주일을 숨 가쁘게 보낸 탓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큰 걱정이 꾸물꾸물 올라왔다. 나에겐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교장 선생님의 허락이었다.


"선생님~ 재외 한국학교 지원은 허락할 수 없어요"


보통 대부분 채용 시 1차 서류전형에 학교장추천서를 포함하여 지원서 제출을 요구한다. 그런데 대련 한국국제학교는 학교장추천서를 1차 서류전형 합격자들만 2차 면접에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을 확인하고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나의 저경력과 저스펙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불합격할 수도 있으니 굳이 알리지 말자고 혼자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정말 큰 실수를 저지른 상황이다. 인사와 관련된 문제인데 인사담당자와도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았다.

지원서류 접수를 끝내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계속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 꺼림칙했다. 마침 그날 교직원 회의가 있어 서둘러 회의실로 올라갔다. 교감 선생님께서 마지막 전달사항으로 회의를 마무리하셨다.

“마지막 전달사항입니다. 어느덧 학년 말이 다가왔습니다. 내년 복무에 변동이 있는 선생님께서는 다음 주까지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아차 싶은 마음이 들며 회의가 끝나고 바로 교감 선생님께 재외 한국학교 지원에 대해 말씀드렸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다행히 교감 선생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합격하길 바란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래도 지원하기 전에 먼저 알려주지 그랬냐며 아쉬움의 말씀도 남기셨다.

“교장 선생님께는 나에게 먼저 말하고 지원했다고 말씀드릴 테니 그리 알고 계세요.”

나 역시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교감 선생님의 격려와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잠시 후 울리는 인터폰 벨 소리, 교장 선생님의 호출이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문을 조심스레 열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해외 초빙교사 지원은 허락할 수가 없어요.”

중국 간쑤성 둔황 ‘명사산’.(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중국 간쑤성 둔황 ‘명사산’.(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인생은 늘 갑작스럽게 허들을 넘으라고 한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신가….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선생님, 그동안 우리 학교에서 초빙교사 지원 사례는 없었어요. 육아휴직처럼 법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하는 휴직과 초빙교사의 고용휴직은 달라요. 우리 재단은 고용휴직을 허락할 수 없어요.”

내가 사립학교 시험을 본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던 날이었다.

임용 준비 기간이 6개월로 짧았고 그 해에 서울시 공립 채용 인원이 매우 적어, 경기도와 서울 중 지원을 고민하고 있었다. 공립학교 채용 공고문을 한 자라도 빠뜨릴까 한 글자 한 글자 눈에 담으며 읽어 내려가던 중 내 눈동자가 멈춘 한 줄이 있었다.

‘사립학교 공립 위탁 채용 서울 00학교 보건 1명’

공립 시험에 위탁해 뽑는 사립 보건교사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1, 2차 임용시험은 공립 시험을 치르고 최종선발된 3명이 해당 학교에서 자체면접을 보는 형식의 채용방식이었다.

내가 군에서 전역을 결심한 계기가 아들이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사를 오갈 때 날아온 갑작스러운 전출 명령 때문이었다. 그것도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전출하는 전후방 교대가 아이들이 커갈수록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 면에서 사립학교는 퇴직까지 이동이 없다는 부분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학교 위치도 내 거주지와 아주 가까운 거리라 운명처럼 사립학교 공립 위탁 채용에 지원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 날이었다. 사립학교 소속이라 재단 이사회의 허락이 없으면 지원조차 못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교장 선생님의 불허가 떨어지는 순간 제대로 나의 의지와 생각도 말하지 못한 채 상기된 얼굴로 교장실을 빠져나왔다.

가족 설득과 지원서류 준비 등 일주일간의 노력이 수포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벼랑 끝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백두산 북파 ‘장백폭포’.(사진=최미숙 보건교사)
백두산 북파 ‘장백폭포’.(사진=최미숙 보건교사)

퇴근 후 남편을 부여잡고 한참을 하소연했다.

”여보~ 너무 상심하지마. 교장 선생님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하셨을 거야. 내일 다시 면담 요청해서 먼저 의논 못 한 부분 사과부터 드리고 차분히 너의 생각을 말씀드려봐.“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불행인지 다행인지 1차 서류는 이미 제출한 상태지만 합격 후 2차에 학교장추천서가 없으면 면접을 볼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학교장추천서의 의미가 재외 한국학교 지원에 관한 학교장 사전 동의 및 허락의 의미라는 것이다.

1차 합격 발표까지 시간이 있으니 다시 한번 설득을, 아니 부탁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음날 용기를 내어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을 요청하였다.

사실 전날 예상치 못한 교장 선생님의 반응에 당황하여 나의 지원 동기와 깊은 속내를 말씀드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해외 학교 지원 이유와 나의 상황과 의지 등을 미리 글로 적어 준비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정에 가려 나의 뜻을 전달하지 못할까 싶어 잠을 설치며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갔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간절함이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가족과 함께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과 자녀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지원의 제일 큰 이유였다.

언제든 아이들이 원할 때 해외 유학을 보내줄 수 있는 넉넉한 부모가 아니었기에 재외 한국학교 근무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성장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도 평생을 스스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삶을 살아왔고 그런 인생을 더 빛내 줄 도전의 의미였다. 밤새 곱씹고 곱씹을수록 재외 한국학교 지원의 마음은 더 절실해졌다.

다음날, 잠을 설쳐 푸석한 얼굴로 초조하게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을 기다렸다. 때가 되어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교장 선생님이 어제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모습으로 맞아주신다.

나는 먼저, 경솔하게 내 마음대로 지원을 해버렸다는 반성과 미리 말씀드리고 상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차분히 전했다. 그리고 준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내가 왜 해외 학교에 가야 하는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 부탁이 더 맞는 표현이었다.

후회가 없을 만큼 간절하게 나의 의사를 모두 전달하였다. 교장 선생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들이 뒤섞이고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 산해관 고성 동문 만리장성 ‘천하제일관’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중국 산해관 고성 동문 만리장성 ‘천하제일관’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이윽고 꺼내신 말씀은 오늘 하루 다시 생각해 보고 내일 답을 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초빙교사 지원은 우리 학교 첫 사례였고 재단 안에서의 협의가 필요했을 것이었다.

드디어 다음날,

“보건 선생님, 일단 1차 결과 보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아~ 며칠 동안의 긴장과 걱정이 녹아내렸다.

‘일단 희망의 불씨는 살아난 거야!’

그리고 얼마 후 1차 합격 발표날이 되었다. 이메일에 접속하고 떨리는 검지로 마우스를 조심스럽게 두 번 두드렸다. 메일 본문 화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내 눈은 커졌고 세상의 모든 소리는 음 소거되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만 아득히 들려왔다.

‘합격이었다.’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eduin@eduinnews.co.kr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Eduin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