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의 우리 교육 더 낫게 만들기] 6. 국민형성교육의 목표와 내용③

[에듀인뉴스] 교육은 희망이고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교육 혁신안이 등장했음에도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학자, 기업인, 일반인, 실업자 등 각자 처지에 따라 교육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다. <에듀인뉴스>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탐구하고, 국가의 거시적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의 미시적 교실 수업을 아울러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홍후조 교수(교육과정학자)의 입을 빌어 ▲교육 기본제도 ▲교원 양성과 운용 ▲이공계 인력 양성 ▲교과서 문제 ▲진학계 고교 문제 ▲온라인 수업 ▲국민형성교육 등 분야 별로 문제의식(배경), 현황과 문제점, 원인과 이유, 개선 방향(가치 추구), 구체적 방안, 후속지원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계획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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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내부 문제들은 역사와 국제 정세 속에 놓고 보면 찻잔 속의 태풍인 경우가 많다.

오늘날 전 세계 국민들은 실제든 가상이든 세계화에 노출되어 국제관계나 국제정세의 영향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통상, 생태환경, 빈곤퇴치, 전염병 방역 등에서 국제간 협력이 요구되며, 이에 따라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면에 국가 간 힘의 관계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국이 중국에게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라고 강제하기 어렵고, 멕시코가 미국에 국경장벽 철거를 요청하기는 역부족인 것이 국가 간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내문제에 휩싸여 국제관계나 국제정세를 살펴보는데 익숙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동안 나라는 소수 위정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국가는 국민 모두의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국민들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국제관계나 국제정세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무역, 유학, 여행 등은 국제적으로 하면서 생각은 국내에 매몰되기 쉽다. 일례로 TV 뉴스는 국제정세에 대한 철저한 분석보다 덜 중요한 국내뉴스의 비중이 높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빚어지는 국제분쟁문제들은 국제관계나 국제정세에 비추어서 판단될 필요가 있다.

국내정치와 달리 힘이 정의인 국제정치나 국제관계에는 시대가 변해도 엄연히 작용하는 몇 가지 원리가 있다고 한다. 이는 기하의 공리만큼이나 물리의 작용반작용 법칙만큼이나 변함없이 참이다.

학교교육을 통해 국민들이 몇 가지만 익혀도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원리나 법칙은 다음과 같다(양일국, 2020).

(이미지=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250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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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국경을 접한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적’이며 경쟁상대다.

역사상 전쟁의 90%는 이웃국가 사이에 일어났고, 이웃국가가 강해지기를 바라는 국가는 없다.

우리도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수없는 외침을 당했다. 우리와 이념과 체제가 같은 일본은 우방인 미국의 중재로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이지만, 북한, 중공으로부터의 나라의 생존 위협은 늘 상존해있다.

주변국들은 내심 서로 상대국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들에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스웨덴은 20세기 전반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전쟁특수를 밑천으로 복지국가를 이루었고, 일본은 우리나라의 6.25 전쟁특수로 전후부흥을 보탰으며, 우리나라도 베트남전 참전으로 미국 덕을 많이 보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더구나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는 숙명적이다. 아랍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폴란드나 헝가리의 운명이 그렇다.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의 표현대로 동아시아 ‘골목’에도 힘센 ‘깡패’들이 득시글거린다.

핵무장한 북한은 남조선 해방을 줄기차게 외치고, 공산주의를 넓히려는 중·러의 뒷배가 든든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한미동맹, 한미일 삼각동맹을 해왔으나 그 뒷배가 허약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수천년간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시진핑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문대통령이 ‘중국몽’을 같이 꾸겠다는 것은 악몽이지 길몽은 아닌 듯하다.

전세계 군사력 순위 표.(출처=https://blog.naver.com/pajlyoon/221867415172)
전세계 군사력 순위 표.(출처=https://blog.naver.com/pajlyoon/221867415172)

둘째, 국가 일의 우선순위는 생존, 국력, 번영, 위신 순이다.

북한은 생존과 국력결집에 힘썼고, 대한민국은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위신에 우선하였으나, 오늘날의 북핵 위협과 미중패권기에 생존과 국력을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국에 강병을 더하고, 국력을 결집해 강대국들과 협력하는 외교력을 더 길러야 한다.

‘좋은 나라를 빼앗긴 것은 나쁜 외세 탓’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일제에 나라를 잃은 것은 대내외정세에 너무 무지몽매했기 때문이고, 최약소국이었지만 6.25공산화 침략에서 나라를 지켜낸 것은 엄청난 업적이었다.

내부 분열로 국력이 쇠약해지거나 대외적 신뢰를 잃어 주변에 적대국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나, 국방은 미·일의 지원이나 중국,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나라생존에 대단히 위험하다.

국가의 생존에는 인기나 평판, 자존심이나 체면보다 실익이 더 중요하다.

