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에세이] 사냥꾼의 영혼을 가진 아이 '고슴도치X'..."나는 나야, 요호!"
[그림책 에세이] 사냥꾼의 영혼을 가진 아이 '고슴도치X'..."나는 나야, 요호!"
  •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 승인 2021.01.31 0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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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한생 서울 신길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안녕하세요!”

인태는 오늘도 노크도 없이 왈칵 앞문을 열어젖히고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떠났다.

6학년이 다 된 녀석이 불쑥 나를 방문하고 떠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작년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다툼과 일탈 행동으로 나를 애먹이던 인태였다.

새로운 학년이 되어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있는지, 선생님은 어떤지, 무관심하던 엄마와의 관계는 좀 나아졌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지금’ 행복하다면 굳이 ‘과거’의 선생님을 찾아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을 것이라는 걸, 오랜 교직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올해도 아이들이랑 그림책 수업해요? 얘들은 좋겠다.”

방과 후에 교실에 들른 인태는 그림책을 놓고 모인 2학년 아이들을 보고 ‘안녕하세요’가 아닌 다른 말 한마디를 더하고 갔다.

작년 그림책 수업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던 인태, 올해 꼬맹이들이 그림책을 읽는 광경을 보고 부러워하며 남긴 한 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혹시 인태가 다시 찾아온다면 함께 읽을 만한 그림책이 있지 않을까?

작년에는 교실 안 상황에 매몰되어 인태가 저지른 사건을 수습하기만 바빴다면, 이제는 한 발자국 떨어져 인태와 눈을 맞추고 갈 곳 없는 인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인태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고민하던 나는 작년에 인태를 상담했던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인태는 사냥꾼의 영혼을 가진 아이에요.”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사냥꾼의 영혼을 가진 아이란, 아주 오래된 옛날 사냥을 주도했던 사냥꾼의 피가 흐르는 아이라고 했다. 사냥감을 잡기 위해 작은 소리나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관심 가는 것에 대해 지나치리 만큼의 열정을 보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가만히 정해진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하고, 관심 가는 것이 아닌 정해진 과목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는 비정상으로 취급된다.

과연 인태는 비정상적인 아이일까?

인태는 자신이 가던 육탕면집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여 글을 쓸 줄 아는 아이였고, 그림책을 읽고 넘쳐 오르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다.

말썽꾸러기로만 알았던 인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인태에게 읽어줄 그림책이 보였다.

그림책 '고슴도치X' 표지.(노인경 글·그림)
그림책 '고슴도치X' 표지.(노인경 글·그림, 문학동네)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 세상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사냥꾼의 영혼’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림책 『고슴도치 X』 (노인경 글, 그림)였다.


그림책 『고슴도치 X』의 주인공 엑스는 모든 게 부드러워야만 하는 분홍색 털 뭉치 모양의 고슴도치 마을에 산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침마다 가시를 부드럽게 하는 비누로 몸을 씻어 가시의 숨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고슴도치 엑스는 부드러워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뾰족한 가시는 아무리 숨을 죽여도 몇 가닥이 삐죽하니 나와 있고, 친구들과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자꾸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충돌을 일으키고 선생님께 혼이 난다.

결국 방과 후 도서관 청소를 하게 된 고슴도치 엑스는 도서관에서 이상한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도 읽지 못하게 묶어 놓은 책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를 단련하여 숲속 동물들을 위기에서 구한 어느 고슴도치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고슴도치 엑스는 남몰래 가시 단련에 돌입한다. 그가 겹겹의 털실 공 마을을 뚫고 마침내 개인의 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다양성이 가득한 푸른 숲으로 나온 순간 외친다.

“나는 나야, 요호!”


그림책을 함께 읽은 인태는 오랫동안 “나는 나야, 요호!”라는 대사를 곱씹었다. 왜 좋은지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이 참 좋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너는 이래서 안 돼’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어왔을 인태였다.

‘나는 나 자신이면 안 돼’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인태에게 고슴도치 엑스가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말이 어떤 의미일지, 인태의 까만 눈동자를 보며 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인태는 인태야, 요호!”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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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주 2021-02-24 16:24:22
나는 나야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런 바람이 드네요 ㅎㅎ 사냥꾼 같은 아이까지 사랑하는 넉넉한 마음의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