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세상 곳곳에서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삶의 평화를 잃어버린 지가 언제인지 아득하게 다가온다. 영겁(永劫 eternity)의 시간 속에서 보면 불과 찰라 1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듯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에서 2.5단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봉쇄와 격리, 거리두기를 길게 반복하다보니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메마름은 갈수록 팍팍해져 가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현재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이 넘쳐난다. 

그 중에는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 “세계는 지옥이다”, “삶은 살아가는 데서만 가치가  주어진다.”고 주장했던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부각되기도 하다. 극한의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생각을 유도했던 이 철학자는 모순처럼 들리는 논리로 인간의 생의지가 아닌 순수의지를 고양하여 궁극적으로는 깨달음, 해탈로 이끄는 인식의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을 했다. 

왜 다시금 고뇌와 번민에 쌓여 금욕고행을 강조하던 그의 철학을 재고(再考)하게 될까? 현실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떻게 구하는가?’, ‘행복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인가?’ 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이에 행복에 대한 인식, 깨달음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찾아 회귀하게 된다. 따라서 필자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디오게네스적 행복’을 이 위기의 시대를 참고 견뎌내며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지혜로 제언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관련된 다음의 일화를 보자. 


<일화 1> 디오게네스는 아무 것도 없는 나무통(술통) 속에서 즐겨 살았던 철학자다. 물을 마셔야하기에 그릇은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강물을 맨손으로 떠서 마시는 것을 보 고 “나는 이 아이에게 졌다”고 말하며 그 물그릇까지 내동댕이쳤다. 

<일화 2>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햇볕을 쬐고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왕이 다가와 말했다. “무엇  이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게 말해보라.” 이에 디오게네스가 술통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제 햇빛을 가리지 마시고 조금 옆으로 비켜주시지요”

<일화 3> 하루는 디오게네스와 우연히 마주친 알렉산드로스 왕이 지나가며 말했다. “나는 위 대한 대왕 알렉산드로스라네.” 이에 디오게네스가 “저는 키니코스학파의 디오게네스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네가 한 학파의 우두머리라니 차라리 노예라고 하는 편이 낫겠네.”라며 알렉산드로스 왕이 비웃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주인처럼 보이는 노예가 뭐가 그리 나쁩니까?”

<일화 4> 아테네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왕에게 디오게네스가 앞으로는 무엇을 할 작정이냐고 물었다. “전 세계를 정복할 거네.” 이에 디오게네스가 되물었다. “전 세계를 정복한 뒤에는 뭘 하실 겁니까?” 알렉산드로스 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혼자 기뻐할테지.”라고 답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기뻐하실 순 없습니까?”


이 얼마나 스스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개인적인 인식능력이 빛나는가? 최고 권력자 앞에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과연 철학자답지 않은가? 

이 일화는 현시대를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우리에게 ‘행복이란 진짜 이런 것이다’는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같은 철학자의 삶에서 큰 교훈을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 주변과 일상에서 조금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나만의 작은 행복을 창조하는 일들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인가? 또 다른 행복 추구에 대한 사례를 일상에서 찾아보자. 사랑하는 가족, 정겨운 친구들과 함께 시간 보내기, 바빠서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도 일상의 일들에 대한 느낌을 담아 메시지 주고받기, 사소한 먹거리라도 동료, 이웃과 함께 나누기, “안녕하세요?”, “좋은 날입니다”라고 만나는 이웃에게 먼저 인사 한 마디 건네기,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갖기, 등등. 

이런 사소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행복의 곳간을 채워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마치 옷장에 있는 의복을 정리하듯이 조금씩 정리하다보면 어느 순간 행복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지혜로운 행복 추구의 방책은 ‘지금, 여기의 삶’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즐겁게, 때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신 분석학자이자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인생의 과제에서 도피하려고 핑계거리를 찾다가 그것이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면 이기주의자가 되거나 나르시시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 모든 행위의 선택과 결과는 자신이 책임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용기가 행복의 원천이다. 그것이 ‘참 자기(true self)’,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의 언어로 표현되는 삶의 기쁨이라 믿는다. 

우리 모두가 가정이든 학교든 사회든 ‘지금 여기’서 나이를 불문하고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다가오는 미래는 마음의 장애물, 그물망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가까이에 그리고 자기 내면의 인식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디오게네스적’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