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우화(寓話)는 장르적으로 보면 서사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이 절충된 단순 형식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비교적 저차원적인 사리 분별을 위한 것이나 우리 삶에 알아두면 좋은 실용주의적인 것입니다. 같은 형식으로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도시와 환경, 그를 이루는 많은 건물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진솔한 물음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2010년 3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석사 1학년 시절 첫 설계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다. 

"순수 창작은 시 밖에 없고 나머지 창작분야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주기 때문에 절대적인 오리지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을 들은 지 꼭 11년째 되는 올해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말씀이다.

교수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자칫하면 교만하여 질 수 있는 건축에 대한 환상에 늘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이다.

나는 건축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으로 공간이 사람을 바꾸거나 삶을 바꿀 수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건축공간은 사람이 살아감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며 삶이 결부된 건축공간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용학문인 건축은 삶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최우선이며 그 필요에는 어떤 인간의 욕망이 깃들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필요 안에 있는 인간의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제어를 하며 공공의 선을 제안하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다. 그러나 제안한다는 말은 또 공공의 선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희생시키거나 제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사회에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말한다.

따라서 건축가는 늘 겸손해야 한다. 많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느 분야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 않는가.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자이며 지혜로운 삶을 통해 지혜로운 건축이 나온다. 이것이 내가 건축을 하는 이유이며 건축을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따라서 늘 나는 건축 앞에서 진지하다. 그 누구든 이 건축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축가의 생각과 의미가 적혀있는 책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출처 https://www.dosde.com
건축가의 생각과 의미가 적혀있는 책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출처 https://www.dosde.com

글과 건축은 약속된 문법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의 방식과 약속된 선과 기호로 생각을 구축하는 건축설계 방식이 비슷하다고 자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명확한 차이가 있다.

글은 사람을 깨우치지만 건축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깨우침은 이성적 판단과 사고의 결과며 영감은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느낌이다. 우리가 어떤 건축공간에 서서 하염없이 그 공간을 거닌다 해도 건축가의 의도를 깨우칠 수는 없다. 자기 생각으로 해석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이 정확한 건축가의 의도는 아닐터.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그 건축공간을 설계한 건축가의 생각이 저술된 책을 산다. 책을 읽고 다시 공간을 보면 명확하게 설계 의도를 알게 된다. 글이 주는 깨달음이다.

이 공간을 직접 마주한다면 무슨 글과 설명이 필요할까 그저 공간만 하염없이 묵상할 뿐이다.(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출처 https://www.viator.com/
이 공간을 직접 마주한다면 무슨 글과 설명이 필요할까 그저 공간만 하염없이 묵상할 뿐이다.(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출처 https://www.viator.com/

때론 딱히 설계 의도를 알지 않아도 찾게 되는 건축이 있다. 유럽에서 흔히 보는 동네 곳곳에 있는 교회건축이다. 한때 나도 유럽에 나오면 꼭 직접 접하고 싶은 공간이었던 중세시대 교회건물만 골라 돌아다닌 적이 있다. 높은 첨탑과 스테인 글라스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영적 충만함이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 생각이 앞서기 보다는 감동이 밀려온다.

홀리듯 내부를 한바퀴 돌고 밖으로 나오면 저도 모르게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공간이 주는 영감이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 진다’고 했다. 천재가 되려면 노력과 영감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천재가 아니더라도 노력과 영감을 얻기 위한 수행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력은 무엇인가.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하는 자기 수행이다. 영감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단편적 생각이라 여길 수 있지만 실은 수많은 노력이 만들어낸 하나의 정수다.

예를 들어 알파벳을 외우는데 a,b,c,...를 순서대로 외우는 연습을 반복하고 이것이 끝나면 a를 보면서 k를 떠올리기도 하고 s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수많은 노력이 영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반복에 의한 학습이라 얘기할 수 있지만 갑자기, 불현듯 그러나 그것이 망상이 아닌 이상 그것은 영감이라 생각한다.

에듀인뉴스의 과분한 배려로 그동안 글을 써올 수 있었다. 때로는 광야의 외침으로, 때로는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왔던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생각을 연단하고 그 동안 내가 해왔던 건축과 나의 건축을 이루기 위해 쌓아왔던 생각을 정리 할 수 있었다. 시대를 내다보며 글을 쓴다 다짐했건만 나오는 것은 나의 아집과 편향된 시각 뿐. 그래서 그간 썼던 글들을 하나씩 읽노라면 실로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지만 영감을 얻기 위한 자기 수행의 과정으로써 인식하기로 했다. 물론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았다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언젠가 용서받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용서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건축으로 받은 영감을 표현해야 할 때가 왔다.

이 코너를 통해 그동안 내가 했던 중언부언들이 나에게 어떤 영감을 줄지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건축으로 표현될지 기대된다. 

만약 나의 글을 통해 누군가가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생겼다면 그것만큼 큰 기쁨과 축복은 없을 것이다.  


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도시설계사,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건축학 전공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Université Grenoble Alpes에서 도시학 석사졸업, 파리고등건축학교 Ecole spéciale d’architecture (그랑제꼴)에서 만장일치 합격과 félicitation으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파리 건축설계회사 AREP Group에서 실무 후 현재 파리 건축사무소 Ateilier Patrick Coda에서 근무 중이며 건축도시정책연구소(AUPL)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건물과 도시, 사람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우리의 삶의 배경이 되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유용하게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