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 번씩 보아 정드는 사람, 경비원님의 쾌차를 바라며...

[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김설아 서울 탑산초등학교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김설아 서울 탑산초등학교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누구시지?’

분명 엊그제까지 보았던 얼굴이 아니었다. 이번 설 만큼은 감사의 선물을 드리려고 했는데, 또 늦어버렸다. 부모님은 명절이면 경비원님들께 간소하게나마 선물을 챙겨 드렸는데, 결혼 후에 나는 그러지 못해서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인사드릴 시간도 없이 그만두신 걸까?’

유난히 더 감사했던 분인데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바뀐다는 안내 한마디가 없었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낡은 아파트의 지상 주차장은 그야말로 카오스다. 주차된 차가 나오기 위해서는 이중주차로 주욱 늘어선 차들을 순서대로 밀고 비집고 나와야 한다.

경비원님은 아침마다 내 차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파악해두시고는 내가 다른 차에 손을 대기 무섭게 달려와서 차를 밀어주셨다.

“아침부터 차 밀고 나가면 기분 안 좋잖아요~”

차들을 힘껏 밀고, 내 차가 안전하게 나왔는지까지 봐주시고 뒤돌아 가시는 경비원님의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그동안 다리를 절면서도 최대한 힘차게 걸으며 아침마다 주민들의 차를 밀어주고 계셨던 것도 몰랐다.

예고 없이 비가 찾아온 날에는 바른 정자체 글자가 적힌 작은 노란색 포스트잇이 엘리베이터 버튼 옆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었다.

비가 오는 날 아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비가 옵니다'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사진=김설아 교사)
비가 오는 날 아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비가 옵니다'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사진=김설아 교사)

‘비가 옵니다.’

밤새 아파트를 지키며 날씨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고는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했을 주민들을 챙긴 것이다. 그 사소하지만 세심한 배려로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해졌던 날도 있었다.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에' 표지.(믹 잭슨 글, 존 브로들리 그림, 봄볕, 2020)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에' 표지.(믹 잭슨 글, 존 브로들리 그림, 봄볕, 2020)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에』에는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애써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등장한다.

밤새 화물을 운반하는 운전기사, 어둡고 컴컴한 밤거리도 단숨에 달려가는 소방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하는 간호사와 의사, 밤을 틈타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 한밤 속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의 모든 사람과 동물, 별과 바람까지.

이 책을 펼쳐 들자마자 이틀에 한 번씩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고마운 경비원님들이 떠올랐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만나니 정이 들 수밖에 없는 사람.

그동안 내가 경비원님들을 만난 역사를 생각해보니 무려 20년이 더 되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라인별로 두 분이 계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파트에서 인력을 1/3로 줄였다. 3개의 경비초소가 있던 아파트 건물 하나 전체를 두 명이 번갈아 관리하게 된 것이다.

이 놀랄만한 인력 감축에도 경비원님들은 각 호수에 누가 사는지, 누가 어떤 차를 모는지 기가 막히게 파악하셨다.

새 학기에 자리에 순서대로 앉아 있는 학생들을 외우는 것처럼 아파트 주민들이 층별로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파트에 산 20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경비원님을 만난 적이 없는데 경비원에 대한 안타까운 기사는 끊이질 않는다. 입주민에게 갑질과 폭행, 모욕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부터 ‘경비원 괴롭힘 방지법’도 시행되고 있다는데, 주민들에게 최대한으로 친절을 베풀던 경비원님이 급작스럽게 바뀌신 사정은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혹시 무슨 큰일이 생기신 것은 아닌지 하루종일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서 새로운 경비원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짧은 한마디가 돌아왔다.

“아, 몸이 안 좋으셔서.”

마음을 다해서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둘 만큼 큰 병이 생기신 건지, 혹시나 아파트에서 갑질을 당하신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였으나 더 묻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연락이라도 드려보고 싶었던 마음을 담았다.

‘905동 경비원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