아베 수상이 골프장에서 뒤로 넘어지면서도 왜 트럼프 대통령을 뒤따랐을까? 비웃지 말자. 체면보다 국익을 우선순위에 둔 까닭이다.

필리핀은 미군철수를 부르짖었고 소원을 이루었으나 여우 피하다 호랑이 만난 격으로 중국이 곧바로 필리핀 앞바다를 9단선으로 점령해버렸다. 급기야 대만, 한국, 일본 등의 에너지 보급선과 무역선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우리도 올림픽과 K-pop 등으로 쌓은 명성을 이웃나라와의 분쟁으로 무너뜨리는 일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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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동맹은 ‘좋아 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공통의 적’을 둔 국가들끼리 맺는다.

좋은 동맹은 패권국일 정도로 강하고, 우리나라와 이념과 체제를 같이하며, 영토적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한미동맹은 최약소국이 최강대국을 붙든 역사상 희귀한 예이다. 김일성은 남한을 갓 쓴 노인으로 보고 두 끈을 자르려고 들었다. 그 결과 약한 고리인 일본 쪽 갓끈은 상당히 잘렸고, 한미동맹의 갓끈도 많이 너덜너덜해졌다.

동맹국들끼리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서로 협력해야 신뢰가 돈독해진다.

또한 서로 다투는 두 국가들 사이의 중재는 두 나라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나라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일제는 청일전쟁의 전리품인 요동반도를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간섭으로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북의 핵위협에 평화공세로 대응하거나 중국의 각종 위협에 동맹국도 위험에 빠뜨리는 외교군사적 3불 약속을 쉽게 해버리는 우리 외교력으로는, 아무리 미중간, 북미간 균형자론이나 운전자론을 내세워도 정신승리나 허장성세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 실력을 냉철히 평가하고 부국하고 강병하면서 주변 4강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강구해나가야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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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세계에서 국가의 패망은 흔한 일이며, 현재의 평화는 상수(常數)나 권리가 아니다.

1816년에서 2000년 사이 207개국 중 66개국이 패망했다. 그 중 50개국은 인접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북은 남조선해방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데, 우리는 국방과 안보, 외교에서 무장해제를 하는 듯하다.

전쟁을 피하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던 율곡선생의 말씀처럼, 평화는 말로 주어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자유를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남혐과 여혐을 조장하거나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출생률을 떨어뜨려 제 발등 찍는 사회운동에도 대국적으로 ‘자제’가 필요하다.

이는 국가의 흥망성쇠와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핵 없는 국가는 핵보유국에 항복하여 복속되거나, 저항하다 패망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도 자체 핵을 개발하여 보유하든가, 적어도 당분간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

자유우방패권국들과의 동맹과 집단안보를 ‘식민지’로 여겨 필리핀에서처럼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중·러에는 득이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올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북핵에 대응할 핵우산을 씌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또,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 사이의 통일은 어느 한 쪽으로 모두 흡수 통합되었다. 동서독, 예멘, 베트남의 통일을 보면 그렇다.

북은 대를 이어 남조선해방을 초지일관 외치는데, 남은 힘의 받침이 허약한 평화만 읊조리면 안 된다.

북한주민을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북한을 정상국가화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변 4강들이나 유엔 회원국들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국제관계나 국제정세를 다루는 국제정치학의 현실은 엄중하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체의 부국강병과 든든한 동맹이 필수다.

도덕윤리, 감정과 정서에 치우치지 않는 냉철한 이성과 전략이 요구되며, 이런 지식과 지혜는 교육을 통해서 후대들에게 길러주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학교 현장에 답이 있다.

교사와 학생이 국제관계나 정세 속에서 우리 역사, 지리, 경제, 정치,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

패권전쟁기에는 분쟁국 사이 어디에선가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힘과 국익에 기초한 동맹과 조약은 국제관계 속 국가의 행동기반임을 학생들에게 철저히 이해시켜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국방, 외교, 안보를 잘해서 나라가 부흥한 사례와 이를 망쳐서 나라가 망한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의 ‘역사’교육을 통해 18세기까지는 동아시아 변화 속에서, 19세기부터는 세계사의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선택을 해왔으며, 국내외적 선택이 얼마나 성공 혹은 실패했는가를 잘 가르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고교에서는 사회과에 ‘국제관계’ 분야를 신설하여, 적어도 고등학생들은 누구나 한 학기 5단위 정도는 필수로 배우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애국심은 물론, 세계화시대 국제관계에 밝은 개방적 세계인으로 기르자는 것이다.

국제관계와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기준과 교과서를 개발하여, 장차 우리 학생 중에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빛내는 외교관이나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참고: 양일국(2020.1.8), “국제정치학과 역사교육,” 제2회 코리안드림 역사재단 창립준비세미나 토론문, 온라인 진행.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